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이 내용은 가상 상황을 전제로 엮은 허구입니다. 그제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은 이래저래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질문 하나를 못한, 기자혼이 빠진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들은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기는커녕 오히려 짜증만 가중시켰습니다.
이에 가상 상황을 통해 ‘국민기자’가 청와대 기자회견장에서 대통령을 향해 송곳 질문을 던져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일거에 날려버리는 통쾌한 상상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살이에 찌들고 그래서 힘 빠진 국민 여러분께 작은 즐거움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은 그런 취지로 쓴 것임을 밝혀둡니다...
- 필자 주
1.
오전 9시 정각, 청와대 기자회견장을 들어서면서 김 차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년가도 한 두 번 볼까 말까 한 청와대 수석들이 여럿이 나와서 기자들을 맞고 있었다. 입구에 서 있던 K수석도 아는 체를 하며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세종일보 김 차장이시죠?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아, 예...!”
중동일보 정치부 박 차장은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제 새벽 2시까지 같이 술을 마셨는데도 쌩쌩해보였다.
“잘 들어갔어?”
“예, 김 선배는요?”
“응...”
선 자리에서 기자회견장을 한 바퀴 휘익 들러본 후 김 차장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정치부 카톡방에 부장이 보낸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김 차장, 오늘 잘 해야 돼? 전국 생중계야. 회장님도 아마 보실 거야. 알았지?”
‘잘 하긴 뭘 잘해!’
꼭 이럴 때만 생색내려는 정치부장이 싫었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렸다.
‘어제 술이 너무 과했나?’
출입기자단 간사를 맡고 있는 동일통신 유 차장이 어디서 ‘쩐’이 생겼는지 3차까지 술을 샀다. 북창동 3차는 술값이 수월찮게 많이 나왔을 것 같았다. 오늘 질문하기로 돼 있는 기자들 절반에다 홍보수석실 비서관도 둘이나 참석했으니 근 열 명이나 됐다.
변기에 앉았으나 막상 나오는 건 없었다. 아침에 마누라가 죽을 끓여줬으니 그게 바로 나올 리도 없고.
변기에 앉은 채로 오른 쪽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정치부 카톡방 밑에 아들 정민이가 보낸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아빠, 친구들이 그러는데 기자들을 ‘기래기’라고 부른대. 그거 조은 말 아니지? 울아빠는 나뿐 사람 아니지? 아빠 사랑해 안뇽~~”
술이 확 깨는 듯 했다.
어제 출입기자들 술자리 모임에서도 나왔던 얘기였다.
도발자는 10년차 광장일보 성 기자였다.
“선배, 내일 기자회견 때 좀 제대로 합시다. 기레기 소리 쪽팔리지도 않아요?”
김 차장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맞은 편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던 출입기자단 간사 유 차장이 대신 나섰다.
“야, 내일 잔칫날 무슨 사고 칠 일 있냐?”
“그게 왜 사곱니까? 유 선배는 그게 사고라고 생각해요?
성 기자가 열을 올리며 대들고 나섰다.
유 차장 옆에 앉았던 제일방송 이 차장이 거들고 나섰다.
“야, 그게 그런다고 고쳐지냐? 그리고 그 소리 너만 듣냐?”
“기레기 소리 듣기 싫으면 세월호 얘기도 물어봐야할 것 아닙니까?”
“세월호 뭐 더 물어볼 건데?”
“질문꺼리가 어디 한둘입니까?”
“그러지 말고 궁금한 걸 콕 찍어서 말해봐!”
“박근혜 7시간 행적요!”
“난 그런 거 별로 안 궁금해!”
“아니, 선배는 기자로서 어찌 그런 얘기를 하십니까?”
“그건 관점의 차이야!”
간사 유 차장이 두 사람의 대화를 막고 마섰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그만합시다!”
성 기자는 담뱃불을 붙여 휑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순간 정적이 감돌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유 차장이 일어나서 술잔을 돌리면서 분위기는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2.
오전 10시 정각,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섰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
사회자가 “다들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말이 떨어지자 김 차장도 자리에 앉았다.
이어 곧바로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시작됐다.
대통령의 모두발언이 중반에 다다를 쯤부터 김 차장은 자장가로 들리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졸음이 쏟아지고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7, 8명의 질문이 끝날 부터는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앉은 문화경제신문 정 기자의 질문 차례가 됐다.
정 기자가 일어서자 대통령 얼굴이 가려졌다.
김 차장은 그 몇 십초 동안 잠시 눈을 붙였다.
상체만 세우고 있을 뿐, 거의 비몽사몽간이었다.
이를 알아 챈 옆에 앉은 광화신문 최 차장이 툭! 쳤다.
그리고는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차장! 다음다음이야!”
“으, 으응...”
“다음다음 차례라고!”
겨우 정신이 좀 들었으나 여전히 졸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김 차장은 열두 번째 질문자였다.
질문 내용은 박근혜 정부의 인사정책과 탕평인사를 건의하는 내용이었다.
어제 출입기자 모임에서 합의한 내용이었다.
간사 말로는 사전에 질문 요지를 홍보수석실에 건넨다고 했다.
12호 활자로 프린터 한 질문지는 김 차장 양복 왼쪽 호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열한 번째 질문이 끝났고 대통령이 답변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통령은 답변 도중 간간이 웃으면서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왼손잡이인 김 차장은 자연스럽게 양복 오른쪽 호주머니로 손이 갔다.
네 번 접은 A4 용지가 손에 잡혔다.
대통령의 답변이 끝나자 사회자가 마이크를 받았다.
“자, 다음 질문할 기자 질문해 부십시오!”
옆에 앉은 광화일보 최 차장이 이번엔 제법 세게 어깨로 툭! 쳤다.
엉겁결에, 그리고 반은 반사적으로 김 차장이 손을 들었다.
“광화일보 김문식 차장 질문해주십시오!”
김 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진행자가 마이크를 가져다주었다.
마이크를 손에 들고서 대통령을 힐끗 쳐다보았다.
3.
취임 첫해 여름,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담회 때 한번 본 것 말고는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김 차장을 아는 체 하는 눈치였다.
오른손에 마이크를 든 김 차장은 왼손으로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질문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주섬주섬 질문지를 폈다.
전날 사무실에서 메모했던 것이었다.
메모를 보는 순간 문득 어젯밤 제일방송 이 차장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그건 관점의 차이야!’
김 차장은 메모지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질문을 시작했다.
“집권 3년차를 맞아 오늘 신년기자회견을 열어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 차장은 대통령을 다시 대통령을 힐끗 쳐다보았다.
대통령과 눈이 마주쳤는데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듯 해 보였다.
“전 국민이 지금 이 기자회견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대통령님께서는 알고 계신지요?”
그리고는 김 차장은 다시 대통령을 쳐다보았다.
아까보다는 얼굴이 좀 굳은 듯 했다.
그 때 왼쪽 옆에 앉은 광화신문 최 차장이 그를 툭 치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김 차장, 뭐야? 지금 뭔 소리야?”
최 차장 얘기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이런 자리를 빌려 대통령님께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김 차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짜증난다는 투로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서론 말고 본론을 질문해주세요!”
“지난해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얘긴데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기자회견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쪽 옆에 낮아있던 서울타임스 강 차장이 김 차장을 툭툭 치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 차장, 그거 아니잖아!”
마침내 주변이 웅성웅성 거리는 눈치였다.
전면 좌측에 앉은 홍보수석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안절부절 하는 눈치였다.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예, 질문하세요, 세월호 참사는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만,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유가족 보상과 제반 후속조치를 강구중에 있습니다. 답변이 됐습니까?”
“제 질문은 그게 아니구요... 당일 대통령님의 7시간 동안의 행적이 불문명한데요, 그에 대해 이 자리에서 명쾌히...”
김 차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야이 개새끼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성질 급하기로 익히 소문난 A 수석이었다.
당장이라도 튀어와 김 차장 멱살이라도 잡을 듯 했지만 대통령 앞이라 감히 그러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A 수석에 이어 비슷한 톤의 목소리가 다시 찢어졌다.
“중계 마이크 꺼! 얼른 꺼!”
A 수석실 B 비서관의 목소리였다.
채 마이크가 꺼지기도 전에 이번엔 장관들 자리에서 말이 터져 나왔다.
“각하! 그만 중단하시지요! 이런 식의 기자회견은 할 필요 없습니다!”
C 장관은 ‘친박’의 중진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다른 장관들도 서로를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들 중 누군가 나지막이 말했다.
“저 친구 술 덜 깼나? 왜 저래?”
그 때 대통령 비서실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 상황을 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경거망동을 삼가주세요.”
말을 마친 비서실장은 좌중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메시지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한번 천천히 끄덕였다.
대통령 더러 계속해서 진행하시라는 신호였다.
비서실장과 눈이 마주친 대통령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대통령은 단상 위에 놓인 마이크 둘을 양손으로 잡았다가 놨다.
“그거... 사전에 준비된 질문은 아니지요?”
대통령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 자리에서는 사전에 약속된 질문만 해야 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 때 즉석질문도 받는다는 얘기 들으신 적 있으시죠?”
“예, 들은 적은...”
이 때 홍보수석이 사회자 마이크를 뺏어 들고 발언에 나섰다.
“김 차장, 오늘은 대통령님께서 일년에 한번 하시는 신년기자회견입니다. 예의를 갖춰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님께서 일년에 딱 한번 하시는 기자회견 자리니 하는 얘깁니다. 일년에 너댓 번이라도 하면 말도 안합니다. 이런 자리에서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국민들을 대신해 물어보는 것이 기자의 도리 아닙니까? 이게 대통령님께 무슨 큰 실례라도 된다는 얘깁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홍보수석이 말을 더듬거리자 대통령이 나섰다.
“홍보수석은 가만히 계시구요, 다른 분들도 이제 나서지 마세요. 제가 답변 드리겠습니다.”
대통령의 이 발언으로 소란스런 장내가 일거에 정리됐다.
대화는 김 차장과 대통령의 일문일답으로 전환됐다.
“대통령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시 감사드립니다.”
“... ”
“이제 대통령님 이외에 다른 분들은 좀 잠자코 계세요”
마치 호가호위라도 하듯 김 차장은 분위기를 확인사살하고는 질문을 이어갔다.
“아시다시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님께서는 7시간, 정확히는 8시간가량의 행적이 불명확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기 앉아 계시는 비서실장님조차도 그 내용을 잘 모르신다고 국회에서 답변하신 적이 있는데요, 그 시간동안 대체 어디서 뭘 하신 겁니까?”
말을 마친 김 차장은 대통령과 비서실장을 연달아 쳐다보았다.
잠시 답변을 주저하던 대통령이 말을 시작했다.
“세월호 사고는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저는 자식은 없습니다만,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의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님, 그런 식의 유체이탈화법으로 말씀하지 마시구요, 7시간 동안 어디서 누구와 뭘 하셨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저는 그 시각에도 국정을 보고 있었으며 수시로 사고 상황을 보고 받았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나라걱정만 하다가 잠이 듭니다.”
김 차장이 짜증난다는 투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문답에 끼어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꾸 저더러 같은 질문을 드리게 만들지 마시구요, 대체 그 시각에 어디에 누구랑 계셨습니까? 그 시각에 청와대 안에 계셨던 것은 분명합니까?”
“그 시각이면 근무시간인데 제가 청와대에 있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왜 자꾸 물어보시는 겁니까?”
“아, 예! 대통령님께서 그리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항간에는 그 시각에 정윤회 씨랑 모처에 함께 있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는데 그런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누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닙니까? 윤회 씨 행적은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잖아요!”
대통령의 말꼬리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그건 검찰 얘기구요!”
“검찰을 안 믿으면 누굴 믿습니까?”
“대통령님께서는 믿으시겠지만 국민 대다수는 검찰 안 믿습니다.”
“... ”
“좌우간 그건 분명히 아니라는 말씀이시지요?”
“거 참...”
대통령은 짜증 섞인 표정을 지으며 기가 차다는 식이었다.
“알겠습니다. 만약 나중에라도 대통령님께서 오늘 허위 답변을 하신 게 밝혀질 경우 책임지실 수 있으신지요?”
“그럴 일 없습니다.”
“그리 말씀하시 마시고 이 자리에서 명확히 답변해 주십시오. 만약 허위답변을 하신 사실이 밝혀질 경우 직을 걸고 책임지시겠습니까?”
“마치 저를 심문이라도 하듯이 말씀하시는데요...”
“예, 심문 맞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이 하면 심문이나 취조고 기자나 국회의원이 하면 질문이고 질읩니다. 아직도 제가 드린 질문에 대해 명쾌히 답변하지 않으셨는데, 자리를 걸고 책임지시겠습니까?”
답변을 머뭇머뭇하던 대통령이 오른쪽으로 비서실장을 힐끗 한번 처다 보았다.
순간 대통령과 눈이 마주친 비서실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지겠다고 말하라는 메시지였다.
“알았습니다. 책임지겠습니다. 그럼 이걸로 제 답변은 다 된 거죠?”
그리고는 대통령은 단상 위에 놓인 메모지를 챙겼다.
곧바로 단상에서 내려올 태세였다.
그러자 김 차장이 얼른 말을 꺼냈다.
“오늘 대통령님께서 국민들이 궁금해 하시는 의혹을 이처럼 속 시원히 답변해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이왕 시간을 내주셨으니 하나 더 여쭙겠습니다.”
청와대 비서진과 장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김 차장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 때 홍보수석이 다시 마이크를 들고 나섰다.
“김 차장님, 대통령님께서 다음 일정이 있으셔서 기자회견은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양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시 또 이런 자리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이왕 칼을 뽑았으니 여기서 그칠 김 차장이 아니었다.
“수석님, 그런 애기를 여기서 또 하십니까? 저희 출입기자단이 대통령님을 한번 뵙고 국정에 대해 말씀을 들을 기회를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드려도 집권 3년차가 되도록 몇 번 그런 자리 마련했습니까? 여기 출입기자들과 국민 여러분, 그리고 대통령님 앞에 무릎 꿇고 사죄부터 드리세요. 청와대 참모진이나 저기 계신 장관들이 다 이런 식이니까 오늘날 상황이 이 모양이 된 것 아닙니까?”
홍보수석은 물론 그 누구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5.
결국 대통령이 다시 나섰다.
오른쪽 입 꼬리가 가끔씩 올라가는 게 어디 나랑 한번 붙어보겠느냐는 자세였다.
“청와대 참모진이나 장관님들은 저를 잘 보좌해주고 계십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하시면서 그런 것도 모르세요?”
“청와대 사람이나 장관을 만나라도 봐야 그런 것을 알지요. 혹시 이분들에게 기자들 만나지 말라고 무슨 엄명이라도 내렸습니까?”
“엄명이라니요, 저는 장관들한테는 인사권을 비롯해 부처 업무와 관련해 전부 자율권을 드렸습니다. 그건 분명히 제 책임 아닙니다?”
대통령은 이 점에 대해서는 자신이 잘못한 건 없다고 누차 강조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아까 말씀드리다 만 세월호 건을 한둘만 더 짧게 여쭙겠습니다. 당일 청와대에 계신 것은 분명히 맞다고 대답하셨지요?”
“예, 맞습니다. 당일 그 시각에 청와대에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각이면 근무시간인데 비서실장께서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고 하신 것은 대체 어찌 된 일인가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비서실장님한테 물어보세요.”
“실장님한테는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구요. 당일 여러 차례 사고 상황을 보고는 받으셨던데요, 전부 서면보고, 유선보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대면보고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셨는지요?”
“아니 요즘 스마트폰도 있고 이메일도 있고 카톡도 있는데 굳이 얼굴을 봐야만 합니까? 장관님들 안 그래요?”
말을 마칠 무렵 대통령은 장관들 쪽으로 고개를 한번 휙 돌렸다.
“편리한 통신수단이 많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면 관계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들을 소집해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어야 마땅한 일 아닌가요?”
“방식이야 어떻든 저는 저 나름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왜 구조되지 못했는지 아직도 저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저나 국민들입니다. 항간에는 대통령님께서 그 시각에 무슨 미용수술 같은 것을 받고 계셔서 얼굴을 들고 나올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느냐며 온갖 억측이 나돌고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그 시각에 청와대에서 그런 수술을 받고 계셨나요?”
“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닙니까? 그리고 또 대통령은 그런 수술하면 안됩니까? 이래 뵈도 저도 아직은 예뻐 보이고 싶은 여자예요. 남자로서 그런 것도 이해해주지 못합니까? 김 기자 아내는 화장 같은 거 안 합니까?”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열을 내며 말했다. 무슨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듯 했다.
김 차장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먼저 사실 확인부터 하나 하고 넘어가야...”
김 차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통령이 말을 가로채고 나왔다.
“또 무슨 확인이 더 필요하다는 겁니까?”
대통령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거렸다. 가끔씩 볼 근육도 움찔움찔 거렸다. 얼굴에 짜증이 난 투가 역력했다.
그래도 김 차장은 지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다시 여쭙습니다만, 당일 청와대에서 혹시 무슨 수술 같은 걸 받으신 건 사실입니까? 아니면 그런 사실 없습니까?”
“그런 것까지 다 말해야 되나요? 대통령이기 이전에 나도 사생활이 있는 한 개인입니다. 그건 답변 안하겠습니다. 누가 무슨 오해를 해도 할 수 없어요!”
“정 그러시다면 지금 그 말씀으로 답변을 가름하겠습니다.”
더 이상 물어봐야 소용없겠다 싶어 이 얘기는 이 정도에서 접기로 했다.
“대통령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신다면 이런 자리를 빌려 고언(苦言)을 한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만.”
“고언요? 무슨 충고 같은 거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런 자리니 내 특별히 오늘은 조언(助言) 받아들이겠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난 그날은 참고로 평일이었습니다. 공휴일이나 휴일이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의혹이 제기된 ‘7시간’그 시각은 정확히 일과 근무시간입니다. 따라서 대통령님은 그 시각에 대통령직, 즉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고 계셨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아요. 그런데 그게 내가 어쨌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 시각에 국정이 아닌 다른 사적인 일, 혹시 무슨 수술 같은 것을 받으셨다면 그건 직무태만이나 아니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근무시간에는 근무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제 말씀에 동의가 되십니까?”
“설사 그랬다고 쳐도 대통령이 그 정도의 자유도 없나요? 난 동의 못해요.”
“1979년 10.26사태로 선친이 돌아가셨을 때 대통령님께서 최규하 국무총리의 전화를 받고 “전방은요?” 하고 물으셨다는 데 사실입니까?”
“예, 그런 적이 있습니다.”
“부친이 졸지에 비명에 돌아가셔서 정신이 없었던 그런 상황에서도 안보를 염려하신 분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신가요?”
“그거하고 이거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요? 요즘 전방은 조용하지 않나요?”
“남북 상황은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한 시간 뒤에 북한 장사포가 쏜 포탄이 청와대 앞마당에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7분도 아닌, 무려 7시간동안 행적이 묘연하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급한 일이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요, 뭐....”
대통령은 말꼬리를 얼버무렸다.
“세월호 사고 당일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였습니까?”
“김 기자 질문은 바늘로 꼭꼭 찌르듯 하네요.”
“예, 이왕이면 질문은 바늘처럼 날카로워야 맛이지요. 그래야 방송을 보시는 국민들이 속이 시원하지 않겠습니까?”
“질문 받는 제 입장은 하나도 배려 안 해주십니까?”
“대통령님은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십니다. 그런데 제가 뭘 배려해드립니까?”
“혼자 벌써 한 시간 넘게 김 기자한테 닦이고 있잖아요?”
“아니, 대통령님은 본인이 지금 ‘근혜 아줌마’라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무슨 동네 구멍가게 주인인 줄 아십니까?”
김 차장도 열이 올라 목소리를 높였다.
내내 참고 있던 비서실장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지 벌떡 일어났다.
“김 차장, 부탁합니다. 이제 대통령님 좀 그만 놔드리세요. 모두 저희 불찰입니다.”
“좋습니다. 실장님께서 그리 간청하시니 마지막으로 하나만 질문 드리고 끝내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비서실장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6.
그제야 김 차장은 정면에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 왔다.
1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통령님, 오늘 제게 이런 질문 기회를 주셔서 먼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질문 드리고 물러가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이라는 말에 대통령은 생기가 돋는 듯 했다.
“이제라도 물러나실 생각 없으신지요?”
“....?”
“사퇴하실 생각이 없으시냐구요?”
“왜요?”
“제가 보기엔 도저히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어 보입니다.”
“잘 하고 있는데 왜 그러세요?”
“지금 잘 하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지지율이 아무리 빠져도 35% 이상은 나오잖아요?”
“그 지지율이 대통령님 본인 지지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그게 제 지지율이 아니고 누구 지지율입니까? 문재인이나 안철수 지지율입니까?”
“부친의 지지율이라고 생각해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아버지 지지율이 바로 제 지지율 아닙니까? 제가 아버지 딸이니까요!”
“그러면 최소한 부친만큼은 하셔야지요?”
“제가 아버지만큼 못하는 게 뭐가 있나요? 아버지 시절에 아버지를 모셨던 분들이나 그 자제들을 가까이 두고 있는 것이 바로 아버지를 닮고자 함입니다. 제 오른쪽에 계시는 비서실장님이 바로 그 대표적인 분이구요.”
“결국 끝까지 자진사퇴는 안하시겠다는 거군요?”
“물론이지요? 국민이 절 뽑아주셨고 임기가 있는데 제가 왜 중도에 물러납니까? 탄핵이라도 당한다면 몰라요.”
“탄핵 애기 잘 꺼내셨습니다. 제가 보기엔 대통령님께서는 이미 두 차례나 탄핵을 받으셨어야 마땅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 생각안하십니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요?”
“예, 두 번요”
“그게 뭔데요?”
“우선 첫 번째는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사건입니다. 또 하나는 바로 작년 세월호 참사 당일의 7시간의 국정공백 사태입니다.”
“국정원 사건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전 아무것도 관여한 바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대국민 사과도 하고 국정원 개혁도 지시했습니다. 제가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왜 탄핵을 당해야 합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자리에서 자신이 속한 정당의 선거 승리 덕담 한 마디를 한 것 때문에 탄핵 문턱까지 갔다 왔습니다. 그에 비하면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이나 국군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간에서 조직적, 지속적으로 선거에 불법 개입한 것은 평소 대통령님께서 즐겨 말씀하시는 국기를 뒤흔드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대국민 사과로 넘어가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무튼 그 일은 이미 끝난 일입니다. 이제는 각자 제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나라 경제가 몹시 어렵습니다. 이럴수록 공직자들은 사심 없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건도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고 수습이야 다 끝났지요. 그래서 지금 유가족 배.보상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까지 와서 대통령님을 한번 뵙기를 청하였는데 왜 한 번도 만나주지 않으셨습니까?”
“안 만나주다니요? 제가 진도까지 내려가서 유가족들 만나지 않았습니까?”
“청와대 앞에서 몇날 며칠을 노숙할 때는 왜 안 만나주셨습니까?”
“그 때야 제가 바쁜 일이 있었겠지요. 대통령이 누가 만나달라면 다 만나야 합니까? 저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한 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퇴근 후에는 관저로 결재문서를 갖고 가서 일일이 보느라 더러 날을 새우기도 합니다. 이런 걸 국민들이 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청와대 들어온 이후로 눈이 많이 침침해졌을 정돕니다.”
대통령은 장황하게 얘기를 이어갔다. 말 나온 김에 자기변호를 좀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다시 한 번 더 여쭙겠습니다만, 결국 임기 중에 자진사퇴는 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요, 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제게 주어진 임기를 다 마칠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오늘 장시간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김 차장이 들고 있던 질문지를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으려하자 대통령이 다시 마이크를 쥐더니 물었다.
“김 기자, 저보고 물러나라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TV나 신문 안보십니까?”
“전 TV나 신문에서 그런 얘기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런 얘기 전해주는 사람도 없구요. 혹시 김 기자가 지어낸 얘기 아닙니까?”
“그리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김 차장, 제발 부탁합니다. 이젠 가셔야 합니다.”
비서실장이 거의 애원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김 차장이 최후의 한 마디를 던졌다.
“대통령님, 부디 선친의 전철을 밟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예? 전철요?”
“예! 전절요!”
이 때 비서실장과 수석 몇 사람이 대통령이 서 있는 선 단상으로 향했다.
“각하! 어서 가시지요. 대사님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팔을 잡고 반 끌어내리다시피 했다.
대통령은 끌리듯 단상에서 내려와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나머지 참모진과 각료들도 하나둘씩 회견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몇은 회견장을 나가면서 김 차장을 째려보기도 했다.
순식간에 단상 좌우는 썰물처럼 빠져 휑한 분위기가 돼버렸다.
주위의 기자들도 어느 새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7.
김 차장은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제야 김 차장은 바지 오른쪽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정치부장한테서 10통이 넘는 전화가 걸려왔었다.
카톡, 문자, 페북 메시지까지 모든 통신수단은 총동원 된 듯 했다.
웬일인지 회장이 보낸 문자도 하나 있었다.
우선 제일 마지막으로 정치부장이 보낸 메시지를 열었다.
“너 이 새끼, 회사 말아먹을 일 있냐? 오늘 회사 들어 오지마! 내일 출근하는 대로 사표 내!”
그제야 김 차장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 때 막 아내가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정민이 아빠! 사랑해요, 당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워요! 여보, 힘내세요!!”
김 차장은 잠시 헷갈렸다.
어느 것이 정확한 현실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기자회견장을 나와 청와대를 빠져 나왔다.
장시간 실내에 있다가 나와서인지 햇살이 눈이 부셔 앞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청와대 건너편 경복궁 담장 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게 눈에 들어 왔다.
그들은 여러 글자로 된 손 팻말을 들고 있었다.
왼쪽부터 하나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국 · 민 · 기 · 자 · 김 · 문 · 식 · 기 · 자 · 님 · ! · 사 · 랑 · 해 · 요
‘국민기자’? ‘김문식 기자’?
김 차장은 아직 그 이름이 자신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춘추관을 막 빠져나오자 사람들이 그에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김 기자님! 오늘 신년기자회견 질의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저희는 김 기자님을 오늘부터 ‘국민기자’로 부르고 팬 까페를 만들어 운영할 계획입니다.”
그제야 김 차장은 국민기자 김문식이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때 마침 스마트폰이 울렸다.
왼손으로 꽃다발 여럿을 겨우 든 채 전화를 꺼냈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받기로 했다.
“김문식 차장이요?”
“예, 그렇습니다만.”
“나... 국정원장이오!”
“무슨 일로 제게...”
“저녁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소?”
“글쎄요, 일단 회사에 들어가 봐야 알겠습니다만...”
“회사엔 다 얘기해놨소. 6시까지 차를 보낼 테니 그리 아시오!”
“예...”
전화통화가 끝나자마자 팬들이 다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팬 카페에 올릴 기념사진 같이 찍어요!”
김 차장은 할 수 없이 ‘팬’들과 어울려 기념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벌써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일자 정치 해설면 두 면을 자신이 채워야 할 것 같았다.
김 차장은 서둘러 삼청동 입구 삼거리로 걸음을 재촉했다.
삼거리에서 택시를 타고 귀사 할 작정이었다.
정면에 내걸린 햇살이 그날따라 따스하게 그의 이마를 내리쬐었다.
정운현 팩트TV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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