【팩트TV】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선친의 친일독재를 미화하기 위해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려 한다는 야당의 잇따른 질타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립군을 도왔다는 증언도 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밀 독립군’으로 규정해 파문을 예고했다.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을 통해 "노무현 정부가 출범시킨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실제로 위원회가 편찬한 보고서에도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은 제외됐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백강 조경환 선생님께서는 박 전 대통령을 독립군을 도운 군인으로 기억했다는 증언도 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친일이라는 낙인을 찍고 그 업적을 깎아 내리기 위해 시작한 노무현 정부의 ‘친일청산’ 작업은 도리어 당시 열린우리당의 고위관계자, 소속의원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선친에 대한 친일, 탐관오리 행적 등을 구설수에 올렸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미래세대를 위해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일에 억지생떼를 부리며 발목 잡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변인이 거론한 내용과 관련 과거 언론을 통해 검색해본 결과, 지난 2004년 7월 23일자 <세계일보> 독자 투고란에 이기청 의병정신선양회 사무총장이 기고한 글에서 비롯된다. 당시는 참여정부가 ‘친일 반민족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고 과거사 진상규명에 나서고 있던 때이기도 하다.
당시 이 사무총장은 투고글을 통해 “박 대통령은 일제시대 일본군 소좌 계급장을 달고 만주땅에서 복무했다. 일제가 채용한 공직자가 모두 친일파라면 박 대통령도 친일파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일본 군복을 입었지만, 극비리에 독립군을 도왔다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의병정신선양회 활동을 하며 마지막 임정요인이었던 백강 조경환 선생(1993년 작고)을 자주 뵈었다. 백강은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함께 묻힌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유언을 할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다. 그 백강 선생이 하루는 내게 박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야기와 관련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얼마 안돼서 한 젊은이가 면목동 집으로 찾아왔는데, 큰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동행한 사람이 ‘대통령이십니다’ 하길래 보니 박정희였다. 박 대통령은 ‘제가 만주에 있던 다카키 마사오입니다’ 하는데, 조선인 병사들을 독립군으로 빼돌렸던 다카키의 이름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놀랍고도 반가웠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군을 보충해야 할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박 소좌의 도움은 컸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일본군 내에서 ‘비밀 독립군’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인 병사들을 독립군으로 몰래 보냈다는 증언인 셈이다. 그러나 고인의 증언만 소개한 것일 뿐, 구체적인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에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혈서 지원'을 미담으로 소개한 <만주신문>의 그해 3월 31일자 기사를 2009년 일본국회도서관에서 찾아냈고, 같은 해 11월 발간된 <친일인명사전> 박정희 항목에 이 내용을 수록했다. 이에 아들인 박지만 씨는 마지막까지 '게재·배포금지 가처분 신청' 등을 법원에 내며 사전의 발간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는 '혈서 지원'을 증명하는 1939년 <만주신문> 기사를 내놓으며 박지만 씨 측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당시 민족문제연구소가 일본도서관에서 입수, 공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 관련 내용(사진출처-MBC 뉴스영상 캡쳐)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은 당시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당시 소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던 박 전 대통령이 ‘혈서 지원’을 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만 22세로서 지원 자격 연령(16~19세)에 맞지 않았고, 이미 결혼(김호남)까지 해 딸(박재옥, 1937년생) 하나를 두고 있던 상황이라 지원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던 만큼, 비장한 내용이 담긴 혈서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결국 같은 해 만주 군관학교 시험을 치르고 특별 입학할 수 있었다.
당시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 그리고 '한목숨 다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쓴 종이와 함께 동봉된 등기로 도착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모든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스러운줄 아오나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할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이 다하도록 충성을 다 바칠 각오입니다. (중략) 한 사람의 만주국 군인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도 바라지 않고.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고자 해도 자격 연령이 16살 이상 19살까지이기 때문에 23살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同君)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2009년 당시 재판부는 박지만 씨 측의 가처분 신청을 “이유 없다”며 기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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