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세월호 사건 당시 민간잠수사로 실종자 수습에 헌신했던 김관홍 잠수사가 17일 오전 숨을 거둔 채로 발견됐다. 김 잠수사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지 7일 뒤, 수중 선체 수색 작업에 합류해 두 달 이상 작업했다. 그는 동료 잠수사들과 사고 현장에 투입돼 해군 해난구조대(SSU)와 함께 295명의 실종자 중 292명의 시신을 수습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잠수병, 디스크 부상 등 후유증을 앓은 김 씨는 본업인 잠수를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하면서도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 활동에 함께해 왔다.
김 잠수사는 지난해 9월, 수색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민간잠수사 故 이광욱 씨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혐의로 검찰로부터 징역 1년을 구형받은 공우영 잠수사의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 파렴치하게 책임을 떠넘긴 해경과 검찰에게 일침을 날린 바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세월호 특조위 1차 청문회에서도 증인으로 출석해 참사 수습 현장의 온갖 혼선과 불합리를 증언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 책임자들이 '잘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으로 일관하자 "고위 공무원들에게 묻고 싶다. 나는 당시 생각이 다 난다. 잊을 수도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고위 공무원들은 왜 모르고 기억이 안 나나"고 강하게 일갈했다.
김 잠수사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민주 후보의 차량운전을 도맡아 하는 등,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박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그는 지난 8일 국회 앞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개정 20대 국회 입법청원 기자회견에도 참석했으며, 숨지기 전날 열린 세월호 문화행사에도 유가족들과 함께 참여했다.
김 잠수사는 17일 오전, 부인과 세 자녀, 그리고 부모님을 남겨둔 채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 오후 7시, 시민 500명은 그의 명복을 빌고 남겨진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추모식이 열린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서북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의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에서 노래 <잊지 않을게>가 울려 퍼졌다. 김 잠수사의 가족들은 물론,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김관홍 잠수사를 추모하며 묵념하는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사진-고승은)
“멋지게 복수하자고 했는데…세월호 진상규명 꼭 해낼테니 하늘나라에서 응원해주렴”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허물없이 지내면서 함께하려고 했는데 그를 먼저 보내게 됐다.”면서 “우리 복수하자고 했잖아. 세월호에서 아이들 구조하지 않은 놈들, 지금도 사람 목숨보다 돈 먼저 챙기는 놈들, 제 잇속 챙기느라 다른 사람들 고통에 몰아넣는 놈들에게, 그런 세상에 멋지게 복수하자고 했잖아”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아직 아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세 아이들, 그리고 너의 곁에서 마음 아파하던 그 아내를 보니 마음이 찢어진다”고 흐느낀 뒤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쉬거라, 평소 못 잤던 잠, 밀린 잠 많이 자고 편히 쉬렴. 여기 남은 살아 있는 우리들이 네가 바라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꼭 해낼테니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고 응원해주렴”이라며 흐느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오늘 이 자리가 너무도 억울하고, 너무도 비통하고, 너무도 원망스럽다.”면서 “김관홍 잠수사님이 가장 아끼셨던 가족들. 두 딸과 아들, 부모님들을 저희들이 대신 모시고 함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구조하지 않았고 수습조차 하지 못한 일에 우리 민간잠수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목숨을 걸고 구조수색과 수습을 해냈었다. 우리 국민들은 이런 민간잠수사들을 세월호 참사의 의인이라고 부른다”라고 탄식한 뒤,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을 우리의 은인이자 영웅, 의인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종훈 세월호 특조위 상임위원이 이석태 특조위위원장의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사진-고승은)
박종운 세월호 특조위 상임위원은 “2014년 여름부터 민간잠수사 분들과 만나왔는데, 김관홍 잠수사님처럼 용기냈던 분은 드문 거 같다”며 “본인에겐 불이익될 수 있음에도, 청문회 때 또박또박 정부가 잘못한 상황을 말씀해주셨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는 (김 잠수사의)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김 잠수사와 함께 세월호 실종자 수습작업을 했던 김상우 씨는 “(김 잠수사는) 부상 입었을 때도 자기가 안하면 다른 잠수사가 힘들다는 이유로 서로 도와가면서 해야한다고 얘기했었다. 씩씩하게 얘기하고 늘 밝았다”면서 “잠수복에 구멍이 나면 수선해주던, 저희에겐 참 도움이 됐던 동생이었다”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박주민 “저에게 그렇게 잔소리 많이 하셨는데…제 당선이 굉장히 절실하셨던 것”
눈물을 흘리며 등장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장 늦게 공천 받고 낮선 은평에 왔을 때 김관홍 잠수사는 더욱 특별한 분이었다”라며 “선거운동기간 내내 어떤 분들보다 더욱 가깝게 항상 붙어있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김 잠수사는)저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허리가 왜 이리 굽었나. 명함줄 때 왜 이리 주저하냐. 사람 눈 똑바로 보고 얘기해라. 목소리가 왜 이리 작나’ 잔소리를 견디기 어려웠다”면서도 “돌이켜보니 잠수사님은 제 당선이 굉장히 절실하셨나보다. 저의 당선을 통해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절실한 일이 있었던 거다. 제가 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흐느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추도사를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고승은)
그러면서 “힘들지만 잘 지내시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어제 엄청 울었다. 정말 최근 들어 그렇게 많이 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부턴 슬프더라도 밥 잘 먹고 힘내서 반드시 하겠다. 김관홍 잠수사님이 절실하던 문제들 반드시 할 것”이라며 “(이번 추모를 통해) 우리 가슴에는 그 어떤 물로도 끌 수 없는 불이 번지고 있고 이 불을 등불로 만들어 김 씨가 꿈꾸던 사회를 꼭 이뤄야 한다. 우리 눈물로 그 불이 꺼지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또 유가족을 대표해 김 잠수사의 사촌동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사회 문제에는) 관심 없고 항상 당당하고 자신이 넘쳤던 사촌 형이 (세월호 사건 이후로) 감정을 폭포수처럼 너무 한순간에 받은 것 같다”면서 “이미 힘 없는 사람들은 충분히 희생을 하고 있다. 힘을 가진 분들이 (세월호 참사 진실을 밝히기 위해) 더 많은 희생을 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론인들을 향해선 “당신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제목 등으로)낚시를 하고, 월척을 낚는 것인지 묻고 싶다. (언론인들의)선택 하나하나 때문에 사람 목숨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세월호 왜곡보도에 대해 일갈했다.
그러면서 “쌍용차, 한진중공업, 세월호. 우리가족 얘기는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우리 가족에게도 왔다. 이제는 다들 깨달으셨으면 좋겠다.”면서 “관홍이형이 저를 보면서 거들먹거리면서 얘기하는 게 눈에 선하다. 너무 보고 싶다.”며 흐느꼈다.
이에 이날 추모식 사회를 맡은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김 잠수사의 가족들에게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세 아이를 건사하고 지내다보면 내 옆 집, 내 이웃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하게 지내는 모습도 너무나 미울 것"이라면서도 "저희와 함께 이겨냅시다. 세월호 유가족, 시민들과 함께 살아냅시다. 김 잠수사가 원했던 그 삶을 남은 가족들이 꼭 살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추모발언이 끝난 뒤에는 416합창단과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름을 딴 이소선 합창단이 <잊지 않을게> 등을 부르며 추모공연했다. 이후 시민들은 추모식 현장에 마련된 김 잠수사의 영장 앞에 국화꽃을 놓았다. 김 잠수사의 발인은 19일 오전 8시 30분 엄수되며. 장지는 벽제승화원이다.
416합창단과 이소선합창단의 추모공연(사진-고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