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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기업화, 인문학과의 통폐합
[팩트9뉴스] 기획취재-대학의 기업화, 인문학과의 통폐합
등록날짜 [ 2015년01월30일 10시29분 ]
팩트TV



 
【팩트TV-팩트9뉴스】기획취재-대학의 기업화, 인문학과의 통폐합
 
 
진행 : 정운현 보도국장 겸 앵커
 
 
정운현
인문계 졸업생의 90%가 논다는 뜻의 ‘인구론’이란 우스개를 아시는지요? 기업경영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외치던 기업들이 정작 인문계 대학생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취업시장의 논리에 따라 대학이 기업화 되면서 취업률이 낮은 인문계 학과들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 시대에 인문학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을까요? 대학이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인문학을 외면하고 있으나 대학 밖은 사정이 딴판입니다. 도처의 인문학 강의마다 수강생이 넘쳐나고 서점에는 인문학 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학 밖은 가희 ‘인문학 열풍’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대학에서 학문은 사라지고 취업만 남은 셈입니다. 오늘 기획취재에서는 대학의 기업화와 그로인한 인문계 학과 통폐합 문제를 짚어볼까 합니다. 양 기자, 어서 오세요.   
요즘 청년층 취업난이 심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인문계가 더 어려운 걸로 아는데요, 인문계 출신 학생들의 취업률은 어떻습니까? 
 
양아라
한국교육개발원의 2014년 취업통계연보를 보면, 인문계열 취업률은 45.9%로 공학계열 66.9%, 자연계열 55.6%, 의약계열 72.8%보다 매우 낮았습니다. 
 
정운현
인문계는 취업률이 낮다보니 취업을 위해 실용적인 학문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현실적인 생각도 듭니다만.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초학문인 인문학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분명 적지 않습니다. 창조적 CEO로 불려온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애플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물론 그가 공대 출신이긴 하지만 그가 만든 제품의 바탕에는 인문학이 깔려있었습니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오면서 인문학을 접목하게 되는데요, 다름 아닌 바로 ‘콘텐츠’입니다. 콘텐츠는 이른바 ‘문사철’, 즉 문학 역사 철학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정운현
최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학과를 줄이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얘긴가요? 
 
양아라
예, 최근 황 장관은 2015년도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사회적 수요와 대학이 양산하는 졸업생이 양적, 질적으로 매치가 되지 않는데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황 장관은 작년에 사범대에서 2만3000명이 졸업시켰는데 실제 교사로 임용된  숫자는 4600명이라며 지금처럼 모든 대학이 인문대학을 운영한다면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정운현
교육부가 내년부터 2018년까지 ‘대학 특성화사업’과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에 대해 기존 지원 규모의 3배 이상을 지원할 계획이라는 데 구체적으로 뭔 얘긴가요?
 
양아라
교육부는 지난해 ‘대학특성화 사업’으로 107개교에 2577억원이 지원했으며,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산업’은 86개교에 2435억원을 지원했습니다. 내년부터는 권역별로 1~2개 대학이 지정돼 대학별로 100~200억원씩 지원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3년간 모두 7500억원이 지원될 예정입니다. 교육부는 ‘산업수요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을 추가로 내년 예산에 반영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운현 
정부의 대학구조 개혁안은 사실상 인문계 비인기학과 통폐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양아라
아닙니다. 재학생뿐만 아니라 입시를 앞두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우려 됩니다. 정원조정은 2016년부터 할 예정인데요, 각 대학은 1년 10개월 전에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발표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원 조정 결과에 따라 전공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정운현
인문계 학과 통폐합으로 인해 해당학과 교수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겠군요.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과 취업률을 반영한 학과 평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요.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시죠. 

▶ VCR.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정운현
그런데 인문계열 학과 통폐합 문제는 과거에도 있지 않았습니까?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교육부는 2011년부터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과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을 선정해 왔는데요, 평가지표에 취업률을 포함시켜서 예전부터 대학들이 취업에 불리한 인문학과 통폐합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해부터는 인문계열에는 취업률을 평가지표로 반영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정운현 
대학 구조조정은 10년이 넘었는데요. 인문계 학과의 위기는 여전해 보입니다.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지방대학은 이미 도미노식으로 학과 통폐합을 추진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한남대, 목원대, 배재대, 대전대, 청주대 등은 이미 대학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정운현   
중앙대학교의 인문계 학과 통폐합 문제를 두고 논란이 됐었는데요, 이유가 뭔가요?  
 
양아라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직후부터 인문학과 통폐합 바람이 불기 시작해 대학가에서 큰 논란이 됐었습니다. 2010년 18개 단과대학 77개 학과가 10개 단과대학 46개 학과로 통폐합되면서 입학 정원을 크게 줄였다. 주로 취업률이 저조한 인문-예체능 계열이 대상이었습니다. 2010년에는 비교민속학과·아동복지학과·가족복지학과·청소년학과 등 비인기 학과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운현
그런데 중앙대의 경우 인문학과 통폐합 문제가 여전한데요, 다른 문제라도 있나요?  
 
양아라
지난해 중앙대는 수도권대학 특성화 사업에 선정돼 앞으로 2년간 185명의 입학정원을 감축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앙대는 인문, 예체능계열 학부의 정원을 줄이고 공학계열 정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구조개편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중앙대가 ‘인문계 학과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입니다.       
 
정운현
학문의 자유가 살아 있어야 대학에 결국 자본과 시장의 논리가 자리 잡은 셈인데요, 대학 측은 어떤 입장입니까?   
 
양아라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이 작년에 조선일보에 ‘인문학이 바로서야 대학이 산다’는 제목의 칼럼은 실은 적이 있습니다. 박 이사장은 이 칼럼에서 “인문계 학생 52%가 전과를 원했다”며 “학생들이 대학진학에 있어 경쟁이 심한 경영-경제계열, 공학계열 보다 인문학을 택한 결과”라고 인문계 학과 축소가 합당하다고 강변했습니다. 
 
양아라
중앙대의 학과 통폐합에 반대한 학생들은 기업식 구조조정과 다름없는 대학의 구조조정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학생들은 대학측이 학생들과 대화도 없이 일방적인 통폐합 통보로 학내 민주주의를 파괴시켰으며, 인문학을 보조학문으로 전략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정운현 
‘위기가 곧 기회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인문학에도 기회는 찾아올까요?   
 
양아라
대학에서 인문학과 통폐합 바람이 불자 학생들은 이에 반발하면서도 대안 찾기에 나섰습니다. 학생들은 시민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인문학을 배우기 위해 인문학 학교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 밖은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데요, ‘자유인문캠프’ 책임자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시죠. 

▶ VCR. 자유인문캠프 책임자 인터뷰
 
정운현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면서 학령인구도 자연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생 없는 대학이란 존재할 수 없는데요, 대학으로서도 어쩔 수 없이 구조개혁을 해야겠군요?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산업수요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대학의 재구조화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정원조정이 아닌 교육과정과 대학 체제로의 전환이나 지역과 산업현장에서 친화적인 교육과정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대학구조를 개혁하면서도 인문학을 사회와 친밀하게 접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정운현
인문학과의 위기가 인문학의 위기를 불러 올 것으로 보는 견해는 좀 성급하지 않나요?  
 
양아라 
그렇습니다. 대학의 기업화는 장기적으로 본다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학이 학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취업 결과만을 생산할 경우 ‘침묵의 공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이 자본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학문의 공동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회를 비판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시대의 나침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운현
프랑스는 대입시험에서 유일하게 ‘철학’ 시험을 보는 나라인데 정답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락되는가?’와 같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외워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문학에 대한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교육복지와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한 프랑스의 경우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환경 때문에 실패를 경험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은 인문학과를 꺼리면서도 취업을 위해 인문학적 스펙을 쌓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학평가 시스템을 바꾸거나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교육당국이 재정을 지원하는 식의 일회성 처방으로는 대학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인문학의 터전인 대학에서 학문과 사회를 연결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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