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팩트9뉴스】 집중인터뷰-6차례 방북 재미교포 신은미
진행 : 정운현 보도국장 겸 앵커
정운현
이명박 정권 이후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5.24조치’ 이후 정부 차원의 대화는 물론 민간차원의 인적 교류도 거의 끊기다시피 한 실정입니다. 최근 북한은 주변 강대국을 상대로 왕성한 외교전을 벌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내부 사정도 예전보다 많이 호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집중인터뷰’에서는 2011년 첫 방북 이래 그간 여섯 차례나 북한을 방문한 재미교포 신은미 씨를 초대해 최근 북한의 변화상과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어서 오세요.
그간 여러 차례 북한을 다녀오셨는데, 첫 방북은 언제, 어떤 계기로 가시게 됐나요?
신은미
2011년 10월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 첫 북한여행을 하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다음 여행지를 찿다 '북한이 남한 국적을 제외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관광이 개방되어 있다' 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미국국적인 저희도 물론 갈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그곳도 '우리나라의 일부인데 한번 가 보자'고 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정운현
북한의 어디를 주로 다녀오셨습니까?
신은미
함경북도 주만강을 따라 나진-선봉, 청진, 길주-명천의 칠보산, 함흥, 흥남. 강원도 원산, 금강산.평안북도 묘향산. 평안남도 평양, 남포. 황해도의 개성, 판문점, 해주, 재령, 신천, 장수산, 성불사가 있는 정방산 등 여섯 차례 60일간 방방곡곡을 다녔습니다.
정운현
최근 평양의 거리는 변화가 있습니까? 전기사정은 어떻던가요?
신은미
최근에 간 2013년 9월에는 밤거리도 다녀봤는데 전기사정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정운현
북한에서 신은미씨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몇 장 준비했습니다. 화면으로 보시죠.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특별히 달라진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신은미
달라질 거라는 기대들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활기차고 ....
정운현
북한, 특히 평양 주민들도 핸드폰이나 컴퓨터 같은 것들을 많이 사용하던가요?
신은미
네,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어린아이가 핸드폰을 갖고 문자메세지를 읽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가입자가 250만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운현
6. 그간 방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신은미
한마디로 너무나 다르고 또 너무나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북한 여행을 가기 전까지 반공교육 또는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는 북한과 직접 가서 보고 경험한 북한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와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던 북한의 동포들은 우리와 너무나도 똑같았습니다.
정운현
신은미씨가 북한에 갔을 때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북한의 모습들을 화면에 직접 촬영했습니다. 화면으로 보시죠.
▶ VCR. 북한의 모습
정운현
북한 주민들과도 가까이서 접촉해 보셨나요?
신은미
네, 안내원외에도 가는 곳 마다 동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른 외국 관광객들이야 말이 안통하니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불가능 한데 저희는 말이 통하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재미동포라고 하면 안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단 동포라고 하면 정말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정운현
중소도시나 지방의 식량사정이나 주민들 생활은 어땠습니까?
신은미
일단 작년은 풍년이라고 들었습니다. 분조제라는 것을 작년에 전국적으로 실시했는데 아마 그것이 식량증산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비료 생산량도 증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3, 4년 내에는 완전 자급자족을 하지 않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최근 탈북자의 숫자가 감소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저는 그 이유를 식량사정이 나아진 것이 주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운현
북한에서의 방문활동이나 취재는 자유로운 편인가요?
신은미
저는 취재활동을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순전히 관광을 목적으로 갔습니다. 관광은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물론 안내관광이지만 원하는 곳을 말하면 기꺼이 응해 주었습니다.
정운현
주변에서는 신 선생님의 방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던가요?
신은미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보수성향이 아주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관광을 갈 데가 없어 거길 가냐" 또는 "무서워서 거길 어떻게 가냐" 며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아마 북한이 "여행하기에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전에는 북한을 무서운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정운현
조만간 또 방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으신지요?
신은미
사실은 11월 26일 부터 12월 5일 까지 북한의 수양딸집을 방문하기 위해 북한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볼라때문에 지금 외국관광객들의 북한입국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정 원할 경우 평양도착 후 21일간 격리 수용후 감염여부를 확인하고 입국을 허락한다고 하는데 시간상 불가능 하지요. 그래서 내년 봄에나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운현
지난 10월 제20회 통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셨는데요, 감회가 어떠신지요?
신은미
정식 기자도 아니며 언론인도 아닌 제가 이 상을 받는 것이 옳은 일인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할 지언정 통일운동가는 더더욱 아닙니다. 저는 그저 북녘을 여행하며 그곳의 동포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느낀대로 남녘의 동포들에게, 통일의 염원을 담아 기행문을 통해 전했을 뿐입니다. 조국의 북녘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동안, 북한이 제가 어려서 듣고 배운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선 제가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북한동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하라는 격려로 알고 기쁘게 수상을 하였습니다.
정운현
그 외 보태고 싶은 질문이나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자유롭게 하십시오.
신은미
북한여행 중 제가 갖고 있던 관심은 ‘북한이 얼마나 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우리와 함께 한 공동체를 이루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지난 시절 경험해서 잘 알고 있듯이,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동포들이 이질감으로 인해 함께 할 수 없다면 통일은 한낱 꿈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우리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통해 이뤄진,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려서 받은 반공교육 때문에 북한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갖고 있던 저는 그런 사실을 깨닫고 한동안 당황하기까지 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생활양식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미국에 많은 한국 동포들이 살고 있습니다. 미국이야말로 우리와는 문화적 이질감이 극에 달한 나라입니다. 게다가 그 분들 중에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아무 문제없이 함께 어울려 잘 살고 있습니다.
제가 북한 기행문을 쓰다 보니 새터민들께서 연락을 해 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분들께서 북한이 받아주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질감'이 아니었습니다.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차별감'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남북한 동포들 사이에 '이질감'이라든가 또는 '동질성의 회복'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질감이 존재하지 않으니 회복할 동질성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게 북한 여행은 정말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북한 여행을 통해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민족애를 느꼈으며 통일을 염원하게 되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여행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국이 분단돼 있다는 현실에 가슴 아파해야만 했던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었습니다.
북한은 이제 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북한도 제 조국의 일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곳에 저의 수양가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통일의 염원을 가슴에 안고 계속 북한에 갈 것입니다.
정운현
아름다운 북녘의 땅을 우리도 언제가는 밟아볼 날이 오겠지요. 지금까지 신은미씨와 함께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