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어버이연합게이트, 세월호 특별법 개정, 가습기살균제 사태, 정운호 게이트 등과 함께 백남기 농민 사건은 20대 국회서 우선적으로 다뤄질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합전선 구축을 선언,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고집불통’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정권에 대대적 반격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칠순의 백남기 농민은 반년 넘게 의식불명 상태로 서울대병원에 누워 있다.
백남기 농민의 장녀인 백도라지씨는 2일 오후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현재 상태에 대해 “머리를 그때 워낙 크게 다치셨고 해서 뇌출혈 수술을 하셨고 그때부터 의식은 계속 없으셨다. 지금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이다 보니까 장기들도 약간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간염수치라든지 이런 것들도 올라가고 있다. 썩 좋은 상태는 아니”라고 밝혔다.
2일 저녁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백남기를 살려내라! 국가폭력발생 200일 촛불문화제’ 중(사진-팩트TV 영상 캡쳐)
백남기 씨의 가족들은 백 씨가 쓰러진지 사흘 뒤인 지난해 11월 17일 강신명 경찰청장 등 경찰 책임자들을 고발했다. 그러나 고발장 접수 한 달 후 고발인 조사만 진행했을 뿐 6개월이 지나도록 수사가 전혀 진척이 없다.
백도라지씨는 야3당이 청문회를 추진 중인 것과 관련해 “저는 이것을 어쨌든 한 명의 생명이 거의 침해당한, 생명권이 침해당한 범죄사건인데 이게 국회까지 나서야 될 일인가”라며 “검찰이 수사만 제대로 했으면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수사하고 경찰들 옷 벗고 감옥 가고 그러면, 그렇다고 해서 한이 다 풀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해결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안 돼서 국회의원님들까지 나서야 된다는 게 사실 저는 받아들이기가 좀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대통령한테도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저는 가장 참을 수 없는 게 그 진압 책임자인 강신명 경찰청장이 온전히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는 게 제일 참을 수가 없는 것 같다.”며 “그래서 그분이 빨리 파면되기를 아니면 누군가가 파면을 안 시킨다면 본인이라도 사임을 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백남기 씨는 1968년에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했으며 당시 학생운동에 투신한 바 있다. 그는 그 때부터 3선개헌, 유신선포 등 헌법을 유린하며 장기집권을 강행하던 박정희 정권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1971년 군을 대학에 주둔시킨 위수령 사태에 반발하다 1차 제적을 당했고, 복교 이후 1975년 전국대학생연맹에 가입해 활동하다 2차 제적을 당했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린 뒤인 1980년, 그는 어용 학도군단을 제거하고 재건총학 1기 부회장을 지냈다. 백씨는 그 해 5월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노태우-신현확) 장례식을 주도하고, 흑석동 캠퍼스에서 한강대교를 건너 서울역까지 행진하는 ‘중앙대 4000인 한강도하 투쟁’을 주도했다.
백씨는 한강도하 투쟁 이틀 뒤인 80년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 계엄군에 체포된 뒤, 같은 해 7월 학교로부터 3차 제적을 당했다. 백씨는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군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이듬해 3월 특사로 풀려난 뒤 고향인 전남 보성군에 낙향,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카톨릭농민회에서 활동하는 등 농민 권익 보호를 위해 앞장섰다.
백 씨는 지난해 11월 14일 대선공약을 지키라(쌀값 21만원 보장)고 요구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 그는 이날 저녁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지금까지 200일 넘게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을 IS에 비유해 물의를 일으킨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경찰 등 어떠한 정부 인사들도 지금까지 백남기 씨와 가족들에게 병문안은커녕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또 “쌀값 21만원은 대선 공약이 아니다”라고 어이없이 발뺌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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