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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와 브란트, ‘같고도 다른’ 무릎 꿇음
[정운현 칼럼] 아베, 홀로코스트 헌화. 쌩뚱맞다!
등록날짜 [ 2015년01월22일 20시15분 ]
정운현 보도국장
 
【팩트TV-정운현 칼럼】참으로 낯설고도 황당한 장면 하나가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무릎을 꿇고 헌화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헌화 장소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2차대전 유대인 대학살) 추모관. 아베 총리는 지난 19일 오전 부인과 함께 이곳 어린이 희생자 추모관에 들러 희생자들에게 추모의 꽃을 바쳤다. 헌화를 마친 아베 총리는 추모관 방명록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을 맞아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이 절대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썼다. 아베 총리의 헌화 자체를 뭐라 할 건 없다. 
 
최근 아베 총리는 중동지역을 돌며 ‘평화 전도사’를 자처했다. 17일 이집트에서는 “중동 평화를 위해 IS(이슬람국가)와 싸우는 국가들에 2억 달러의 비군사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세계평화에 공헌하겠다”는 아베의 행보를 두고 세계의 시선은 그리 곱지 만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랄 수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사죄나 배상은 하지 않은 채 일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유대인 희생자들을 찾아 ‘정치 쇼’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누군가는 아베의 이번 홀로코스트 추모관 참배를 두고 “오른쪽 다리가 가려운데 왼쪽 다리를 긁어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가 무릎을 꿇은 채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헌화하는 모습. 뒤에 선 여성은 부인 아키에 여사


실지로 아베는 한일, 한중간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합당한 해결책을 내놓기는커녕 기존의 ‘무라야마 선언’이나 ‘고노 담화’조차 깔아뭉갤 태세다. 아베는 전후 70주년을 맞아 담화를 발표할 예정인데 과거사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대폭 수정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총선에서 대승한 아베는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는데 이에 힘입어 우경화를 가속화 할 전망이다. 우선 군대 보유와 전쟁금지를 명문화한 ‘평화헌법’ 개정과 함께 해외파병 등 군사대국화 움직임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베의 이번 추모관 참배는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자신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베 총리의 홀로코스트 추모관 헌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은 ‘무릎 꿇음’에 주목한 것 같다. 국가 최고지도자들이 해외 순방 시 방문국의 국립묘지 같은 곳을 방문해 헌화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대개는 서서 헌화한 후 잠시 묵념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날 아베는 추모관에 헌화하면서 무릎을 꿇었다. (사실 무릎을 꿇은 것인지 아니면 구부린 것인지는 명확치 않은 점도 있다.) 아베 나름으로는 각별한 의미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들과 일본과는 별다른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아베는 왜 굳이 무릎을 꿇었을까, 또 그 진정성은 어느 정도일까? 
 
1970년 12월 7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는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은 이날 폴란드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폴란드를 방문했다. 그는 2차 대전 후 최초로 폴란드를 방문한 독일의 현직 수상이었다. 브란트는 폴란드 내 유대인 학살의 상징적인 장소인 ‘게토 기념비’ 앞에 섰다. ‘게토’란 중세 이후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집단거주지역을 말한다. 1942년 나치는 이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죽음의 캠프’로 불린 테블린카로 이동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바르샤바 출신 유대인 30만 명이 죽었다. 
 
사람들은 브란트 수상이 의례적인 연설이나 추도사 몇 마디를 할 걸로 예상했다. 그런데 잠시 뒤 그런 예상은 무참히 깨졌다. 기념비 앞에 잠시 서 있던 브란트 수상은 비에 젖은 기념비 앞 콘크리트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 자신은 물론 주변의 그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무릎을 꿇은 채 브란트 수상은 눈을 감고서 두 손을 모았다. 그제야 주변 사람들은 그가 독일국민들을 대표하여 이곳에서 희생된 영령들에게 참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소식은 전 세계에 타전됐고, 세계는 그의 진정한 참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브란트 수상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길을 나설 때 진심을 전달할 수 있을 무언가는 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일의 숨길 수 없는 악행의 역사를 증언하는 장소에서 나치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영령들을 대하는 순간 저는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 기념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는 빌리 브란트 독일 수상
 
브란트 수상이 당시의 ‘무릎 꿇음’에 대해 “사람이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다”고 표현한 걸로 봐 즉흥적이었던 것 같다. 브란트 수상의 이날 ‘사건’을 두고 한 언론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썼다. 또 다른 한 언론은 “나치와 싸웠던 빌리 브란트 총리는 그 곳에서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총리는 실제 무릎을 꿇어야 함에도 용기가 없어 꿇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무릎을 꿇었다”고 극찬했다. 브란트 수상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그의 진심어린 ‘무릎 꿇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바르샤바에는 브란트 총리의 ‘무릎 꿇음’을 기리는 기념물이 있다. 침략국 독일의 수상인 그가 피해자인 폴란드인들에게 ‘기념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아베 총리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의 무릎 꿇음은 브란트의 게토 기념비 앞에서의 무릎 꿇음과 비견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무릎 꿇음은 같은 것일지는 몰라도 장소와 진정성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브란트의 경우 피해 당사자에게 직접 사죄한 반면 아베의 경우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추모’를 한 셈이니 말이다. 일본사람들은 자신들이 여러 차례 사과를 하고도 욕을 얻어먹는다며 불만이다.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곳에서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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