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팩트9뉴스】기획취재-용산참사 6주년, ‘아직도’ 여기 사람이 있다!
진행 : 정운현 보도국장 겸 앵커
정운현
6년 전 오늘은 ‘용산 참사’가 발생한 날입니다. 2009년 1월 20일 아침,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경찰특공대가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습니다. 이 참사로 철거민 등 8명이 구속됐는데 지난 11일 마지막 수감자가 만기 출소했습니다. 재개발과 국가폭력 앞에 철거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고, 그 날 이후 일상이 깨어진 철거민들에게 ‘용산의 악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기획취재에서는 어느 덧 6년 세월이 흐른 용산 참사에 대해서 짚어볼까 합니다. 이 시간은 김현정 기자와 함께 합니다. 김 기자, 어서 오세요. 용산 참사 6주년을 맞아 오늘 오전 희생자들의 묘소가 있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추모제가 열렸다면서요?
김현정
네. 그렇습니다. 고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 씨 등 용산 참사 희생자 5명이 안장된 마석 모란공원에서는 유가족을 비롯한 각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해 6주기 추모제를 지냈습니다. 이 자리에는 지난 11일 출소한 용산참사 마지막 수감자였던 남경남 전 전국철거민연합 의장도 함께 했습니다.
정운현
예. 지금 나오는 화면이 오늘 추모제 현장이군요?
김현정
네. 또 용산참사 6주기 추모위원회는 지난 13일부터 6주년 추모주간으로 선포하고 오는 28일까지 추모 전시회와 토론회를 비롯해 20일에는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추모미사를 끝으로 추모행사를 마무리 할 예정입니다.
정운현
어느새 참사 발생 6년이 지나면서 이를 잊은 국민들도 많을 텐데요, 용산참사 일지를 잠깐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김현정
네. 2007년 5월 용산참사가 발생한 남일당 건물이 위치한 용산 제4구역이 도시환경 정비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사업시행 인가가 났습니다. 5만 3066제곱미터에 지상 5층에서 40층짜리 건물 7개동이 건설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주변에서 자영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상인들은 재개발조합 측에서 턱 없이 부족한 주거 이전비를 제시하면서 갈등을 시작됐습니다. 급기야 철거민들은 ‘최소한의 보상대책 없는 철거에 반대한다’며 2009년 1월 19일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이 농성에 들어간 지 만 하루 만에 서울경찰청에서 3개 중대 300여명을 투입해 강경진압을 폈습니다. 이 와중에 화재가 발생해 대형 참사로 이어졌는데요, 농성주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해 10월 이충연 전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등 농성자 6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돼 징역 5년~6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사망자 5인에 대한 장례도 정부당국과 합의가 되지 않아 1년 가까이 끌어온 끝에 2010년 1월에야 장례를 치렀습니다.
정운현
네.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1년 만에 장례를 치르면서 조합 측과 합의한 내용이 뭐였죠?
김현정
철거민들은 삶의 터전을 내주는 대신 생계대책으로 공사기간 동안 노동자들이 이용할 식당 이른바 ‘함바집’ 운영권을 받기로 하고 용산을 떠났습니다.
정운현
그렇죠. 그런데 그 공사가 중단이 됐죠?
김현정
맞습니다. 2011년 9월에 사고가 발생한 용산 4구역의 재개발 시공사들은 조합측과 추가 분담금 문제가 불거져 계약해지를 했고요, 2013년 5월에는 사업시행 변경 인가가 났지만 지난해 6월 시공사들이 공사불가 선언을 하면서 현재 사고가 났던 남일당 건물이 헐린 주변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정운현
공사가 진행이 안되자 철거민들이 운영키로 한 ‘함바집’도 날라 간 셈인데요, 이들은 현재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나요?
김현정
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용산에서 쫓겨난 23명의 용산 철거민 중 10명은 작은 공장에서 단순노동을 하거나 계약직 판매원, 경비원. 식당 종업원, 또는 배달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개가 용산에서 시계방이나 식당, 당구장, 중국집, 피시방 등 자영업을 하던 분들이었습니다. 6명은 업종을 변경해 새로 가계를 열었지만 이전 수입의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7명은 아예 직장조차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정운현
그렇군요. 안타까운 일이네요. 이러니까 재개발이 이뤄지면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 자체가 흔들리니까 생계대책 요구가 절박해질 수밖에 없겠군요?참, 유가족 가운데 몇 분이 또 천막농성에 들어갔다구요?
김현정
네, 그렇습니다. 지석준 씨와 유영숙 씨인데요. 이들은 지난 18일부터 서울 중구 순화동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지석준 씨는 용산참사 당시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다리를 크게 다쳐 현재는 목발 없이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고요, 유영숙 씨는 용산참사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고 윤용헌 씨가 바로 유영숙씨의 부군입니다.
정운현
용산참사로 남편을 잃거나 장애를 입은 분이 이 추운 겨울날 천막농성을 시작한 이유는 뭔가요?
김현정
네, 이들은 서울 중구 순화동의 재개발 구역에서 식당을 운영해오다 지난 2007년에 철거됐습니다. 당시 제대로 된 보상과 대책 없이 이뤄지는 재개발로 이들은 지난 8년 동안 생존권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지난봄부터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재개발 공사가 재개되자 이들은 급기야 천막농성을 시작으로 투쟁을 재개한 것입니다. 이밖에 현재 철거가 진행 중인 동작구 상도4동, 부산 북구 만덕 5지구 등에서도 철거에 맞서 주민들의 농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순화동에서 천막농성 사흘째를 맞고 있는 지석준 씨를 저희 취재진이 만나봤습니다.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 VCR. 천막농성 지석준 씨 인터뷰 영상
정운현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6년이 지났는데도 지석준 씨가 또 다시 저런 극한투쟁에 나선 것은 당국이나 국회의 후속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은 탓 아닌가요?
김현정
네. 그렇습니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재개발 시 철거민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대책이 이뤄지지 않은 것과 용역깡패 등을 동원한 폭력 진압 때문입니다. 당시 이런 문제점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국회 차원에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과 ‘강제퇴거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했으나 여태 감감무소식입니다. 2009년 정동영 전 의원이 ‘강제퇴거금지법’을 발의했지만 회기만료로 폐기됐고요, 19대 국회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청래 의원이 좀 더 안전장치를 둔 ‘강제퇴거금지법’을 발의했지만 지금까지 소관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에서 논의도 한 번 안 된 채 잠자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법안을 발의한 정청래 의원의 의견을 들어보았습니다. 함께 보시죠.
▶ VCR. 정청래 의원 인터뷰
정운현
네. 잘 들었습니다. 그럼 철거민들의 현실적인 생계 문제가 달린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어떻게 돼 가고 있나요?
김현정
네, 상가 임차인의 권리금을 법으로 보호한다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이 역시 아직 논의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재개발·재건축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정운현
그렇군요. 국내의 경우 재개발이 되면 대개 ‘가진 자’들이 개발이익을 챙기곤 했는데요, 외국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참고할만한 좋은 재개발 정책을 펴는 나라는 없나요?
김현정
미국을 한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미국의 경우 도시마다 독립기관인 재개발청이 있어서 재개발 사업을 감시, 감독합니다. 재개발 사업의 미래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비용과 편익을 면밀히 분석하고 또 철거민 보호를 위한 별도의 안전장치를 만듭니다. 개발 경험이 없는 주민 재개발조합이 시공사의 요구에 따라 건설계획을 수시로 바꾸는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크게 다릅니다. 당국이 나서서 주민편의와 수식성 문제를 관리감독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런 점들을 우리 당국이 참고한다면 재개발 정책 수립에 큰 도움이 될 걸로 생각됩니다.
정운현
우리 당국이 참고했으면 좋겠군요. 용산참사 희생자 가족들과 철거민들에 대한 보상은 어느 정도 이뤄졌나요? 한동안 언론에서는 보상이 이뤄질 만큼 이뤄졌다는 보도도 나오던데요.
김현정
이충연 씨는 참사 당일 부친과 함께 남일당 망루 위에서 투쟁을 하다 변을 당해 부친을 잃고 자신은 부상당한 몸으로 4년의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이 씨는 용산 숙대입구역 6번 출구 근처에 남일당 건물에서 운영했던 호프집 ‘레아’를 다시 열었는데요, 이 씨를 만나서 보상 문제, 현재의 생활 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함께 보시죠.
▶ VCR. 이충연, 정영신씨 인터뷰
정운현
네. 잘 봤습니다. 컴컴한 새벽, 철거민들이 살려고 올라갔던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아비귀환을 방불케 했던 6년 전 오늘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철거민들은 점차 불길이 커진 가운데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한 채 옥상 밖으로 손을 내밀며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던 그 목소리도 아직 귓전에 생생합니다. 어느 덧 잊혀진 그 날의 기억. 확실한 재발 방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개발지상주의에 국가폭력마저 묵인된다면 제2, 제3의 용산참사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기 용산참사 현장에 ‘아직도’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준비한 기획취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김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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