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9> 4월 18일자 방송에 대해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의견을 낸 바 있다.
한편 박 위원장은 지난 2012년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5.16 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하는 발언을 해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박 위원장은 “5.16은 단순한 민주주의의 역행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뒤 “장기적인 결과로 봤을 때 그런 민주주의의 보루를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며 큰 논란을 일으켰다.
더불어 그가 지난 박근혜 대선 캠프 출신인 만큼,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심의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이에 개의치 않고 그를 방심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정권이 친일파와 그 후신인 군사독재세력을 역사적으로 복권시키겠다라는 일명 역사쿠데타를 벌이고 있으며 이를 위해 언론장악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박 위원장은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성노예’로 주장하고, 안중근·유관순·김좌진 등의 독립운동가들을 비하하며, 광복절은 ‘건국절’ 등의 입장을 편 뉴라이트의 핵심 일원이기도 하다. 그가 회장으로 있던 교과서포럼은 지난 2008년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는 질타를 받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그는 2005년 한 논문을 통해 “기존의 독립운동사 연구를 '편협한 민족주의'에 입각한 것”이라고 지적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 "일본 육사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중흥시켰으면 민족주의자"라는 식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친일·독재세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민족주의 혁명가로 둔갑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만약 그의 주장이라면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려 했던 독립운동가들이나 군사독재세력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한 세력은 모두 졸지어 ‘반민족주의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박 위원장의 이러한 역사관을 통해 취임식 당시 “차라리 아베 일본 총리를 임명해라”는 질타까지 나온 만큼,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는 거수기에 불과하단 지적이 나올 정도로 더욱 심각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박효종, 5공 때 ‘허쓰리’ 허문도를 닮아가나?
전두환 정권 시절, 대통령 비서실 정무 제1비서관, 문화공보부 차관 등을 역임한 허문도 씨는, 허화평·허삼수 씨와 더불어 ‘허쓰리’라 불리며 정권의 실세 역할을 했다.
전두환 씨의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핵심인물이면서, 육사 17기 출신인 허화평·허삼수 씨가 12.12 군사반란 등에 참여해, 전 씨의 집권에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들이라면 허문도 씨는 언론 통폐합 등의 조치를 통해 언론 길들이기를 주도한 인물이다.
전두환 정권은 출범 이전, 언론반에서 ‘K공작계획’이란 것을 통해 언론인을 회유하고 언론사의 논조를 민주화 여론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언론 공작을 벌인 바 있다. 당시 보안사와 중앙정보부를 통해 파악된 언론인들의 동정, 언론사 시안 등을 토대로 언론의 공정성, 공공성을 회복한다는 구실로 언론 통폐합 사전 작업을 했다.
이에 따라 중앙지 신문이 7개에서 6개로, 지방지 신문도 14개에서 10개로 줄어들었다. 당시 삼성(중앙일보) 소유의 동양방송(TBC)이 KBS2가 되었고, 동아일보 소유였던 동아방송(DBS)가 KBS에 강제합병되며, KBS3(현 EBS)이 신설되는 등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 언론통폐합 조치는 허문도 씨가 주도적으로 입안해 당시 보안사령관 노태우 씨가 실행한 것으로 지난 88년 5공 청문회 당시에 밝혀졌다.
허 씨는 당시 증언을 통해 “5공화국을 출범시킨 체제내에서 통폐합을 최초로 발상·입안해 언론개혁의 차원에서 추진했다”면서 “국보위 문공분과위원때 2차례, 청와대 정무 1비서관때 1차례 등 모두 3차례에 언론통폐합을 전두환 씨에게 건의했으나 모두 각하됐다”고 밝힌 뒤 “그러나 언론 통폐합의 집념을 갖고 계속 체제 내 인사들을 설득했다”면서 “80년 11월 초 이광표 당시 문공부장관이 전두환 씨의 결재를 받았다”고 말했다.
88년 10월 24일 경향신문 보도 중<언론통폐합 허문도씨 발상>
당시 언론통폐합의 피해자(언론사 사장, 대표이사 등)들은 합수부 취조실 등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며 국가헌납을 강요당하고, 험악한 분위기에서 각서에 서명하는 등, 결코 자율적인 의지에서 비롯된 통폐합이 아니었음을 증언하기도 했다.
더불어 전두환 정권 때 각 언론사에 내렸던 ‘보도지침’과도 허 씨가 문공부 차관으로 재직했던 만큼 연관이 깊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보도지침’은 지난 86년 <한국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김주언 씨에 의해 관련 내용이 폭로된 바 있고, 86년 9월 <월간 말>지에 <보도지침-권력과 언론의 음모>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바 있다.
‘보도지침’이란 정권의 입맛에 맞게 철저하게 기사를 작성하고 배치하는 것으로서 ‘특정 사안에 관해서는 몇 단의 지면으로 보도하라. 어떤 사안은 보도하지 말라’는 식으로 하여금 정권이 모든 언론사의 보도를 통제하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