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팩트9뉴스】기획취재-돈 없는 부탄, 왜 행복한가?
진행 : 정운현 보도국장 겸 앵커
정운현
여러분, 뜬금없는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입니다.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음을 자랑할 때 흔히 거론하곤 하죠. 과거 6, 70년대에 비교해 볼 때 물질적으로는 엄청 발전했습니다. 국민소득도 2만 달러 수준으로 올랐으며, 생활 또한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지금 과연 행복할까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습니다만, 아직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행복보다는 오히려 불행한 국민들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인당 국민소득 2500달러의 가난한 농업국가 부탄. 부탄 국민의 97%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믿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데요, 이 나라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기획취재에서는 ‘가난한 왕국’ 부탄의 국민들은 왜 행복한지를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양아라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양 기자가 어서 오세요.
정운현
양 기자, 먼저 ‘부탄’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죠?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양아라
네. 부탄은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 동쪽 끝에 있는 작은 왕국입니다. 인도와 네팔 그리고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데요, 인구는 약 70만 명, 국토는 한반도의 5분의 1 해당하는 작은 나라입니다. 국토의 70%는 험준한 산악지대입니다.
정운현
산으로 고립되어 있어 ‘은둔의 왕국’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자연환경이 척박하면 물산이 부족해 행복하다고 여기기 어려울 법도 한데요.
양아라
교통은 불편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워한다고 합니다. 부탄은 도시에도 교통 신호등이 없다고 합니다. 수도인 팀부에는 신호등 대신 경찰이 수신호로 차량을 통제하는데요, 서로가 양보하고 배려한다고 합니다.
정운현
과거에는 관광객들을 2만 명으로 제한했다고 들었는데, 왜인가요?
양아라
외국인 입국자 수를 제한한 것은 자연과 전통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외국인 관광객 수입은 이 나라의 복지 재원으로 쓰이고 있는데요, 요즘 부탄은 외국인들에게 자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정운현
부탄은 불교 국가죠? 불교가 이들의 행복과 관련이 있나요?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부탄은 군인보다 승려가 더 많다고 합니다. 국민들은 불교 경전의 경구가 적혀있는 마니를 돌리면서 공동체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부탄 사람들은 ‘현재에 만족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에 따른 ‘욕심 없는 삶’을 추구하고 잇는데요, 이것이 이들이 행복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정운현
그렇군요. 부탄은 정부의 모든 정책이 ‘국민총행복’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정책이 시작된 겁니까?,
양아라
4대 국왕 때부터 시작됐는데요, 아무리 경제성장을 해도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정책은 실패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4대 국왕은 바로 이런 통치정신을 가지고 ‘GNH’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정운현
GNP는 익히 들어봤지만 ‘GNH’는 뭔가요?
양아라
‘GNH’의 ‘H’는 Happiness, 즉 행복의 머릿글자입니다. 따라서 ‘GNH’는 ‘국민총행복’을 뜻합니다. 국민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경제성장이 아니라 행복에 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발전은 국민들의 행복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운현
그러면 이를 위한 무슨 특별한 정부기구 같은 게 있습니까?
양아라
예, 부탄에는 ‘국민총행복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는데요, 국가의 모든 정책은 이 기구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여기서는 국가의 정책이 국민들의 행복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따져서 국민행복을 증진시키는 경우에만 통과시킨다고 합니다.
정운현
우리의 경우라면 경제적 풍요가 행복의 기준이라고 여기기 쉬운데, 참 여러 모로 독특한 나라군요.
양아라
네, 부탄은 앞서 설명드린 대로 ‘국민총행복’이라는 패러다임으로 국민들의 행복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탄은 인간의 행복은 궁극적으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성장을 앞세운 무분별한 개발을 금지해 자연훼손을 막고 또 전통문화 보존에도 힘쓰고 있는 나라입니다.
정운현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말이 인상적이군요. 그런데 부탄은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실상이 어떤가요?
양아라
그렇습니다. 부탄은 아직까지는 농경국가이며 대가족이 자급자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휴대폰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부탄에는 변화의 바람도 불고 있다고는 합니다. 그래서 고산지대 국민들 가운데는 도시로 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식수와 쓰레기 처리, 교통 혼잡, 주택 문제 등 산업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부탄의 GNH 결과를 보면, 가족관계에서 90% 이상이 만족감을 보이고 있어 아직은 따듯한 공동체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정운현
한국을 포함해 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은 경제는 성장했지만 국민은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으로 오히려 불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양아라
부탄 국민들의 대다수는 농민인데요, 이들 대부분이 자신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3대 국왕은 농노를 해방시키고 귀족과 국왕 소유의 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이는 현 5대 국왕에 와서도 계속됐습니다. 부탄은 지도층과 일반국민들 사이의 생활 격차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부탄은 가난하지만 ‘기아’와 ‘거지’가 없는 나랍니다.
정운현
자, 이번엔 GNH, 즉 국민총행복의 실상을 한번 따져볼까요? 주관적인 행복의 개념을 국가 정책으로 제도화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양아라
부탄은 ‘국민총행복위원회’를 통해 국민총행복 정책에 대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또 실행하고 있습니다. 부탄 헌법에는 국가는 국민행복 정책을 추진하는 여건을 마련하고, 모든 개발행위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행복에 있다고 명문화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부탄 정부는 국민총행복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행복을 찾게 만들고, 이를 보다 지속적인 사회적 성장으로 본 것입니다.
정운현
그렇다면 GNH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양아라
‘GNH’의 4대 축은 1) 평등하고 지속적인 사회경제발전 2) 전통가치의 보존 및 발전, 3) 자연환경의 보존 4) 올바른 통치구조 등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또 그 아래 삶의 수준에서 비롯해 심리적 요소까지 총 9가지 영역에 33개의 지표가 마련돼 있습니다. 이 지표를 가지고 정책을 평가하게 됩니다. 보시다시피 아주 구체적인데요,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의식주는 물론이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삶의 질을 높이는 요소들까지 고려하여 국민의 생존과 생활의 기초를 국가가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운현
‘GNH’의 4대 축, 따지고 보면 특별한 것도 아닌데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비록 가난하고 작은 나라지만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군요.
양아라
부탄의 행복은 현 국왕의 아버지인 4대 국왕한테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국가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무엇이 국민들을 행복하게 할까?”를 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또한 국왕 자신이 행복한 국민의 살아있는 사례가 되기 위해 평소 검소하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정운현
결국은 최고지도자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군요.
양아라
그렇습니다. 4대 국왕은 스스로 왕권을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했습니다. 2008년 부탄 왕국에서 처음으로 의회투표가 이뤄졌는데요, 이를 통해 국왕 자신도 한 사람의 국민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쩌면 부탄 국민들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국왕과 동등하고 또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행복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운현
참으로 훌륭한 지도자군요, 우리로선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혹시 국내에서 부탄의 GNH 개념을 도입한 사례가 있나요?
양아라
예, 서울시와 충청남도에서 시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운현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해도 우리와는 역사와 문화 같은 게 너무 달라서 그대로 도입하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을 텐데요?
양아라
그렇습니다. 충청남도의 경우 국민총행복 개념을 도입해 충남에 맞는 행복지표를 개발하여 측정하여 하고 있습니다. 충남도 관계자와 전화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 VCR. 이수철 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정운현
경제 살리기가 아닌, 국민의 행복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반갑군요.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행복시대’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습니까?
양아라
그렇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행복정부’를 내세웠습니다만 아직 별다른 성과는 없는 편입니다. 정부는 무엇보다 공공부문에서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책 개발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국민행복을 위해 새로운 지표 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공공부문과 도시계획 정책에서 ‘행복평가지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전문가의 견해를 한번 들어보시죠.
▶ VCR. 변미리 서울연구원 미래연구센터장
양아라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지만 전 국민이 행복한 부탄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요? 행복은 ‘단계’나 ‘수준’이 아니라 ‘방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가가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해 정책의 방향을 설정한다면 결과적으로 국민행복은 뒤따라 올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 논리, 안보 논리, 정치 논리 등을 앞세우다 보니 국민은 늘 뒷전이 되고 그 결과 국민행복 역시 뒷전으로 밀려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운현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1조4천억 달러로 세계 1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객관적 수치로 보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유엔 조사 결과 한국의 행복지수는 156개국 가운데 41위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까지 보탠다면 가히 비참할 정도입니다. 고도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심각한 빈부격차와 그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의 물질만능주의와 오도된 가치관 역시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국민행복을 위해 제도개선과 함께 국민의식 개혁도 절실한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양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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