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팩트9뉴스】기획취재-근로기간 연장 '장그래법' 830만 비정규직의 눈물
진행 : 정운현 보도국장 겸 앵커
정운현
인기 웹툰 ‘미생’은 취업 준비생과 직장인, 그리고 비정규직의 애환을 잘 그려내 시청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바둑 용어인 ‘미생’은 집이 살아있지 않은 상태의 돌을 말랍니다. 즉, 미생은 완전히 죽은 돌과는 달리 살아날 여지가 있는 돌입니다. 바로 그 ‘미생’은 오늘날 우리사회를 빼 닮았습니다.
정부는 비정규직 대책으로 35세 이상 기간제 근로자가 회사와 합의하면 계약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이나 4년으로 연장할 수 있는 방안을 내 놓았습니다. 이를 두고 한 네티즌은 ‘미생’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주인공 장그래를 빗대 ‘장그래 양산법’이라고 비꼬았습니다. 오늘 기획취재에서는 830만 장그래들의 애환, 비정규직 문제를 다뤄볼까 합니다. 양아라 기자, 어서 오세요.
정부와 한국노총, 경총이 참여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가 지난 23일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관한 기본원칙과 방향에 합의했는데요, 여기에 비정규직 대책도 담겨 있죠? 내용은 뭔가요?
양아라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피부로 느끼는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이중구조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크게 기간제 근로자 근로기간 연장안과 파견근로자 업종 확대 등이 있었습니다.
정운현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일시적인 경제상황의 변동에 의한 결과로만 볼 수 없는 것인데, 우리사회에서 비정규직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양아라
1997년 아이엠에프 경제위기 이후부터 시작됐는데요, 명분은 ‘노동유연성 강화’였습니다. 아버지들의 정리해고와 청년들의 실업, 그리고 비정규직 확대가 뒤따랐습니다. 이후 참여정부 때 만들어진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기업이 근로자를 고용한 지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는 부작용이 생기면서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운현
오늘 오전 노사정위원회에 노동자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이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조합원 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비정규직 대책을 추진할 경우 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할 것이라고 밝혔다면서요?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오늘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정부안을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노동시장의 뜨거운 감자인 ‘기간제 근로기간 연장’에 대해 한국노총 대변인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 VCR.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 전화 인터뷰
정운현
노동계로서는 2년 뒤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2년 뒤에도 또 비정규직으로 남게 되는 ‘개악’이라고 반발할 만 하군요. 소정의 기간이 지나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은 기존과 차이가 없어 보이네요?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오히려 ‘비정규직 사용제한 완화’가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노총은 상시, 지속업무는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원칙을 토대로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고, 정규직과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게 비정규직 해법의 출발선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운현
참여정부 때 만들어진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업이 근로자를 고용한 지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는 부작용이 생기면서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비판이 있었죠?
양아라
네, 그 당시에도 2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논란이 많았죠. 소위 계약기간을 두 번, 세 번 ‘쪼개기 계약’으로 법망을 피해가는 기업이 많았는데요. 비정규직의 하나인 촉탁직으로 일을 해온 분의 인터뷰를 화면을 통해서 만나보시죠.
▶VCR. 촉탁직 노동자 전화 인터뷰
양아라
고용노동부의 통계를 보면, 금년 하반기 비정규직 수는 약 600만 명에 이릅니다. 그러나 정부의 통계와 노동계의 통계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전체임금 노동자 1824만명 중 837만명, 약45.4%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차지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정운현
노동자 두 명 중 한 명은 비정규직이라는 얘기군요. 화면의 그래프에서 봤듯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점차 늘어나는데요,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 차이가 크죠?
양아라
네, 그렇습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만, 아직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 차이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화면에 보이는 정부의 통계와는 달리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02년 정규직 대비 67%였던 비정규직의 월 평균 임금은 작년 56%로 떨어졌습니다.
정운현
비단 임금뿐만 아니라 이 그래프를 통해서도 4대 보험과 상여금, 퇴직금, 그리고 노조가입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군요.
양아라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노동환경은 큰 문제입니다. 노동조합 결성 시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근로계약 연장을 조건으로 한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는 노동운동 탄압 사례도 비일비재합니다.
정운현
비정규직에는 직접 고용되는 기간제 뿐만 아니라 간접고용, 즉 하청업체에 고용되는 파견 노동자들의 문제도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오죽하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70미터 높이의 굴뚝으로 올라갔겠습니까?
양아라
그렇습니다. 그들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요구는 노동자로서 당연한 권리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자의 ‘생계권’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나온 노사정 위원회의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 노동문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VCR. 김유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정운현
기업이 해고나 임금 문제에서 사용자로서의 법률적 책임을 회피하려고 간접고용을 확대하고 있는데요.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을 강화하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노사갈등을 직접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만.
양아라
그렇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기간제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확실하게 보호하겠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간의 차별을 해소하고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화물운송기사 등 특수 고용직 종사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겠습니다.”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정운현
박 대통령은 상시, 지속적 업무의 경우 정규직을 고용하는 관행을 정착시키겠다는 공약을 내 걸었습니다. 또 2015년까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양아라
노동부는 지난해 정부 중앙부처와 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3만 1782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공약은 ‘무기한 비정규직’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정운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다수를 차지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는 비판도 있었죠?
양아라
그렇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간접고용 노동자는 2012년 말 현재 11만6천명에서 2013년에는 11만2천명으로 1300명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제대로 된 비정규직 정책이 마련될 때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정운현
박 대통령의 발언이나 공약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정규직 과보호로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발언이 또다시 논란이 됐었죠?
양아라
그렇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최근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상황에서, 정년이 60세 늘어난 상황에서 누가 정규직을 뽑으려 하겠습니까? 비정규직은 양산되고 정규직은 한번 뽑았다 그러면 평생 먹여 살려야 되고. 이렇게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라고 발언해 뜨거운 논란을 일기도 했습니다.
정운현
경제부총리라면 노동문제도 관할하는 셈인데요, 비정규직 차별 개선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노력 같은 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양아라
우리사회의 노동환경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질 좋은 노동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는 차별 개선뿐 아니라 안정적 공급이란 차원에서 기업과 노동자, 정부의 의견수렴과 합의가 필요합니다. 경제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인데 경제를 위해 사람을 자른다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습니다. 건강한 노동환경이 갖춰져야 경제성장이라는 좋은 성과가 나오는 법이죠.
정운현
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 노동시장의 어두운 그늘입니다. 장시간 저임금 무권리 노동의 상징이자 우리시대의 비인간적인 차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고서는 노동시장의 평화도 안정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막다른 골목은 결국 비정규직입니다. 그래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노동자는 바꾸어 말하면 시민이자 유권자이자 소비자입니다. 노동자,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우리사회의 평화와 번영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국과 기업주, 그리고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각성과 지혜가 모아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도출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양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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