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이 1961년 국회에서 일본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야당은 물론, 같은 당 의원, 언론 등에까지 거센 질타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당시는 아직 일본과 국교도 맺지 않은 상황이었고, 반일 감정이 굉장히 높았던 때기도 하다.
김용주 당시 민주당 의원(당시 여당)은 1961년 1월 24일 참의원 본회의에 참석, 반일감정이 높았던 당시 일본경제시찰단을 ‘초청’하려다 무산되자, 초청 의도를 해명하기 위해 신상발언을 했다.
같은 달 13일자 <경향신문>의 ‘일 시찰단 내한과 세론’ 보도에 따르면 삼정(미쓰이), 삼릉(미쓰비시) 등 일본 내 전범기업이자, 재벌 관계자들이 1월 16일 방한하는 시찰단에 포함돼 있었다. 당시 시찰단 규모는 21개의 기업체, 총 23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당시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김용주 의원이 사절단을 초청해 내한하게 됐고, 김 의원은 사절단 환영위원장까지 맡고 있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부친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이 세운 포항 영흥초등학교를 찾았다.(사진출처-SBS 뉴스영상 캡쳐)
당시 <경향신문>은 이같은 전범기업이 포함된 시찰단에 대해 “태평양전쟁의 유수한 전범자의 하나이며, 한때 일본제국의 군령, 군정권을 쥐고 흔들었던 동조영기를 마음대로 조종했던 군재벌이었다는 데서, 36년동안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하에서 살았던 우리의 입장에선 ‘동탁회사’라는 이름에 못지않게 이름만 들어도 모골이 송연하다.”고 심각하게 우려했다.
나아가 <경향신문>은 “이들(시찰단)이 보고 갈 시찰의 목적과 방향은 일본민간투자의 여건과 안정성 등을 탐구하는 전초적 과정이 될 것이라고 각계에서는 추단하고 있어 그들의 내한을 지극히 경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당시 야당인 신민당에선 장면 국무총리와, 외무·상공·재무 등 삼부장관을 출석시켜 시찰단의 입국허가 경위와 배후 등을 추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신민당의 경제분야 전문가들은 국교정상화 없이 일본자본을 받아들이는 것은 경제적으로 일본의 상품시장화와 경제잠식처를 자초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 혹평했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이틀 뒤인, 15일자 <경향신문>은 더 나아가 ‘일경제시찰단 내한의 이면’ 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도 “그러면 누가 이 문제의 초점이 돼 있는 일인재벌의 경제시찰단을 불러오게 했을까?”라고 반문한 뒤, “정계 <라비>에는 이 문제에 대해 전 주일공사를 역임했던 참의원의 민주당 원내총무 김용주 의원과, 민주당 소속 참의원 엄민영 의원 및, 김용주 의원과는 사돈관계에 있는 민주당 중앙상위의장인 오위영 의원, 민주당 조직부장 조중서 씨 등 두드러진 정치인사들이 주동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퍼져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경향신문>은 김용주 의원에 대해선 “이번 내한하는 시찰단의 환영위원장이며 재정보증인인 동시에, 주일공사를 지냈고 대한물산과 신한해운주식회사 등에도 관계가 있던 실업인”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런 논거를 들면서 이 네 명간에 작용하는 어떤 함수관계 속에서 이번 일인시찰단내한은 이루어져가고 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세간에 퍼져돌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용주 “재일한인, 한국에서 생활 못해 일본 건너가…일본의 ‘사회대우’ 밑에서 살아가고 있다”
김용주 의원은 질타가 확산되자 이를 해명키 위해 신상발언에 나섰는데, <노컷뉴스>가 입수한 1961년 1월 24일 참의회 본회의 회의록에는 그가 일본의 처지를 헤아리거나 옹호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아직 한일 국교 정상화가 되지 못한 시점에서 "한국 수출품의 8할이 일본으로 간다"며 민간 경제 교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어 "일본 대학들이 한국 유학생들이 공납금이 체납되더라도 등교를 허가하고 있다", "밀항한 경우에도 유학생으로 입증되면 구속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등, 일본이 재일교포들에 특혜를 베풀고 있는 것처럼 주장했다.
또한 그는 "60만 재일동포가 일본법률 밑에서 일본의 사회감정과 일본의 사회대우 밑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재일동포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주장했다. 또한 재일동포에 대해 "일본에 가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생활을 못해서 일본으로 건너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는 1959년부터 진행 중이던 재일한인의 북한 송환(북송)에 대해서도 "지금 북송 문제로서 우리 민족의 감정을 극도로 격분을 시켰지만, 이것도 일본 국민의 감정을 악화시킨 그 결과로서 이러한 사태가 진전된 것"이라고 강변했다. 마치 한인들의 탓으로 몰아간 것이다.
이같은 발언에 이교선 무소속 의원은 "친일행위를 권고하고 있으니 언어도단"이라고 반박한 뒤 "일본이 그렇게 친절하고 우리 동포를 도와줬다면 그 증거를 대라"며 김 의원에 따졌다. 25일자 <경향신문> 보도에도, 김 의원의 발언에 격분한 민주당 조국현, 이남규 의원 등도“집어치우라”고 고함을 쳤다.
결과적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당시 김 의원이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일본경체시찰단 방한도 강한 반발을 샀다. <동아일보>는 1월 22일 "반일투쟁전국대회준비위원회가 발족하게 됐다"며 "일본시찰단의 방한 저지가 당면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도 "1월 22일 오후 대구역 광장에서 약 2000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시찰단 입국 반대 집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한편 김무성 대표는 자신의 부친이 일제 강점기 말 ‘일제 군용기 헌납’과 ‘징병’을 독려하는 기명 광고를 아사히신문에 낸 사실을 비롯, 친일 행각을 벌인 행적들이 잇달아 공개되고 있음에도 부친의 이른바 ‘애국행적’을 주장하며 “좌파들에 의해 (부친이)친일파로 매도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