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 정운현 보도국장 겸 앵커
정운현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말 할 권리는 내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7일 프랑스 시사만평 잡지 <샤를리 엡도> 사무실에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괴한들이 침입해 만화가 등 12명을 살해했습니다. 이날 목숨을 잃은 샤르보니 <샤를리 엡도> 편집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슬림의 위협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살기 보다는 서서 죽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샤를리 엡도>는 만평을 게재하면서 수차례 무슬림으로부터 항의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를 두고 언론의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신성모독’ 사이에서 논쟁이 일고 있는데요, 오늘 기획취재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양 기자, 어서 오세요. 지난 주 프랑스에서 발생한 <샤를리 엡도> 총격 사건은 표현의 자유의 상징인 ‘언론사’를 상대로 한 테러 사건이 있었는데요. 테러의 배경이 무엇인가요?
양아라
우선 사진 두 장을 보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위 사진은 2012년 9월 만평 사진인데요, 무함마드가 알몸으로 엎드린 채 “내 엉덩이가 맘에 드니?”라고 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래 사진은 2013년 만평으로, 무슬림이 코란으로 총알을 막고 있는 그림입니다. ‘코란은 똥에서 나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이 같은 만평들이 무슬림들의 테러를 유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운현
무슬림들 입장에서 이런 만평을 본다면 썩 유쾌하지는 않겠군요. 이 같은 노골적인 표현 때문에 항의도 많이 받았다죠?
양아라
그렇습니다. 이번 테러사건 이전에도 <샤를리 엡도>는 수차례 항의와 협박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2011년에는 이슬람교를 풍자한다는 이유로 회사명을 ‘샤리아’(코란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의 법체계) 엡도로 고치고, 편집장을 ‘무하마드’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화염병 테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정운현
무슬림에게는 ‘신성 모독’이라고 여겨질 만큼 ‘불편함을 넘어 모욕감’을 느낄 만도 하겠군요.
양아라
풍자와 해학을 핵심으로 하는 시사만평은 때로는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받아들이는 독자의 ‘해석’에 따라서 표현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유엔 인권 최고대표조차도 <샤를리 엡도>의 만평을 두고 “나 자신도 무슬림으로 만평들이 모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정운현
이슬람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인간의 모습으로 그리는 행위자체를 금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언론자유도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는 기본적인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아라
그렇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으로 ‘좋은 표현’이나 ‘나쁜 표현’을 걸러내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표현’을 말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사’라면 자신들의 만평이 특정종교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금물입니다. 이런 점ㅂ에서는 일정부분 ‘자기검열’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운현
견해차는 있겠습니다만, 문제의 만평들을 보다보면 이슬람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권위와 권력에 대한 비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한편에서는 그간의 <샤를리 엡도>의 만평은 ‘성역 없는 풍자’라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 ‘표현의 자유’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고려대 박경신 교수의 견해를 한번 들어보시죠.
▶영상 - 박경신 교수 인터뷰
양아라
<샤를리 엡도>는 이미 로마 교황청으로부터도 13차례 정도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특별히 무슬림만을 상대로 과도한 비평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운현
이번 테러 사건을 두고 해외 언론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양아라
프랑스 언론은 ‘자유가 암살 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또 프랑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내가 샤를리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으며,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펜’을 들기도 했습니다. 또 영국 공영방송 BBC는 <샤를리 엡도>를 두고 “저항과 선동, 성역 파괴와 무례, 폭로와 포르노 사이에 외줄을 탄 주간지”라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아랍뉴스는 “언론이라는 자유 아래 이슬람들을 공격하면서 법적, 도덕적 제한을 받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고 하겠습니다.
정운현
<샤를리 엡도> 최근호 표지에 에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가 다시 등장했다죠?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테러 사건이후 처음으로 발간된 ‘특별판’에 무함마드가 “나는 샤를리다”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는데요, 머리 위로는 “모든 게 용서 됐다”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만, 날카로운 풍자와 함께 화해의 메시지로 풀이됩니다.
정운현
2차 테러 가능성을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유럽에서는 이번 테러 사건을 빌미로 통신비밀 등 시민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죠?
양아라
마치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듯합니다. 유럽에서는 테러 위험지역에 군인과 경찰을 배치하고, 감청법 도입을 추진하는 등 앞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외치면서 뒤로는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운현
자칫 이번 사태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외침을 넘어서 ‘반(反)이슬람주의’ 시위로 변질될 우려도 있는데요. 독일에서 이런 시위가 있었다면서요?
양아라
네. 지난 12일 독일 동부 작센주 드레스덴에서 열린 ‘페기다’가 그것인데요. ‘페기다’란 ‘서구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그러나 이곳을 제외한 다수의 타 지역에서는 ‘반(反)페기다’ 시위를 벌였는데요, 이들은 ‘반이슬람권 운동’에 ‘반대’하며 관용을 호소했습니다.
정운현
유럽 국가 중에서도 프랑스는 시민혁명을 통해 국민들이 자유를 쟁취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런 자유로운 문화와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충돌이 발생하는 것 아닐까요?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톨레랑스’, 즉 ‘관용’을 중시해온 나라입니다. 현재 프랑스에는 10% 무슬림이 존재하는데요, 문화와 종교적 차이 때문에 더러 갈등을 빚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샤를리 엡도>가 사회적 통합과 공존을 위해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정운현
원칙적으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겠지만 특수한 상황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군요?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경우에 표현의 자유는 제한돼 왔습니다. 다만 그 제한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경우에 한정돼야 한다는 것이 표현의 자유 제한의 기본적 원칙이라고 하겠습니다.
정운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휴전 상태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표현의 자유는 제한하고 있지 않나요?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최근 재미교포 신은미 씨 사건의 경우가 한 예라고 하겠습니다. 검찰은 ‘평화 통일 콘서트’에서 행한 신 씨의 발언내용과 북한 여행담을 담은 책을 조사한 결과 신은미 씨를 지난 10일 강제출국 시켰습니다. 이를 두고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운현
신은미 씨의 경우 ‘토크 콘서트’에서의 발언과 북한 방문기 책자의 내용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할 만큼 국가안보나 공공의 이익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 있었을까요?
양아라
그 점에 대해서 찬반양론이 있긴 했습니다만, 당국의 조치가 과다했다는 게 중평이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다양한 표현 그 자체를 막고 처벌을 하는 것에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검찰이 신 씨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지는 못했습니다.
정운현
대북전단을 두고도 ‘표현의 자유’ 문제가 거론됐었는데요, 이와 관련해 정부의 판단 기준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더군요.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정부는 일관된 기준으로 판단하고 처리해야 합니다. 최근 법원은 대북전단 살포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는데요, 그 이후에도 통일부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구요.
정운현
대북전단 살포 역시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고려할 점도 전혀 없진 않겠습니다만, 이 문제로 인해 접경지대 주민들이 항의를 한 적이 있지요?
양아라
네, 작년 10월 탈북자단체가 파주시 통일전망대에서 날려 보낸 대북전단에 대해 북한이 총격을 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인근 주민들은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 나머지 대북전단 살포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도 존중돼야 하겠지만 제3자에게 위해나 피해를 입힌다면 그 책임도 져야할 것입니다.
정운현
작년 12월 신은미 씨의 ‘익산 콘서트’ 때 한 고교생이 사제 폭탄을 터뜨려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양아라
문제의 고교생은 신 씨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다’라는 발언을 한 것에 격분해 이같은 테러를 했다고 경찰조사에서 밝혔습니다. 그런데 겸찰조사 결과 신 씨는 그런 발언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신 씨의 ‘표현의 자유’가 구체적으로 위해를 받은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사건 발생 후 그 고교생은 현장에서 체포돼 현재 구속 상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 씨의 토크 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라고 규정하면서도 익산에서 발생한 사제 폭탄 테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정한 처사는 아닌 셈이지요.
정운현
공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경우 규정에 따라 엄격하고 또 최소한의 개입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간 국내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었죠?
양아라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서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 작품이 ‘전시 불허’가 내려져 검열 논란이 있었는데요, 불허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사자인 홍성담 화백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는데요, 같이 들어보시죠.
▶영상 - 홍성담 화백 인터뷰
양아라
팝아티스트 이하 씨가 지난해 서울 광화문 네거리 인근 건물옥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전단을 뿌리다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경찰이 이 씨에게 적용한 죄명은 ‘건물 침입죄’였는데요, 이 역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케이스라고 하겠습니다.
정운현
전단지나 삐라는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언로가 막혀 있을 때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의 한 형태로 유행한 것인데, 21세기에도 이런 풍자 전단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역시 이 시대에 표현의 자유가 제약된 탓이겠죠?
양아라
예, 그렇게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언론자유는 물론 일반인들의 표현의 자유도 현격하게 퇴보했다는 것이 객관적인 지표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언론이나 작가들의 표현의 자유 역시 보편상식의 틀 내에서 만끽 돼야하는 점도 강조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정운현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표현의 자유가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반면 ‘국경 없는 기자회’는 ‘2014년도 세계 언론자유지수’ 발표했는데요. 한국은 전 세계 조사대상국 180개 중 57위를 기록했습니다. 정 총리의 발언이 무색한 순위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준비한 기획취재는 여기까집니다. 양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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