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팩트9뉴스】 기획취재-고문후유증 “차라리 죽고 싶다”
진행 : 정운현 보도국장 겸 앵커
정운현
오늘은 ‘고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고문의 잔혹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는 독립운동가 등 애국지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악랄한 고문을 자행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를 짓밟고 민주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한 도구로 고문을 자행했습니다. 지난 2012년 고 김근태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당했던 고문의 실상이 앞서 보신 ‘남영동 1985’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김 전 의원은 전두환 정권에서 당한 고문과 후유증을 앓다가 2011년 타계했습니다. 고문으로 인한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육체적인 고통도 크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가족에게 대물림되기까지 합니다. 육체적인 치료도 해야지만 정신적인 치료도 병행해야 합니다. 최근 경기도는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는 민주화 운동 유공자에게 무료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사업지침을 개정했습니다.
오늘 ‘팩트9’에서는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민주화 유공자들의 얘기를 다뤄볼까 합니다. 취재를 담당한 정락인 부장과 함께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정 부장, 어서 오세요!최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는 민주화 유공자에 대한 정신적 치료 지원을 약속했다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그것부터 소개해 주시죠.
정락인
지난 9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재준 경기도의원은 도의회 도정 질의에서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는 민주화운동 유공자에 대한 정신적 치료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약 두 달 후인 지난달 17일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취약계층 진료비 지원사업 지침’을 개정해 민주화운동 유공자의 정신과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정운현
남경필 도지사는 새누리당 소속 아닙니까?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대승적인 결단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정치권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정락인
남경필 지사의 결정에 야당도 이례적으로 감사를 표하며 환영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남 지사의 결정이 중앙정부와 다른 지자체들에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고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당 공개회의에서 “따뜻한 소식이며, 작지만 소중한 출발”이라며 “남 지사의 결정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시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운현
남경필 지사가 속한 새누리당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정락인
새누리당은 여기에 대한 논평도 안 했고, 이후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정운현
정부에서는 ‘민주화 유공자 관련자’ 지원을 위한 법률을 만들어 의료지원도 하는 것으로 아는데,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적 치료는 지원이 안 됐던 것인가요?
[자료사진-표] 민주화운동 관련자 &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법률 비교
정락인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민주화운동(5.18 민주화운동 포함) 관련자에 대해서 명예회복과 함께 보상 등이 이뤄졌습니다. 여기에는 보상금 지원뿐만 아니라 의료지원도 포함됐습니다. 그러나 의료지원에는 ‘신체적’ 부상만 적용됐지, 정신적 피해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치료는 고스란히 당사자의 몫이었던 것입니다.
정운현
향후 경기도는 치료를 위해 어떤 지원을 할지도 궁금한데요.
정락인
이번에 고문 후유증 민주화 유공자의 정신적 치료 요청을 제안한 이재준 경기도의원에게 향후 경기도의 지원방식을 물어봤습니다. 또 치료에 대해서는 배기수 경기의료원 원장에게 직접 들어봤는데요. 두 분의 인터뷰 내용을 이어서 보시겠습니다.
▶ VCR. 이재준 경기도의회 의원
▶ VCR. 배기수 경기의료원 원장
정운현
현재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민주화 유공자는 전체 몇 명입니까?
정락인
보훈처에 따르면 지금까지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4.19혁명과 5.18민주화 유공자를 포함해 5,084명 정도였고, 이중 경기도에 약 2000여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고문 후유증을 앓고 있는 유공자의 숫자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 VCR. 경기의료원 전경과 정신과 치료실
정운현
고문 후유증을 앓고 있는 민주화 유공자의 지원 문제는 경기도에만 국한돼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다른 자치단체에서는 지원 움직임이 없습니까?
정락인
아직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지만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지원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고문 피해자 정신치료를 위해 설립한 ‘광주 트라우마센터’의 운영도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정운현
광주 트라우마센터는 고문 등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의 치유를 위해 설립된 것 아닙니까? 여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정락인
광주 트라우마센터는 지난 2012년 10월에 개소됐으며, 지금까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등을 상대로 치료와 치유활동을 병행해 왔습니다. 처음 개소할 때 국가 정신보건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보건복지부에서 예산을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보건복지부가 시범사업 예산을 지원한 전례가 없다며 예산집행을 하지 않아 더 이상 센터 운영이 어렵게 된 것입니다. 국회에서는 30억원의 예산까지 확보한 상태지만 보건복지부가 예산집행을 미루면서 생긴 일입니다.
정운현
이미 예산까지 확보된 상태에서 보건복지부가 지원을 거부한 것은 이해가 좀 안 되네요. 어찌됐든 국내에서 유일하게 있는 고문치료센터가 문 닫을 운명이란 얘기군요. 광주시는 여기에 아무런 대책이 없는가요?
정락인
그렇지는 않습니다. 5.18 관련단체들과 광주시의회에서는 독립적인 트라우마센터의 건립, 운영 추진을 요구해왔습니다. 광주광역시는 광주 트라우마센터를 전문기관에 위탁 운영키로 하고 수탁기관을 공모했습니다.
정운현
새로 만들어도 부족할 판인데 그나마 운영되고 있는 센터의 지원을 끊다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문으로 인한 고통도 그렇지만 후유증도 상상을 초월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후유증을 견디다 못한 피해자들이 자살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실제 피해자들의 고통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정락인
고문은 피해자의 정체성을 유린하고 굴복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 야만적인 국가폭력입니다. 고문 피해자들은 고문 상황에서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또 인간성과 정체성을 말살당하고 굴복해야 하는 극단적인 고통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고문으로 인한 고통은 가족에게 대물림되는데, 가족 간의 결별, 사회적 지위의 상실, 사회적 박탈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그것입니다. 광주 트라우마센터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고, 자체 제작한 영상을 직접 보시겠습니다.
▶ VCR. [전화인터뷰] 광주트라우마센터 관계자
▶ VCR. 광주트라우마센터 자체 제작 영상
정운현
고문후유증으로 고통 받다 자살한 사람도 더러 있지요?
정락인
네, 그렇습니다. 참고로 광주 트라우마센터가 개소된 2012년 이전에 자살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만 해도 46명이나 됐습니다. 다른 지역까지 확대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운현
해외에서는 고문 치유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정락인
유엔은 지난 1975년 12월9일 제30회 총회에서 ‘고문금지선언’을 채택했습니다. 1987년 유엔총회에서 고문방지협약이 발효됐으며, 1997년 12월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는 아직도 공공연하게 고문이 횡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고문 치유를 위한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캄보디아 등에서는 고문 피해자 지원센터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등 잔혹한 범죄인 고문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여기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정운현
20세기 들어 전 세계는 눈부신 문명의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잔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문은 무한대로 진화했습니다. 육체 뿐 아니라 정신까지 파괴하는 고문은 문명국가의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와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무자비한 고문이 자행돼 왔습니다. 지금은 고문이 없어졌다고는 하나 그 고통과 피해는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그대로 대물림 됐습니다. 정부는 더 이상 고문으로 후유증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고문 피해자들의 상처와 고통 치유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저희 ‘팩트9’은 불의한 국가 공권력이 자행한 고문 피해자들의 실상과 그들이 겪고 있는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보도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정 부장, 오늘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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