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첫 번째 잡혀 왔다. 싹 싹 빌며 ‘아찌.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두 번째 ‘다시는 안 그럴게요’ 세 번째 ‘해 해 몇 번 째죠’
어느 형사의 경험이다. 면역의 위력을 실감한다. 범죄는 양심을 마비시킨다. 전과의 횟수는 아무 의미도 없고 일상처럼 되어 버렸다. 문득 김한길, 주승용의 탈당이 머리에 떠올랐다. 불경한 연상인가.
정치가 제대로 된 나라에서 탈당은 바로 정치적 사형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면역의 위력이다. 낯가죽이 쇠가죽이다.
(사진출처 -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SNS)
■탈당, 기네스 북
김한길(호칭생략)이 탈당했다. 국민이 모두들 그렇게 예상했으니까 별것도 아닌데 언론이 떠들어 대는 것을 보니 아직도 약발이 남아 있는가. 비주류의 좌장이니 김한길계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거기 속해 있다는 정치인들은 얼마나 쪽이 팔릴까.
탈당이 예고된 주승용도 이제 남은 것은 ‘기네스북’에 오르는 것뿐이다. 그래도 마치 훈장이라도 탄 듯 보무도 당당하게 국회 정론관에 서서 기염을 토한다.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 현주소다. 그래도 양비론인가.
오늘은 김한길의 시간이니 그를 위해서 할애하자. 그가 어떻게 정치판에 발을 들여놨는지는 관심이 없고 많은 소설가 중의 하나인 그는 MBC의 책 소개 프로를 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책 소개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여보 나 좀 도와줘!>도 포함된다.
김한길에게 노무현은 하찮은 정치 초년병이었을 것이다. 그 프로그램 담당 작가가 전해 준 말. 딸의 친구인 작가는 내게 “아버님. 김한길 작가가 노무현 의원을 우습게 아나 봐요. ‘뭐 이딴 책을 다 소개 해’하면서 책을 툭 던지데요.” 열을 받았지만, 그냥 넘어갔다. 대단한 작가라고 자부하는 김한길에게는 우습지도 않은 책일지 몰라도 명색이 소설가라는 사람의 기본이 이 정도면 알조다. 그렇게 김한길은 방송을 타고 유명해졌다. 김한길에게 노무현은 처음부터 ‘아니’였던 모양이다.
■김한길의 정치 여행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인기가 올라가고 너 나 할 것 없이 그의 행차에는 수행하려는 정치인이 많았다. 뉴스에 얼굴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한길도 마찬가지다. 하얀 머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며칠 후 그는 수행에서 사라졌다. 이미지가 좋지 않으니 수행에서 빠져 달라고 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몰라도 김한길로서는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김한길은 머리가 아주 좋다고 한다. 특히 무엇인가 꾸미는데 특출한 재능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이 헛말이 아닌 게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대충은 짐작이 간다. 노무현이 후보 시절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에게 겪은 곤욕도 포함된다.
특히 그가 ‘열린 우리당’ 의원으로 있던 2007년 2월 6일, 김한길·이종걸·주승용·노웅래·변재일 의원 등 22명이 우르르 집단 탈당한 바 있다. 특히 이 중 김한길 의원은 탈당 직전까지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였다. 집단 탈영이다.
노무현 덕으로 민주화 이후 최초로 국회 과반 이상을 차지한 정당을 집권 후반기에 대통령 인기 하락을 핑계로 재빨리 말아먹은 순발력은 가히 천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나 못한다.
당시에 노무현이 느꼈을 상실감과 배신감을 지금 누가 느끼고 있을까. 역사는 역시 되풀이된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지만 어린애가 바지에 오줌을 싸도 바지 단추가 안 풀린다는 명분은 있어야 한다. 자기들 손으로 뽑은 당 대표를 그만두라 한다. 이유는 혁신이다.
혁신이 왜 사퇴 이유가 되는가. 혁신 속에 ‘20% 컷오프’라는 것이 있고 여기 걸리면 자동 공천탈락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자신들이 걸릴 가능성은 불문가지. 혁신을 무효화시키는 방법은 문재인의 사퇴다. 그러나 명분이 없다. 안철수도 혁신안을 내놨고 문재인은 그것을 수용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비주류들의 마지막 카드는 탈당이다.
이미 명분을 잃어버린 안철수는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마찬가지로 탈당했고 비주류의 좌장이라는 김한길도 탈당한 것이다. 여기에 단골메뉴로 끼워 넣은 것이 지역감정 조장이다. 문재인의 호남 푸대접이라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 정부 고위직에 얼마나 많은 호남인사가 있었는지 이름 쫘악 부르면 할 말 없을 것이다. 어디를 가나 불평분자는 있게 마련이고 바로 그들이 계속 부채질을 했다. 지난해 연말 광주 전남지역을 다니며 사실을 설명하니 그들도 할 말을 잃었다.
특히 호남의 제왕이라는 박지원은 당대표 경쟁에서 패배한 분풀이를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가 종편에 나가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 귀를 달고 있다는 사실에 탄식이 나온다. 박지원 역시 대법원에 저축은행 뇌물 관련 재판이 걸려있다. 당헌·당규대로라면 박지원은 자동공천 탈락이다. 독이 올라 있을 것은 이해하지만 인간에게는 짐승이 갖지 못한 소중한 것이 있지 않은가. 바로 ‘양심’이라는 것이다. 얘기가 옆길로 빠졌다. 다시 김한길에게로 돌아가자.
■분열의 주범
근육이 마비되면 통증을 못 느낀다. 인간의 정신도 그런가. 김한길의 탈당 장면을 보면서 더없이 슬픔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상식이 오물통에 처박히는 착각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미사여구를 구사해도 감동이 없으면 길거리 약장수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자신도.
‘더불어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김한길과 안철수가 공동대표인 당이었고 안철수와 김한길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탈당을 했다. 이제 이들이 두 손 마주 잡고 정당을 만들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신들이 대표일 때 당직인선에 누가 딴지를 걸었는가. 적법한 절차에 따른 김상곤 혁신안이 왜 패권주의인가. 내게 불리해도 대의와 명문과 상식이라면 수용해야 하고 이것이 민주정당이 가야 할 길이다. 김한길은 한 번이라도 수긍해 본 적이 있는가.
안철수·김한길의 탈당은 원대한 계획아래 수행되는 작전이다. 문재인이 죽지 않으면 안철수에게 기회는 없다. 모두가 수포로 돌아간다. 새누리가 집권하는 게 상수다. ‘더불어 민주당’을 파괴하고 민주화 세력을 초토화 시키면 기회가 온다는 것이 그들의 분석이다. 매일처럼 날이 밝으면 누가 탈당을 하고 동교동계가 탈당하고 호남향우회가 탈당하고, 대한민국 전체가 탈당천지가 되는 것은 잘 짜인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김한길의 작전, 그의 생각대로 되어 가는가.
과연 그런가. 그토록 국민이 우매하고 만만해 보이는가. 4·19혁명은 우매한 국민의 혁명이었는가. 5·18혁명도 어리석은 민중의 저항이었는가. 착각으로 세워진 계획은 착각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김한길만 모르고 있다. 아니 알고 있되 마지막 몸부림이다.
김한길을 비롯한 추종세력이 우르르 집단탈당을 했을 때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과 함께 있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으로 살아남겠다는 이유만으로 탈당하는 ‘짜고 치는 탈당’ ‘기획탈당’”이라고 했다. 지금 그 말을 그대로 들려주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정치인생 마지막 길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한길 등에 업혀 방향도 모르고 헤매는 안철수는 또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일방적으로 매도한다고 하지 마라. 가슴 한구석에서 눈물 흘리는 양심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집단폭행을 당해도 양심은 죽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변해야 합니다.
안에서 싸우다 기운을 다 소진해버리는 그런 정치 말고,
오만과 독선과 증오와 기교로 버티는 그런 정치 말고,
아무리 못해도 제1야당이라며 기득권에 안주하는 그런 정치 말고,
패권에 굴종하지 않으면 척결대상으로 찍히는 그런 정치 말고,
계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런 정치 말고,
비리와 갑질과 막말로 얼룩진 그런 정치 말고,
그래서 국민에게 손가락질당하는 그런 정치 말고,
이제는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정치로 변해야 합니다.
김한길이 국민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을 김한길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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