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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주기, “206개 뼛조각 중 몇 개라도 찾아서, 꼭 장례식 치러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인터뷰1] 우리는 홍대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세월호에 아직 가족이 있다”
등록날짜 [ 2016년04월16일 17시20분 ]
팩트TV 고승은 기자
 
【팩트TV】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고귀한 생명이 목숨을 잃은 지 2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 세월호에 대한 진실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이 지금까지 왔다. 또 아직 세월호엔 9명의 실종자가 남아 있다.
 
유가족은 극한 단식까지 하며 진상규명을 이룰 수 있는 제대로 된 특별법을 강력 요구했지만, 결국 수사권·기소권이 제외된 반쪽짜리 특별법만 만들어졌다. 
 
반쪽짜리 특별법에 따라 세월호 특조위가 구성됐지만, 지난해 정부가 강행한 시행령에 따라 진상규명은 더욱 난항을 겪고 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조위를 ‘세금도둑’으로 폄하하고, 일부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나 세월호 인양에도 반대해 여론과 유가족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세월호 인양은 오는 7월이 예정이지만, 6월에 세월호 특조위 활동이 종료될 예정이다. 이대로 간다면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열쇠인 세월호 선체에는 제대로 손도 못 대보고 끝나는 상황마저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세월호 광장’으로 불리는 광화문 광장 외에도,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홍대에도 세월호 풍경이 있다. 매주 월~토요일 오후 2시부터 한시간 여동안 서울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쪽에선 “아직 세월호에 사람이 있다”는 외침이 들려온다. 외치는 이들은 지나가는 시민들에 노란 리본을 나눠주고 있다. 바로 이들이 외치는 것은 세월호의 조속하고 온전한 인양이다.
 
<팩트TV>는 지난 2일, 홍대에서 피켓팅을 진행하는 세 분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세 편에 걸쳐서 인터뷰를 연재한다. 처음 인터뷰한 분은 홍종철 씨(60대 남성)라는 분이다. 
 
 
 
세월호 사건에 어떻게 관심가지시게 됐나요?
 
2014년 4월, 처음 참사가 났을 땐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어요. 2014년 5월 중순쯤 우연히 광화문 광장 들렀다가 사람들 몇몇이 세월호 관련해서 피케팅하는 걸 보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됐죠. 그러다가 7월쯤에 유민아빠를 비롯해서 유가족들이 단식에 들어갈 때쯤 광화문을 들렀을 때, 지나가는 노인들이 서명대에 있는 유가족 어머니들에게 빨갱이 소리까지 하면서 쌍욕을 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래서 어머니들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광화문에 머물게 됐죠.

전 그해 11월달까지는 해결될 줄 알았어요. 이렇게까지 2년 지나도 해결이 안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언제부터 홍대에서 피켓팅을 하시게 됐나요?
 
광화문 서명대에서 1년여 정도 있다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한동안 입원했죠. 한동안 쉬다가 유가족 어머니 한 분이 홍대에선 하루 종일 하는 것이 아니라 한시간~한시간 반만 피케팅하면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작년 11월쯤부터 홍대에서 피케팅을 하게 됐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세월호 활동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즐겁게 안하면 유가족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예전 광화문 광장 서명대에서 일베 애들이 서명지에 장난 많이 치고 도망가길래, 끝까지 쫓아가서 잡아오기도 했죠. 그렇게 짜증날 때도 있었지만 다 웃으면서 지나갔어요. 생각해보면 감동적인 게 더 많아요. 광화문에 있을 땐 나이어린 꼬마들이 와서 ‘언니 오빠들 위해서 고생 많으시네요’ 그 한 마디가 저에겐 힘이 됐죠.

특히, 홍대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었을 때,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가 한참 제가 든 피켓(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쳐다보면서 가더라구요. 왜 그러나 했더니, 7~8분 뒤에 다시 와서 자양강장제를 건네주며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90도로 숙이더라구요. 그러고선 피켓 있는데서 한 1미터 떨어져서 90도로 또 인사하더라구요. 그걸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다니는데도 깍듯이 예의를 차리는 걸 보니까 내가 잘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세월호에서 밝혀야할 ‘진실’이란 무엇일까요?

진실은 세월호가 온전히 인양돼야 알 수 있겠고, 미수습자부터 반드시 찾아내야죠. 물론 몸뚱이는 못 찾지만, 206개 뼛조각 중 몇 개라도 찾아서 꼭 장례식을 치러야 합니다. 그 다음에 진실을 따져야죠. 사고 나던 당시에 구조를 안 한 정황이 엄청나게 많아요. 정말 왜 구조를 안했는가.

해상관제탑(진도·제주VTS)에서 자기들끼리 무전 주고받은 거 삭제·편집했다는 의혹도 나왔고, 세월호 같은 큰 배가 그렇게 급변침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혹도 있지요. 또 그 외에도 수많은 의문점들이 있기 때문에 유가족분들은 너무 궁금하고, 알고 싶기 때문에 그 진실을 명백히 밝혀달라는 거에요. 

그러면서 근무태만해서 직무유기했던 사람들 다 처벌하고 교도소에 보내면 되는데, 실제로 교도소 간 사람들은 이준석 선장이랑 일부 선원들, 해경 123정장밖에 없어요. 나머지 해상관제탑에 있던 자들은 모조리 승진했죠. 이게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실인가요?

특히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해군 123정하고 어선들이 붙어서 밖에 나온 사람들 다 실었잖아요. 그런데 유리창 네 곳을 아이들이 두들겼어요. 123정에 있던 해경은 밖에 나온 사람들 어선에게 맡기고 망치로든 총으로든 유리창을 부수고 아이들 끄집어냈으면 100명은 충분히 구했을 거에요. 이건 고의적 살인이 아니고 뭡니까?

내가 123정장이었다면 정부가 뭐라 지시하든 무시하고, 유리창 깨고 아이들 다 구해라고 지시했을 거에요. 그게 마땅히 할 일 아닌가요? 국민 세금을 받고 일하는 해경이잖아요. 예를 들면 미국에서 911사태 났을 때, 소방관 수백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죽는다는 걸 예감하고도 ‘우리는 세금을 받는 공무원이다’는 심정으로 들어갔다가 떼죽음 당했잖아요.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할 때 해경은 뭐했지요? 배안으로 들어간 해경 한 명이라도 있나요? 바깥에서 돌다가 왔잖아요. 왜 당시 세월호 안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유가족들은 이런 의문점들을 알고 싶다는 거잖아요. ‘돈을 달라, 특혜를 달라’ 이런 게 아니잖아요? 저도 유가족 분들 그렇게 많이 만나 뵈었지만, 돈이나 특혜 바라는 분 단 한 분도 못 봤어요. 특히 유민아빠가 생활고로 투쟁을 접는다고 했을 때 마음 정말 아팠어요. 
 
 
두 달 뒤, 6월이면 세월호 특조위 활동이 종료되는데요. 어떤 활동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2주기 지나면 세월호 생각하던 사람들이 많이 없어질 거 같아요. 세월호 인양하기 전에 세월호 특조위 활동이 종료되잖아요. 만약 6월달에 배가 올라와서 특조위가 조사하겠다고 하면, 국민들이 특조위 기간 연장해달라고 공감대가 생기거든요. 하지만 7월에 배가 올라오면 조사할 팀이 없어요. 핵심증거인 세월호 선체를 조사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배가 올라오면 자체 수습팀을 꾸릴 수 있도록,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가족 측에서 구성한 수습팀이 세월호 선체에서 유품이라도, 실종자 뼈 한 조각이라도 찾고 중요한 거 다 사진으로 찍어야지 않겠습니까. 정부에선 세월호가 올라오면 유가족이 발도 못 딛게 가로막고, 다 은폐하려고 할 거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수습팀을 꾸린다면 저는 반드시 무보수로 가서라도 해줄 거에요. 내가 들어가면 실종자 뼈 한조각, 유품 하나까지 꺼낼 겁니다. 저는 정말 그게 두렵습니다. 정말 지금부터라도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가족을 비롯해서 많은 시민들은,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관련 진상규명 행위를 원천 탄압하고 있다고 말씀들 하시지요. 어떤 생각이십니까?
 
처음에 시민들이 분노해서 쏟아져 나오니까 경찰 측이 일방적으로 참가자들을 채증한 다음 소환장을 남발했죠. 또 연행한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벌금 때려서 동력을 죽였죠. 공식적으론 500여명이라곤 하는데, 적어도 수천이상 될 겁니다. 경찰들이 또 시민들을 연행할 때 연행수칙이 있죠. 주로 노란 옷을 입고 있는 유가족과 일반 시민과는 차이가 나잖아요. 그래서 일반 시민들만 연행하라고. 저는 집회 현장에서 그걸 무전으로 몇 번 들었어요. 결국 일반인만 잡아서 소환장 날리고 벌금 물리면 더 이상 모이기 힘드니까요.

제가 볼 때는 세월호가 올라오고 나서도, 짧게는 2~3년, 길게 보면 10년 지나야 제대로 된 진상규명할 수 있다고 봐요. 결국엔 시간이겠죠. 하지만 유가족들도 자원봉사자들도 지쳤고, 누군가라도 끈질기게 가야하는데 정말 마음이 아프고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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