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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대필 사건’ 희생자 강기훈, 24년만에 무죄 확정
노태우 정권-조선일보 등에 마녀사냥당해…현재 간암 투병 중
등록날짜 [ 2015년05월14일 12시10분 ]
팩트TV 고승은 기자
 
【팩트TV】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 '유서 대필 사건'에서 강기훈 씨가 24년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강기훈 씨가 재야단체 동료의 유서를 대신 써주며 자살을 방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처벌당한 지 24년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4일 강씨의 자살방조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강 씨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전했다.
 
24년만에 누명을 벗은 강기훈 씨(사진출처-연합뉴스TV 영상 캡쳐)
 
지난 90년 3당 합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이후 거대여당이 된 민자당과 노태우 정권의 실정이 잇달았다. 당시 노태우 정권의 수서지구 특혜분양, 국회의원 뇌물외유, 대구 낙동강 페놀 방류 등 각종 비리사건이 터지자, 정권은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이에 91년부터 전국에서 항의하는 노동자·대학생들의 집회·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91년 4월 명지대학교 학생이었던 강경대 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에 항의하며 분신·투신하는 등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지난 91년 5월,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검찰은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기훈 씨를 자살 배후로 지목하고 그가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유서와 강 씨의 필적이 같다는 감정결과를 내놨다. 그해 7월 강 씨는 자살 방조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이듬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의 필적이 같다는 조작된 감정 결과를 내놓아 노태우 정권에 적극 협조했다.
 
강 씨를 무리하게 기소해 감옥에 가둔 행위를 주도한 사람은 당시 김기춘 법무부장관이었다. 그는 이후 3선 국회의원을 거쳐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강신욱 부장검사는 대법관을 역임하는 등 모두가 승승장구했다.
 
당시 김기설 씨의 유서와 강기훈 씨의 글씨 비교(사진출처-노컷뉴스 영상 캡쳐)
 
당시 언론과 일부 유력인사들도 강 씨를 비난하는데 앞장섰다. 박홍 서강대 총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비난했고, 지난 대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며 전향한 김지하 시인도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며 강 씨를 맹비난헀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인 2007년 김기설 씨의 친구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김씨가 작성한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제출하자 재조사가 이뤄졌다. 
 
국과수는 다시 감정해 "전대협 노트와 유서의 필적이 같고, 유서와 강기훈씨의 필적이 다르다"며 과거와는 정반대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진실화해위는 이를 토대로 "유서는 김기설 씨가 쓴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고 강 씨에 대한 재심을 권고했다.
 
대법원은 시간을 질질 끌다가 2012년 10월에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국과수는 지난 2013년 12월 유서 필체에 대해 강 씨 필적이 아니라는 새로운 감정 결과를 내놨고,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이를 토대로 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무죄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24년간 강 씨는 심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현재 간암 투병 중이다. 건강이 악화된 그는 이날 재판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공안정국 조성을 위해 강 씨를 자살 방조범으로 몰아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린 노태우 정권과, 사건 조작에 협조하며 승승장구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강 씨를 원색비난하며 마녀사냥에 동조한 인사들과 <조선일보> 등이 강 씨에게 공개사과 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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