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 님. 신부 님. 우리들의 신부 님 -
국민을 이 지경으로까지 멸시한단 말이냐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1987년 5월18일. 천주교 명동성당. 김승훈 신부님이 입을 열었다.
“‘탁’하고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간단히 설명 드린다. 남영동 대공분실이란 곳에 잡혀 간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물고문’을 당하던 중 숨졌고 이를 변명하는 강민창이란 경찰총수가 사망이유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탁’ 하니까 ‘억’이란 말은 경찰고문의 상표처럼 되었다.
경찰의 정치개입은 당연히 국민규탄을 받아야 하지만 꼭 지나간 과거를 들춰내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오늘의 현실이 과거의 반성을 하나도 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권력에 굴종하는 경찰간부의 작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렇게 반성할 줄 모르는 경찰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착잡하다 못해 참혹하다. 경찰은 스스로 어떤 존재인가.
무궁화 아름다운 삼천리강산
고귀한 우리겨레 살고 있는 곳
영광과 임무를 어깨에 걸고
이 땅에 굳게 섰다. 민주경찰
이것이 ‘경찰의 노래’다. 얼마나 아름다운 가사인가. 경찰의 소명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가. 그러나 이제부터 ‘경찰의 노래’는 가사를 바꿔야 할 것 같다.
경찰이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지경이다. 그러나 이것이 누구의 죄인가. 자유당 독재시절 경찰의 정치개입은 필설로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이다. 박정희 독재시절도 마찬가지다. 전두환 독재정권도 다름이 없다. 이들 독재정권의 주구를 국민들은 견찰이라고 했다. 개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개가 바로 경찰간부다.
13만의 경찰 중에 간부는 얼마나 되는가. 그야말로 쥐꼬리만큼 될 것이다. 나머지 하위직 경찰관은 모두들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국민이 쏟아내는 경찰 비난에 대해 참담하고 너무나 억울할 것이다. 출세 병에 걸린 일부 경찰고위층에 반민주적 행위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시정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제 국정 조사장에서의 경찰총수나 고위간부들의 태도는 정말 눈뜨고는 봐 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 중 가장 꼴불견은 성질은 살아 있는지 삐딱한 표정의 경찰간부 모습이다. 치안감이란 계급이 아까울 지경이다.
경찰이 어깨에 달고 있는 자랑스러운 무궁화 꽃이 국정조사장에서 무참하게 짖밟혔다. 경찰간부들이 경찰의 상징인 무궁화 꽃을 능멸할 어떤 권리가 있는가. 하위 경찰관들에게 엎드려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 신부 님. 신부 님. 우리들의 신부님
1987년 5월18일, 박종철 열사를 물고문으로 숨지게 한 경찰의 만행을 폭로함으로서 이 땅의 민주회복을 앞당긴 김승훈 신부님의 희생정신은 민주주의 역사의 큰 획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후에도 국가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신부님들은 늘 앞 장 서서 민주회복에 헌신했다.
이번 부산에서 민주회복 시국선언에 참여한 신부님들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규탄하고 책임자들의 처벌을 요구했다. 참여한 천주교 부산교구 신부님들은 모두 121명. 지역 교구 차원의 사제들이 대거 시국선언에 참여한 것은 부산이 처음이다.
신부님들은 자신들이 26년 만에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된 이유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는 87년 6월 항쟁 때 꺼져가는 항쟁의 불씨를 되살리고,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 됐던 곳"이라며 "6월 항쟁과 부마항쟁, 4.19 혁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으로 지켜낸 민주주의를 다시 한 번 우리가 수호할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성당에 있어야 할 신부님들의 말이 너무 가슴 아프지 않은가.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합의가 사심을 품은 몇 사람들에 의해 너무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신성한 국민의 권력을 사심을 품은 세력들이 자신의 정권 안정과 안보를 위해 휘두르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선거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에게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신부님들은 이 날 발표한 시국선언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크게 꾸짖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민주주의와 국기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행위"며 "민주주의를 위해 언제나 역사와 함께 했던 교회에 대한 도전이며, 교회와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악이다."
신부님들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도 무겁게 비판했다."지금의 사태가 이러함에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진실규명과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끝이 보이지 않는 침묵과 소모적 논쟁 그리고 온갖 핑계로 발뺌을 하고 있다" "이는 이 정부의 뿌리가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연장이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
바로 국민 모두의 비판과 요구를 압축한 신부님들의 말씀이다.
### 끝내 국민의 소리를 외면할 것인가
지금 국정원 댓글조사를 조사하기 위한 국정조사는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참석거부로 파행을 겪고 있다. 왜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참석을 거부하는가. 이유는 있다. 엄중한 국가기밀이 밖으로 새나갈 우려가 있어서 비공개로 해야 한다는 고집 때문이다. 당연히 국가기밀이 새나가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야당은 공개와 비공개를 절충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 역시 거부다.
그럼 묻자. 절대로 발설하면 안 될 정상간의 대화록을 공개한 장본인은 누구인가. 국정원의 명예를 생각해서 공개를 했다는 남재눈 국정원장의 기밀누설은 지금 국정조사 거부를 하고 있는 새누리당이나 국정원의 행위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그냥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국민에게 양심적이 아닌가.
국정원과 경찰이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속속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면 정직하다는 소리라도 듣는다.
국민을 얼마나 바보처럼 취급할 것인가. 국민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는가. 박정희 독재정권의 종말이나 전두환 독재의 끝나는 그 만큼이라도 권력을 향유해 보겠다는 것인가. 꿈 깨야 한다. 악몽은 빨리 깨는 것이 좋다.
양처럼 순한 백성이라 해도 참는데 한계가 있다. 숨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와야 한다. 촛불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텅빈 국정조사장을 보면서 국민이 느껴야 할 좌절과 분노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매를 맞고서야 말을 듣는다면 그게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성당에서 인간의 영혼을 보살피는 신부님이 거리로 나오셨다. 스님도 거리로 나오셨다. 이제 분노한 국민의 촛불이 전국을 덮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기다릴 것이 없다. 국민의 분노를 헤아리는 것이 바로 정치를 제대로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