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팩트9뉴스】 기획취재-권력암투 '막장드라마' 정윤회VS박지만
진행 : 정운현 보도국장 겸 앵커
정운현
연말 새해 예산안 처리 등 각종 정국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이 정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유수의 언론들은 연일 새로운 사실과 증언을 쏟아내고 있으며, 청와대와 정치권은 문제의 당사자들의 공방을 구경꾼처럼 지켜보고 있는 형국입니다. 권력자 주변에는 흔히 권력 암투가 있게 마련이지만 이번 사태는 대통령 측근들의 저질 막장 암투라는 점에서 비판의 강도가 더 커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문건 유출’로 규정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으며, 일부 언론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야당의 진상규명 활동에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가 모아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늘 ‘팩트9’ 기획취재에서는 이번 사태를 권력투쟁 차원에서 짚어보고자 합니다. 이 시간은 김현정 기자와 함께 합니다. 김기자 어서 오세요.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세간의 이목이 온통 청와대로 집중돼 있습니다. 청와대는 문제의 문건을 두고 ‘찌라시’를 짜깁기 한 수준이라며 평가절하 하고 있습니다만, 청와대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우선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 담긴 내용을 간단히 짚어주세요.
김현정
지난달 28일자 <세계일보>를 통해 처음 알려진 문제의 문건에는 현 정권의 숨은 실세로 알려진 정윤회 씨가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방 등과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보고를 받고, 또 지시도 내렸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말하자면 비선라인들이 국정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언론들이 연일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급기야 당사자격인 정윤회 씨도 직접 나섰는데요, 정 씨는 문제의 문건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작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정운현
이번 사건은 베일에 가려졌던 정윤회 씨의 실체가 문건을 통해 확인이 됐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자리에서 정윤회 씨에 대해서도 한번 짚어보고 넘어가죠.
김현정
정 씨는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입니다. 최 목사는 1970년대부터 박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는데요, 최 목사의 다섯째 딸 최순실 씨가 그의 부인입니다. 두 사람은 얼마 전에 이혼했죠. 정 씨는 전 부인 최순실 씨를 통해 박 대통령과 알게 됐다고 합니다. 정 씨는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이 인연으로 박 대통령이 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습니다.
정운현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에 대한 검증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정 씨죠?
김현정
예. 그렇습니다. 2004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복당해 대표가 되면서 그의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리자 정씨는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도 박 대통령을 위해 막후에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운현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근 20년간 보좌하면서 막후에서 실력을 행사를 했다는 건 소위 ‘찌라시’ 같은 데서 많이 떠돌았죠. 그런데 박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는 박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의 갈등으로 심심찮게 또 구설에 오르내렸죠?
김현정
맞습니다. 지난 대선 때부터 박 회장 쪽 사람이 대선 캠프에 들어갔다가 기존의 정씨와 보좌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있었구요, 박 대통령 당선 후에는 박 회장이 청와대, 국정원 등 각종 정부기관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다 번번이 배제돼 화를 많이 냈다는 얘기가 당시 여의도 정가에 파다했었죠.
정운현
이번에는 청와대가 작성한 문건으로 드러났지만 이전에도 정씨와 박 회장 간의 알력은 더러 언론에 보도됐었죠?
김현정
예. 지난 3월 <시사저널>은 정윤회 씨 측에서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이 건에 대해 내사에 들어갔는데요, 이를 맡았던 경장이 돌연 인사조치가 내려지면서 내사는 중단됐습니다. 당시 박 회장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이런 일을 시킨 줄 알고 김 실장에게 전화해 ‘경거망동하지 말라’면서 대노했다고 합니다.
정운현
당시 이 보도로 두 사람의 권력암투가 화제가 됐었죠. 한동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정 씨는 이 일로 다시 세상에 나온 셈이 됐죠?
김현정
그렇습니다. 정 씨는 자신이 박 회장을 미행시킨 적이 없다며 시사저널 기자들을 고소했습니다. 이번에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은 정씨와 박 회장의 알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공신 가운데 한 사람이자 합리적 보수인사로 불리는 이상돈 교수는 좀 다른 견해를 내놓았는데요, 이 교수의 얘기를 직접 한번 들어보시죠.
▶ VCR. 이상돈 교수 인터뷰
정운현
이상돈 교수가 박 정권을 겨냥해 쓴소리는 다 했군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시사저널> 보도가 상당히 사실에 가까워 보이는데요, 혹시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확인을 해봤나요?
김현정
네. 해당 기사를 쓴 <시사저널> 기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는데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라며 공식적인 인터뷰는 거절했습니다.
정운현
그럼 ‘정윤회 문건’을 특종 보도한 <세계일보> 기자의 얘기도 들어봤나요?
김현정
예. <세계일보> 기자들도 보도가 나간 후 청와대가 고소를 해서 조만간 법정에서 다툴 예정인데요, 해당기사를 쓴 기자와 인터뷰를 해 보았습니다.
▶ 세계일보 조현일 기자 인터뷰 영상
정운현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사태를 청와대의 권력암투로 보고 진상조사단까지 꾸렸는데요,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할까요?
김현정
예. 우선 이 문건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실에서 만든 것은 확인이 됐구요, 남은 것은 내용의 사실 여부와 유출경위, 그리고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 진상조사가 주목해야할 사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진상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언주 의원을 만나 향후 조사활동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 새정치민주연합 이언주 진상조사위원 인터뷰
정운현
아무래도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모양인데요, 그밖에 우리가 또 주목해야 할 점은 뭔가요?
김현정
네, 일단은 문건 내용의 사실여부를 떠나 누가, 왜 이 문건을 작성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문건을 작성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정운현
그렇겠죠?
김현정
바로 이 부분이 특별한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건 작성과 유출 문제를 눈여겨 봐야한 다고 생각합니다.
정운현
요며칠 나온 언론 보도를 보면 정-박 두 사람의 권력다툼에서 그간 밀렸던 박지만 쪽에서 의도적으로 이 문건을 유출시켜 역공을 폈다고 하는데,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김현정
그런 시각은 빤한 얘기여서 가능성이 낮다는 게 중론입니다. 박지만 측근들과 연락이 닿는 박지원 의원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그건 아니라고 단언한 바도 있구요.
정운현
제3의 세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유출시켰다는 주장도 더러 있지요?
김현정
예, 그렇습니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 측에서 흘렸다더라, 또 ‘문고리 권력 3인방’ 가운데 한 사람이 충성경쟁을 벌인 끝에 유출시켰다더라 등의 온갖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정운현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은 단독행동을 해서 관리가 잘 안 된다죠?
김현정
그 부분은 정윤회 씨 측에서 정호성 씨 관리가 안된다는 것이구요, ‘문고리 3인방’은 다 통제가 잘 안된다고 합니다.
정운현
그래요?
김현정
네. 특히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고 이춘상 비서관이 대선 직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독단이 강하다는 평이 자자합니다. 박지원 의원이 박지만, 이재만, 정윤회 세 사람의 이름 뒷글자를 따서 ‘만만회’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도 괜한 정치공세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정운현
그런데 문건에 보면 김기춘 비서실장 얘기가 나오는데요, 김 실장이 침묵하는 건 왜일까요? 뭐라고 한 마디 할 법도 한데요.
김현정
그 점에 관해서도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긴 합니다. 여의도 정가에서 잔뼈가 굵은 윤태곤 ‘의제와 전략연구소’ 이사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시죠.
▶ 윤태곤 인터뷰: 김기춘의 침묵 왜 그런다고 보나?
정운현
윤 이사 말대로 라면 김 실장은 좀 어른스럽다고 할까, 아니면 2선에서 다음 공격을 대비하고 있는 수비수라고나 할까요.
김현정
예. 현재로선 김 실장은 아무런 스탠스를 취하지 않고 있는데요, 이는 김 실장의 철저한 정치적 계산 끝에 나온 행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정운현
김기춘 비서실장이 정윤회와 박지만 싸움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는 보도도 보이던데요, 이는 결과적으로 박지만에게 암묵적으로 힘을 실어줬다고 볼 수 있나요?
김현정
네, 그런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정윤회와 박지만의 권력다툼은 김 실장이 나서서 중재하거나 말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 실장이 괜히 나섰다가 휘말리는 게 아니냐는 정무적 판단을 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운현
권력자들의 함수관계란 참 복잡하군요. 그런데 우리가 이번 사태를 너무 권력다툼에 주목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이번 사태를 다른 측면에서 보는 시각도 있나요?
김현정
윤태곤 이사와 인터뷰 내용을 잠시 보시겠습니다.
▶ 윤태곤 인터뷰.
정운현
권력자 주변에서는 늘 암투가 벌어지곤 했죠. 그런데 이번 사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막장’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왜 그런가요?
김현정
과거 어느 정권에서나 권력암투는 늘 있었습니다. 다들 2인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죠. 이번 사태가 유독 자극적인 이유에 대해 앞서 소개한 윤 이사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시죠.
▶ 윤태곤 이사 인터뷰
정운현
윤 이사 얘기처럼 이번 사태는 수준 낮은 권력암투라고 하겠습니다.
김현정
예, 그래서 야당에서도 총공세를 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운현
두 차례 집권으로 국정운영 경험이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인사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던가요?
김현정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비상대책위원을 만나 봤습니다. 문 위원은 작심하고 박근혜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잠시 보시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 인터뷰
정운현
이 정도라면 문 의원으로선 진짜 작심하고 비판한 셈이군요.
김현정
네. 그렇습니다.
정운현
이번 사태를 취재하면서 특별히 느낀 점은 뭔가요?
김현정
앞서 보신대로 이미 권력 내부에서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 집권 2년차에 벌써 레임덕이 온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권력자 주변에서는 권력을 둘러싼 암투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번 사태의 경우 여기에다 박 대통령의 소통 부재, 인사 실패, 주변관리 부실 등이 겹쳐서 최악의 상황을 초래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근본책임은 결국 박 대통령 무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운현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아침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문건을 외부에 유출한 것은 국기문란사태”라며 “선진국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근거 없는 일로 나라를 뒤흔드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문건 유출’과 ‘근거 없는 보도’라고 봤습니다. 바로 이 점이 박 대통령의 가장 문제인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문건의 내용이며, 문건 유출은 곁가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권력의 시녀’로 조롱받는 검찰이 문건 내용의 진실을 규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야당의 요구대로 국정조사나 특검으로 가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끝으로 이번 사태의 근원은 청와대 비서실의 기강해이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그같은 분위기가 바로 ‘정윤회 문건’을 낳은 것입니다. ‘적폐’를 탓하기 전에 박 대통령은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 그리고 보다 철저한 주변관리에 더욱더 힘을 쏟아야합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공약한 ‘특별감찰관제’를 이제라도 실행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김 기자, 수고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