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의 재판 당시 일본인 변호사들이 안중근 의사에 대해 징역 3년형이 적당하다고 변론했던 사실이 105년만에 확인됐다.
14일 <뉴시스>에 따르면, 일본 파송 선교사였던 존 하이드 디포레스트가 1911년 뉴욕의 '디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에 기고한 '1910년의 일본(The Japan of 1910)'이라는 제목의 글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
이 글에 따르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혐의로 기소된 안 의사에 대해 당시 일제는 러시아인과 영국인등의 무료 변호 자원을 막았으며 심지어 일본인 관선 변호사 미즈노 기타로(水野吉太郞)와 가마타 세이지(鎌田政治)의 변호조차 허가하지 않으려 했으나, 이들 변호사는 일제의 '짜맞추기 법정'에 동원됐음에도 여러 판례를 들어 극형보다 징역 3년이 적당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애니메이션(사진출처-MBC 뉴스영상 캡쳐)
두 일본인 변호사는 재판부에 "안중근을 극형에 처하는 것은 오늘날 법의 목적인 형평성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일본)를 방문한 러시아 황태자를 살해하려한 자(쓰다 산조)도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고 (1904년 미국에서) 스티븐스(조선이 일본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받고 있다고 주장함)를 죽인 암살자(장인환 의사)도 단지 25년형이 구형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황태자 암살 시도 사건은 1891년 일본을 방문한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를 일본인 경호원 쓰다 산조가 공격한 사건이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러시아의 귀빈을 공격한 사건이었기에 일본의 입장은 매우 난처했고 이 사건으로 일본 왕은 러시아에 거듭 사과를 전했다. 하지만 피의자 쓰다 신조는 사형 대신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두 변호사는 안 의사가 극형이 처해지면 오히려 영웅화 된다는 주장도 펼쳤다. 변호사들은 "안중근에게 3년형을 선고하면 세계가 그를 작게 평가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영국 지배하의 싱가포르에서 발행된 아시아 최대의 영자신문 '더 스트레이트 타임스'는 이토 저격 두 달 후인 1909년 12월21일 보도에서 "일본 당국은 재판내용이 널리 퍼지면 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과정에서 저격자의 방어논리나 영웅적인 언급이 또다른 저격을 촉발하도록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스트레이트 타임스는 "저격자에게 사형이 언도될 것인지는 아주 회의적이다(too doubtful)"라고 안 의사에 대해 과도한 선고가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변론에도 불구하고 1910년 2월 14일 안 의사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안중근 의사는 "당당히 죽음을 택하라"는 모친의 말에 따라 항소도 포기하고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의 저술에 집중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을 선고 받은 지 약 한 달여 뒤인 같은 해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세계 언론의 관심은 계속됐다. 안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지 1주일이 지난 2월 21일 스트레이트 타임스는 저격 당시를 촬영한 동영상의 존재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3월 26일 전격 집행된 안 의사에 대한 형집행은 바로 당일 대양주 언론들도 속보로 전하기도 했다. 당시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발행된 '디 애드버타이저'는 "일본정치인 이토백작을 저격한 한국인이 어제 뤼순형무소에서 처형됐다. 저격자는 반일주의로 유명한 평양내 한인조직의 '도구'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안 의사의 의거 뒷이야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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