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이기명칼럼】‘개판’ 재미 있으셨나요.
드라마는 반드시 재미가 있어서만 보는 것은 아니다. 형편없는 드라마라를 보는 경우가 있다. 막장 드라마가 바로 그렇다. 국민들은 7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가슴을 쳤다. 왜 가슴을 쳤는지 잠깐 현장 중계를 보자. 이 기막힌 막장 드라마의 제목은 ‘개판’이라고 붙이면 될 것이다.
김태호 : 오늘이 김태호가 유승민 대표에게 드리는 마지막 고언이 되기를 바란다
원유철 : 유승민 대표 보고 그만두라고 계속 얘기하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한다
원유철 : 당을 위해 무슨 도움이 되고 유승민 대표의 결정에 무슨 도움이 되나
김태호 : (발끈하며) 한 말씀 더 드리겠다
김무성 : 그만해
김태호 : (발언 취지가) 잘못 전달되면 안 된다
김무성 : (고성)회의 끝내겠다. 회의 끝내
김태호 : 대표님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김무성 : 맘대로 해 (호통친 후 퇴장한다)
이인제 : 김 최고 고정해
김태호 : 대표가 이렇게 할 수 있나. 사퇴할 이유를 모른다고 하니까 얘기하는 거 아닌가? (강력 반발)
김학용 대표비서실장 : 애새끼들도 아니고 그만해라
이인제 : (김태호 붙들고 만류한다)
김태호 : 사퇴할 이유가 왜 없어. 무슨 이런 회의가 있어
김학용 : 김태호 X새끼
김태호 : (책상 치면서 계속 흥분한다)
이 정도에서 줄이자. 출연진이 얼마나 화려한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당대표, 원내대표를 비롯해 최고위원들이 모두 출연했다. 그러나 김태호의 18번을 빌리자면 새누리당 최고회의는 이날 ‘개죽음’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시청한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저것이 집권당 최고위원들의 모습이라는데 기가 막혔을 것이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당 원내대표 간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과연 이 나라의 정치 현주소가 어디며 어디로 굴러가고 있는지 어지러울 것이다. 저들이 과연 나라를 생각하고 있는가. 자신들을 선출해 준 국민들을 어느 만큼이나 생각하고 있는지, 국민들은 지금 자기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딱지 붙은 인간
인간에게는 붙어 다니는 ‘딱지’라는 것이 있다. 평판이라고 해도 좋고 점수라고 해도 좋다. 대통령이 앉아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데 수석과 장관들이 수첩 펴들고 쭉 앉아 있다. 국민들은 속으로 나름의 점수를 매긴다. 대통령 몇 점. 총리 몇 점. 비서실장 몇 점. 시시한 장관들은 축에도 들지 못한다. 요즘 국민이 매긴 딱지에는 몇 점이라고 적혀 있을까.
대통령이 12분 동안 말씀을 하시면서 레이저를 쏘실 때 국민들은 몇 점이나 줬을까. 듣고 있는 장관들에게는 어떤 딱지를 부쳤을까. 지금 평가하기가 어려우면 역사에게 맡겨두자. 그럼 지난 2일 날 있었던 새누리당 최고회의의 점수는 얼마나 될까? 칼럼 제목에 ‘개판’이라고 했으니 아예 점수가 없을지 모르지만 ‘개판’을 ‘개그 판타지’로 하면 점수를 좀 줄 수 있을까.
사실 국민의 눈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국민이 매기는 점수가 참 야속하다.
이번 성완종 자살사건으로 빚어진 검찰수사 결과가 발표됐을 때 국민들은 저마다 자신이 용한 점쟁이라고 무릎을 쳤을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 모두들 그렇게 결과가 나올 줄 알았다는 얘기다. 점쟁이들 다 굶어 죽게 생겼다. 전·현직 비서실장인 김기춘·이병기는 서류심사 아니 서면조사 하고 노무현 대통령 형인 노건평은 공소시효가 지났는데도 정중하게(?) 모셨다. 여기서 그 얘기 더 하다가는 칼럼 점수가 빵점이 될 것이다. 다만 문무일 검사가 수사 총책임자가 될 때 정성껏 기대에 찬 칼럼을 쓴 것이 후회될 뿐이다.
■국민의 점수는 역사의 점수
YTN의 노종면 기자는 목이 잘렸지만, 그가 만든 ‘돌발영상’은 지금도 유명하다. 김무성의 ‘노무현 대통령 불인정’ 발언도 2003년 9월 3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총회장에서 김 의원의 발언을 기록한 것이다. 아마 돌발영상이 지금도 있었다면 지난 7월 2일 있었던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는 ‘돌발영상’으로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국민이 매기는 점수다.
요즘 한국 정치의 모습은 국민을 아프게 한다. 국정을 책임져야 할 새누리당은 ‘친박vs비박’의 처절한 싸움으로 피투성이다. 현직 대통령은 불통으로 체통이 말이 아니다. 이제는 야인이 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어른스럽게 조용히 불러서 조근조근 얘기하면 간단히 풀리리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충성스러운 비서실장 아니었던가. 한참 성장하는 새로운 정치지도자가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 말 몇 마디 했다고 죽을죄로 치부해서야 국민이 옹졸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친박은 유승민 대표의 명예퇴진 운운 하는데 퇴진이면 불명예지 명예퇴진이 어디 있는가. 유승민의 경우 대통령을 시켜 준다고 해도 그만두면 불명예 퇴진이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유명해지는데 왜 자진사퇴를 한단 말이냐.
지금 나라 꼴이 어느 지경인가. 빚은 태산 같아 무려 579조 5천억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136조가 늘었다. 추경을 위해 국채 9조 6천억을 발행해야 하고 올해 재정수지 적자는 46조 8천억으로 금융, 외환위기 때 빼고는 최악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나라 곳간이 비고 거덜 났다는 말이다. 이런 판국에 대통령이 집권당 원내대표와 틀어져 국정이 온통 뒤죽박죽되었으니 죄 없는 백성이 무슨 죄란 말인가. 유승민 하나 내 치는 것이 국민의 삶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거리에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삼권이 독립된 나라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여당 대표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축출하는 것을 어느 누가 민주주의라고 할 것인가. 작금의 한국 정치를 보며 몸서리쳐지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가는 길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수시로 하는 여론조사가 있다. 언론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콘크리트’라고 한다. 언론이 그렇게 이름 붙여주고 그것을 믿고 기고만장하는지 몰라도 착각도 이 정도면 병이다. 이제 콘크리트도 금이 가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박근혜정권과 새누리당을 지지하려고 해도 자존심이 상해서 못 하겠다는 친구들이 늘어난다. 정치를 못 해도 이렇게 못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은 소통불통으로 사면이 차단되어 있으니 자신이 정치를 잘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번 최고회의 난장 ‘개판’을 본 국민들은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고 한다. 진중권 교수가 한 말이 명언이다.
“유승민 쫓아내도 못 쫓아내도 정권은 내리막길로”
진중권 교수뿐이 아니라 국민들도 같은 생각이니 기막힌 일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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