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이기명칼럼】신뢰와 희망이 문재인에게 있다.
평소에 점잖던 친구들이 점점 성질이 고약해진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목소릴 높인다. 입에서 상소리가 거침없이 나온다. 그래도 국가원수라고 자제하던 막말이 듣기 민망하다. 그렇게도 머리에 든 것이 없느냐는 질타다. 아무리 참고 봐주려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담뱃값을 올리더니 늙은이 주머니 생각해서 ‘봉지담배’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 나온다. 드디어 터졌다. ‘이런 벼락 맞을 놈들’ 말을 그대로 전한다. 봉지담배가 뭔지 알기나 하는가. 잎담배 썰어서 건빵봉지 같은데 담은 것이다. 봉지에서 담배를 조금 꺼내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침을 발라 피운다.
나무 끝에다 못을 박아 땅에 떨어진 꽁초를 콕콕 찍어 줍는다. 이것을 까서 모은다. 길가에 펼쳐놓고 판다. 이것을 사다 늙은이들이 피운다. 담배가 뭐기에 끊으면 될 것을 못 끊는다. 늙어서 낙이라고는 담배 피는 건데 이제 담배도 맘대로 못 피우는 세상이 됐다. 나라 꼴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가. 쌍욕을 퍼붓는 늙은이들에게 할 말이 없다.
소주잔을 비우던 늙은이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우리가 남이가’와 ‘난닝구’와 ‘핫바지만’ 남아 있다. 무슨 말인지 설명이 더 필요한가.
멀쩡한 정신으로는 불치의 망국병이라고 한탄을 하고 이 병을 고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분노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 이완구 인준을 앞두고 충청권 출신 새누리 의원들이 카메라 앞에 서서 이완구를 지지하는 열변을 토했다. 밑에 깔린 것은 충청도의 지역 정서다. 국회의원이란 자가 하는 소리가 겨우 국민을 갈라놓는 지역감정조장 선동이다. 저런 자들을 뽑은 우리 국민들은 고생해도 백 번 싸다.
■비리백화점 국무총리
<1> 차남 소유,땅 투기 의혹
<2> 타워팰리스 ‘딱지’ 매입 등 강남권 집중 투기 의혹
<3> 본인(보충역)과 차남(면제) 병역 기피 의혹
<4> 처남 통한 경기대 조교수 특혜채용 의혹
<5>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
<6> 우송대 ‘황제 특강’ 논란
<7> 국보위 활동 전력, 삼청교육대 관여 의혹
<8> 억대 연봉을 받던 차남, 이 후보자의 지역 세대원으로 등록,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안 냈다는 의혹
<9> 15대 총선 선거공보, 수원대강사 경력, 허위 기재 의혹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의혹들이 남아 있다. 이완구가 얼마 동안 총리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가 다니는 길목마다 지키고 있을 의혹이며 그의 뒤통수를 따라다닐 의혹이다. 이런 총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가 선택할 가장 현명한 방법은 ‘총리와 의원직 사퇴’다. 그것이 인간으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었음에도 이제 그는 기회를 잃었다.
지도자는 신이 완벽한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가장 보편적 상식인의 선택이다. 실패한 지도자가 유난히도 이 땅에 많은 것은 상식을 저버린 인간이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명박이며 그다음으로 또 한 사람의 무능한 지도자다. 무능에다 고집불통이면 대책이 없다.
한국의 전문 지식인들이 대통령의 무능을 지적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비단 여론조사를 지적하지 않더라도 국민들 대부분이 느끼고 있는 절망감은 잘못된 국민의 선택이 어떤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완구의 총리 임명은 우리 정치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코미디로 기록될 것이다. 이런 참담한 코미디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국민들이 더없이 불쌍하다. 감투에 눈이 멀면 보이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이번 총리임명 과정에서 보여준 이완구의 처신은 ‘인간이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교훈이다.
2년 동안 대통령은 총리로 다섯 명이나 지명했다.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은 낙마했고 이번 이완구는 최악이었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국민이 안쓰럽다. 정치를 어떻게 해 나갈 생각인가.
■왜 문재인인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10억대 뇌물을 먹은 해군참모총장과 그의 아들은 감옥에서 떨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별 셋을 달고 감옥에 간 공군 장성은 또 무슨 악몽에 시달리고 있을까.
비록 전시작전권은 미국에 넘겨줬다 해도 자신들의 불법부정으로 희생될 부하들은 피를 나눈 전우며 부하다. 할 말이 있는가. 방위산업 부정과 성추행으로 쇠고랑을 찬 똥별들은 무슨 얼굴로 국민을 바라볼 수 있는가. 솔직하게 말해 보라. 전쟁이 나면 부하들에게 최일선에서 목숨을 바치라고 할 자신 있는 지휘관이 몇 명이나 되는가. 지금도 일선에서 군대생활을 하는 자식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뇌물 챙긴 똥별들은 아는가.
왜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묻고 또 되물어도 대답은 하나다. 무능한 정권 부패한 정권 때문이라는 대답 이외에는 할 말이 없다. 55년 전 군대 경험담이다. 훈병연대에서 우리 중대는 사고가 없었다. 중대장이 훌륭했다. 이유는 그것 하나였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고 훌륭한 지도자 밑에 부패한 벼슬아치들 없다. 지금 어떤가. 대답 좀 해 보라 ‘우리가 남이가’ 하는 왕실장 아래 누가 존재할 것인가.
문재인은 하늘에서 떨어진 인간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결점이 있을 것인가. 그래도 문재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한 가닥 희망이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에 무슨 잘못이 있었는가. 무슨 부정을 저질렀는가. 문재인이 걸어온 길은 거울처럼 투명하다. 시골집 처마 끝이 개울가에 나왔다는 것까지 탈탈 털어낸 과거다. 그의 거짓말이 어떤 것이었던가. 우리 국민들은 지도자의 거짓말에 지치고 지쳤다.
다음은 너무나 비참한 한국적 현실이다. 아무리 못나고 무능해도 지금만큼이야 못하리라는 기대다. 세상없는 거짓말쟁이라도 지금보다 더 거짓말을 할 수 있으랴. 그것만 아니라도 한국에서 지도자 자격은 있다.
문재인이 당 대표로 선출된 지 이제 1개월도 안 됐다. 솔직히 시종일관 네거티브의 흙탕 속에서 허우적대며 당선됐다. 대의원과 여론조사에서 겨우 이겼다. 그가 당 대표가 된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가장 최근에는 새누리당과 불과 0.9% 차이까지 근접했다.
대통령 후보 지지도에서는 단연 으뜸이고 2위와 3위를 합쳐도 문재인 지지율에 못 미친다.
지지율이란 오르고 내리고 언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흐름이 있고 추세가 있고 느낌이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 바로 그것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희망은 신뢰가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 지금 신뢰와 희망이 문재인이라고 국민은 믿기 시작한 것이다.
■억울해서 못 살겠다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가 수레에 파지를 주어 힘들게 끌고 간다. 파지에 보이는 신문기사는 재벌이 가만히 앉아서 수십조 원을 벌었다는 것이다. 팔자거니 생각해야 하는가. 화도 내지 말아야 하는가. 고물상에 팔아 몇천 원 받아 집에 들어가면 차디찬 쪽방에 영감이나 있으려는가. 머리맡에는 보건소에서 타온 약이 쌓여있고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 자식들은 소식을 끊은 지가 오래고 하루 사는 것이 욕이다.
“복지가 과잉되면 국민이 게을러진다”
집권 여당의 대표라는 분이 하신 말씀이다. 과잉복지 혜택 좀 받아서 국민이 하루라도 게으르게 살아봤으면 하는 게 소원이다. 이걸 말이라고 지껄이는가. 쪽방에서 새우잠 자는 늙은이에게 한마디 해 봐라. 맞아 죽기 십상이다.
총리 인준 받는다는 인간이 ‘강남 타워팰리스’ 딱지로 떼돈 만졌으니 그게 과잉복지다.
국민들이 호강하면서 살자는 게 아니다. 일한 만큼만 대우받고 살자는 것이다.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 좀 달라는 것이다. 국민의 분노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생긴다. ‘저 자식은 놀면서도 잘 먹고 사는데 난 왜 죽으라 일하는데도 이렇게 못 산단 말이냐’ 이것이 쌓이고 쌓여 폭발 직전이다. 할 말 있는가.
문재인이 무슨 재주로 국민들을 편안하게 잘 살 수 있게 할 수 있는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할 수가 있다. 부당하게 잘 먹고 잘사는 인간이 없고 서로 도우며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국민에게 보여주면 국민의 분노는 가라앉는다. 국민은 지금 문재인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게 묻는다. 지난 2년간을 돌아보라. 자신 있게 이건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 보라. 정직하게 한 번만 말해라.
국민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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