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대법원이 최근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동아일보 기자들의 강제 해직 사태에 대해 "정권의 압력을 받아 기자들을 해고했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 결정을 증거 부족 이유로 취소 처분했다.
지난달 29일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동아일보사가 과거사위 상급기관인 안전행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과거사진실규명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동아일보사에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과거사위가 조사 과정에서 의견 제출 기회를 제공했다는 자료가 없는 점을 보면 동아일보에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고, 정권의 요구에 굴복해 기자들을 해직했다는 인과관계도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안을 사법부가 정면으로 뒤집고 나선 것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 과거사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등 초헌법적 불법행위를 ‘고도의 정치행위’라며 면죄부를 준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결국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강제해직당한 동아투위 기자들의 복직투쟁 중(사진출처-뉴스타파 영상 캡쳐)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유신독재 시절인 지난 1974년 12월 기업들에 압력을 넣어 동아일보와의 광고계약을 취소시켰고, 이 여파로 신문엔 백지광고가 실리곤 했다.
동아일보는 이듬해 3월 경영 악화를 이유로 기자 18명을 해고했다. 기자들은 "회사가 정권에 굴복했다."며 농성,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동아투위)를 결성했다. 이후 동아일보는 1975년 5월 1일까지 언론인 116명에게 추가로 해임 또는 무기정직 징계를 내렸다. 동아투위는 이후 수십 년 동안의 긴 싸움을 이어갔다.
김태진 동아투위 해직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74년 7월 중앙정보부에서 ‘보석밀수 사건’에 대해 보도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한 적이 있는데, 당시 송건호 편집국장이 이를 거절하고 보도했다. 중앙정보부는 송 국장을 강제로 연행했고, 일개 중앙정보부 요원이 송 국장에게 욕설하며 뺨을 후려쳤다. 당시 동아일보는 구독률 64%를 자랑할 정도로 국내 최대 신문사였다.
해직 언론인들은 30년의 세월이 지나, 2006년 4월 과거사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고 과거사위는 2008년 10월 "박정희 정권이 언론탄압을 한 만큼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 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결정과 함께 해직기자들에 대한 동아일보의 사과를 권고했다.
동아일보는 이에 불복해 2009년 3월 진실규명 결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재판부는 각하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2013년 "소송 대상이 된다"고 판단해 재판을 재개했고, 그해 5월 '과거사위 조사보고서에 대해서도 추가 증거조사가 필요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나와 이미 인정된 과거사마저 뒤집고 나섰다.
대법원은 박근혜 정권 들어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에 면죄부를 잇달아 부여해 구설수의 대상이 됐다. 지난 2013년 3월 헌법재판소는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선포한 긴급조치 1호, 2호, 9호에 대해, 8명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지만, 지난 3월 대법원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라며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1월에도 “민주화운동을 하다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라도 생활지원금 등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로부터 손해를 배상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고, 지난해 12월에도 “긴급조치 9호에 의해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해 기소한 수사기관이나 유죄를 선고한 법관의 직무행위는 공무원의 고의·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긴급조치 선포에 대해 잇달아 면죄부를 부여했다.
긴급조치 9호의 피해자인 여성운동가 고은광순 씨는 지난달 <팩트TV>와의 인터뷰에서, 대법원이 긴급조치를 ‘고도의 통치행위’ 라고 주장한 데 대해 “히틀러의 만행에도 면죄부 부여하는 꼴”이라고 힐난한 뒤, “대법원이 권력에 아부하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 사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죽이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고은광순 씨는 최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에서 패소하자, 배상액을 단 1원으로 낮춰 대법원에 상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돈을 받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사법부 스스로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 판단하고자 상징적 의미로 청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유신체제 나팔수 노릇하는 동아일보, 차라리 자폭하라”
이런 대법원 판결에 동아투위(위원장 김종철)를 비롯한 언론 시민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동아투위,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등 언론단체 관계자 50여 명은 2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동아일보여, 차라리 자폭하라'라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와 동아일보를 규탄했다.
이들은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의 신유신체제 아래 ‘사법사상 암흑의 날’을 재현했다.”며 “도대체 무슨 근거로 1975년 3월 동아일보사 사주 김상만이 사원들을 대량해직한 사건이 ‘경영난’ 때문이라는 주장을 정당화한 것이냐”고 규탄했다.
동아투위 기자들(사진출처-뉴스타파 영상 캡쳐)
이들은 "기나긴 세월 속에서 정보수사기관의 고문, 옥살이, 생활고, 난치병 등으로 동아투위 위원 113명 가운데 20명이 세상을 떠났다."며 "그들은 경영난으로 인한 해고의 희생자들이 아니라 동아일보사와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간접살인의 피해자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당시 사장 김상만, 그 뒤를 이은 그의 장남 김병관, 그리고 친일족벌언론의 세습자인 김재호 현 사장은 이들의 죽음에 대해 단 한마디 사죄도 하지 않았다."며 "동아일보는 이제 종편 <채널A>와 함께 신유신체제의 나팔수 노릇에 온갖 힘을 쏟고 있다."고 목소릴 높였다.
한편 동아일보는 지난달 30일자 기사 <대법 "동아일보 해직사건 과거사위 규명결정은 잘못">을 통해 "1975년 동아일보사는 정권의 광고 탄압으로 경영이 악화되자 두 차례에 걸쳐 기자 134명을 해임 또는 무기정직시킬 수밖에 없었다."며 자신들의 지난 행동을 정당화했다.
[팩트TV후원 1877-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