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가 우리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부각된 지 이미 오래 됐습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은커녕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 이슈인터뷰에서는 이남신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소장을 모시고 얘기 나눠볼까 합니다.
정운현
요즘 드라마 ‘미생’ 열풍으로 덩달아 ‘장그래법’이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드라마 주인공의 청년 비정규직 삶에 공감하는 현실의 장그래들이 많다는 소린데, 이 시대 노동문제의 핵심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남신
일단 나쁜 일자리인 비정규직이 너무 많습니다. 1,900만 노동자 중에 1,000만 명 정도가 비정규직으로 저희가 추정하고 있거든요. 55%내외. 그래서 규모가 너무 많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위시해서 사회 복지 이런 전반의 차별이 너무 심각합니다. 이게 구조적으로 굳어있어서 해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거든요. 그래서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많이 얘기합니다만 비정규직 문제를 우선 해결하지 않고는 한 발 짝도 진전할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잖아요.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데, 노동조합 가입률이 비정규직은 3%가 채 안 됩니다. 100명 중에 3명이 노동기본권을 누리지 않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이건 사실 국민 기본권이라고 얘기하기 민망한 수준입니다. 이런 문제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정운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간 연장이 ‘장그래법’의 핵심인데, 이미 2009년 7월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었죠. 최경환 경제팀이 주도하는 ‘중규직’,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를 골자로 한 법안들이 통과될 경우 파급효과는 어떨 것으로 보십니까?
이남신
일단 정규직을 표적 삼아서 비정규직 문제 개선을 시도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출발입니다. 왜냐하면, 최경환 장관께서 직접 얘기했듯이 소득주도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촉진하고 임금 격차를 비롯한 여러 가지 차별을 완화시켜야 하거든요. 그렇다면 비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직접 개선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조건을 먼저 시행해야 합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정규직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먼저 모색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최경환 장관 취임 일선으로는 그렇게 하실 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불과 수개월 지나지 않아서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를 얘기해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미 정규직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해외에서도 이미 실패했고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전 정부에서 이미 여러 차례 재탕 삼탕 정책을 시행한 바 있는데 다 실패로 돌아갔거든요. 저는 왜 낡은 칼을 꺼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보다도 오히려 정부 통계상으로도 비정규직이 6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거든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대립시키는 해법이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직접 근본적인 해법을 정부가 앞장서서 내세워야 할 때입니다.
정운현
정부는 정규직 전환요건 강화를 두고 ‘일자리 늘리기’ 대책의 일환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기획재정부의 2015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내년도 고용효과를 54만 명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경기불황일 때도 7~80만 명이었는데 여기에도 훨씬 못 미치는 거 아닌가요?
이남신
일단 일자리 창출 효과도 미지수이긴 합니다만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노동시장 양극화 얘기할 때 저희가 가장 강조하는 게 이제 일자리의 질을 봐야 한다고 얘기하거든요. 우리나라 경제규모 자체가 이미 OECD 가입국이기도 하고요, 세계 기준으로도 13위권 내외, 무역 규모로는 10위권 내외지 않습니까? 경제 대국이거든요. 이런 나라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실제로 일자리의 질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노동시장 설계가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고용률만 주목하는 정부 대책이 많았거든요. 결국은 그것 때문에 오히려 시행 안 하느니만 못한 부작용이 컸던 것이죠. 지금 최경환 경제팀이 바람직한 전략적 기조를 잡았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부하는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 발표된 비정규 종합 대책을 보니까 기간제 고용 기간을 연장하고 파견을 확대하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하는 대책을 내놨거든요. 정규직을 실제로 늘릴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은 실종된 상황입니다. 그런 부분과 관련해서는 일자리의 질을 제고시켜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고요. 그런 게 없이는 노동시간 밖의 경력 단절된 여성들을 포함해서 노동시장 내로 진입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나쁜 일자리를 누가 원해서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 특히 경제 성장을 관장하고 있는 주요 부처 수장들이 노동시장 설계에 대해서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운현
‘세월호 참사’에서 선장이 계약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사회의 안전문제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점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이남신
굉장히 정확한 지적이시고요. 당시 선원 중의 70% 이상이 계약직이었죠. 사실 내 일상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고 차별받고 있는데 위급한 상황에서 직업적 소명의식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일반인이라면 대부분은 나 혼자 살자고 도망가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이준석 선장과 몇 명의 선원들에게만 씌울 책임이 아니다. 이는 한국사회 전반이 특히 안전과 생명과 직결돼 있는 직무마저도 비정규직으로 양산했다는 것 그런 구조적 한계 때문에 저는 세월호 참사가 생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서요. 그런 면에서 보면 천만 비정규직은 작은, 잠복되어있는 세월호 참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세월호 참사의 교훈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분기점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운현
노동문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철학적 가치와도 연관돼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문제가 경제 공공성에 대한 최소한의 안정성 확보라고 보여지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남신
일자리는 개인의 자아실현, 생계를 유지하는 데도 굉장히 필요하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가정의 안위가 걸려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일터가 건강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겠습니까? 저는 굉장히 공익적인 의미를 갖는 게 일자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노동 문제에 대해 너무 천박하게 접근하고 있다. 특히 사용주들, 굉장히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고 있는 대기업 집단을 포함해서 일당을 적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내려고 하는 것이 만연해 있거든요. 심지어는 정리해고해서 구조조정 명목으로 흑자인데도 사람을 자르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가 아무리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그런 경제 이념을 쫓아가는 경제체제지만 자본주의 사회로서도 한도를 이미 넘어서 있다, 너무 불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 인간의 존엄과 가치, 특히 생명과 안전과 직결돼 있는 직무나 일터와 관련해서 어떻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우리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 비정규직 양산과 관련해서 정부가 접근하고 있는 방식들도 원점에서 다시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운현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바람직하지 않고 왜곡된 노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이남신
일단 노동자 없이 우리 사회가 하루라도 굴러갈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최근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해서 돌아가신 안타까운 일도 있었잖아요? 그 경비 노동이나 청소 노동 없이 아파트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저는 40만 전국 청소 노동자들이 하루만 파업하면 청소 노동이 얼마나 소중한 공익적인 일인지를 다 알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노동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일반적 인식은 노동이 실제로 갖고 있는 의미에 훨씬 못 미치는, 저평가하는 것이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노동과 관련한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저희 아이도 고등학생입니다만 우리 후세들에게 노동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얼마나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졸업한 아이들의 99%는 노동자가 됩니다. 사용자는 극소수잖아요. 결국은 자기 평생의 직업인 노동과 관련해서 떠나야 할 직업으로 생각한다면, 또는 가지지 말아야 될 패자의 직업으로 생각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어요. 우리 사회가 불행해지는 척도죠. 그래서 저는 건강한 노동, 존중받는 노동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이 될수록 우리 사회는 선진국이 돼간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지점에서 사용주들도 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에 왜 노동기본권 보장이 되겠습니까? 헌법을 지켜야 한다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노사가 상생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에 대한 여러 가지 가치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리고 그런 가치관의 전환 없이는 비정규직문제, 나쁜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 실질적인 개선 대안을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정운현
엊그제 민주노총이 직선제 실시로 새 지도부를 구성했습니다. 2009년 비정규직 법안 처리 때나 이번 ‘장그래법’ 문제에서도 양대 노총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데요. 양대 노총의 한계와 그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남신
제가 양대 노총을 하도 비판해 온 당사자여서. 그런데 양대 노총이 상당이 애를 쓰는 건 사실입니다. 150만 노조원을 가지고 있는 그 규모 때문에 여러 가지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있고 또 정규직 중심의 조직 운영 때문에 눈총을 받고는 있습니다만, 정부나 재벌 사용자들에 비해선 훨씬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 사실이고요. 다만 당사자의 보이스가 중요하잖아요. 특히 우리나라 노조 가입률 10%내외, 그리고 비정규직은 불과 2~3%에 불과하거든요. 그러면 대다수의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자들을 대변해야 하는 총연맹으로서 양대 노총은 어쨌는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저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저는 이번 정부 비정규 대책과 관련해서도 이런 대책이 나오지 않도록 사실 방비하고 더 좋은 대안이 나올 수 있도록 견인해야 하는 것이 양대 노총의 역할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런 양대 노총의 역할이 눈에 띄었나요? 저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뼈아프지만 저는 좀 대오각성 해야 할 부분은 있겠다, 다만 도매 급으로 비난하는 건 자제해야 하지 않는가...그래서 노동조합이 대중조직인 만큼 정규직 조합원 중심의 이해와 요구를 중심에 두고 정책을 하는 것은 불가피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 대안에 대해서 양대 노총이 좀 더 무게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겠다.
정운현
유럽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덴마크는 대화와 타협을 앞세운 노사정 위원회의 제 역할로 노동정책, 일자리만큼은 탄탄하게 꾸려간 예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또 덴마크가 아니라도 외국의 좋은 사례가 있으면 소개를 해주세요
이남신
가장 좋은 것은 북유럽형이겠죠. 덴마크나 네덜란드를 포함해서 스웨덴이나 핀란드, 노르웨이가 지향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기반으로 한 복지국가가 가장 건강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작은 미국보다는 큰 스웨덴으로 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문제는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요. 역사적 조건도 그렇지만 북유럽 같은 경우는 노동조합 가입이 최소한 과반은 넘거든요. 우리는 불과 10% 내외여서 일단 노동자 세력 자체가 너무나 취약합니다. 그리고 그런 노동자들을 기반으로 한 정당 자체도 민주노동당이 있긴 했지만 사분오열돼 있고 그래서 실제로 북유럽형 복지국가나 노사정합의모델이 정착되기 위한 필수 기본 조건이 강력한 노동조합이거든요. 그런 강력한 노동조합이 역설적으로 가장 취약한 지역이 한국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조건에서는 아주 사용자 단체가 선량하지 않는 이상은 노사정 합의가 일정한 수준에서 상생할 수 있는 모델로 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아니면 정부가 그야말로 약자인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사용자들을 제어해야 하는데요. 아시다시피 박근혜 정부를 위시해서 오히려 역편향이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는 말씀하신 대로 북유럽형의 노사정 합의 모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긴 합니다만 현실적 조건에서는 바로 이식하긴 어렵다. 지금은 오히려 중장기적인 대안을 가지고 노동자들이 실제로 노조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개선해 내고 그런 조건 속에서 노사정이 실제로 대등한 관계 속에서 사회 전반의 통합적 가치와 노동 문제들을 다를 수 있는 이런 시점까지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현재 조건 속에서는 기대가 남아있는 건 사실이고요 그런 점에서 오늘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 종합 대책은 굉장히 실망스럽습니다. 분기점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후퇴한 대책이 대다수이거든요. 노사정 협의를 통해서 하겠다고 하는 건데 내년 3월까지 협의를 통해서… 저는 그 과정에서라도 잘못 꿴 첫 단추 다시 뀄으면 좋겠고 정말 노사정 합의 모델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한다면 노사정의 가장 앞에 있는 ‘노’의 기준이 중요하게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노’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