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팩트9뉴스】기획취재-‘그 나물에 그 밥’ 헌법재판소, 이대로 좋은가
진행 : 정운현 보도국장 겸 앵커
정운현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를 한 이후 그 파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내 여론은 물론 세계의 이목도 헌재로 쏠리고 있습니다. 세계 헌법재판기관 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는 통진당 해산심판 결정문을 보내달라고 헌재에 요청했습니다. 통진당 해산 선고 이후 헌법재판소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요, 그 첫 번째는 헌재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특히 헌재가 사법판결을 정치화 하여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그로 인해 헌재 스스로 권위를 깎아먹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오늘 기획취재 시간에는 헌재를 둘러싸고 제기된 다양한 비판은 무엇인지, 그리고 헌재가 직면한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김 현정 기자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김 기자, 어서 오세요.
김 기자, 이번 통진당 해산 선고로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판도 비판이지만, 헌재에 대해 실망을 넘어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 것 같습니다. 실상이 어떤가요?
김현정
법무부의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에 대해 국민들은 헌재 재판관들의 공정하고도 상식적인 판단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판결 이후 헌재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운현
그렇습니다. 일반국민들의 헌재에 대해 느끼는 실망감이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헌재가 제 스스로 권위를 깔아뭉갰다는 국민적 질타는 어디서 비롯된 건가요?
김현정
1988년에 출범한 헌법재판소는 1987년 ‘6월 항쟁’ 승리의 결과로 쟁취한 민주헌법의 소산입니다. 헌재 탄생부터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비토 플레이어’로서 헌재에 거는 기대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헌재는 이같은 국민적 기대를 외면한 채 정치적 판결을 해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1996년 당시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2009년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런데 이번 통진당 강제해산 선고를 계기로 그나마 남은 기대도 완전히 무너졌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정운현
이번 통진당 해산 선고를 두고 국민들이 놀라워하는 것은 재판관 9명 가운데 8명이 인용, 1명이 기각 판결을 내린 점인데요, 헌재 재판관 인적구성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더군요?
김현정
그렇습니다.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법원장급의 현직 판사에서 바로 임명됐습니다. 또 2명은 검사장급 고위 검사 출신입니다. 그러니까 9명 전원이 현직 판검사로 있던 사람 중에서 재판관으로 바로 임명된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50대 중반 이후의 남성들로, 2~30년간 판‧검사 생활을 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질법한 보편적인 보수성향이 이번 통진당 해산 판결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운현
이번 통진당 판결이 보수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군요. 헌재의 존재 자체를 놓고 요즘처럼 논란이 치열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요, 헌재는 어떤 뭐라던가요?
김현정
안 그래도 궁금해서 헌법재판소에 입장을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함께 보시죠.
▶ VCR. 헌법재판소 공보관 인터뷰
정운현
네. 뭐 잘 들었습니다. 뭐 여차하면 국회에서 헌재를 없애려고 하면 없어질 수도 있죠. 재판관 임명 건도 근자에 많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죠?
김현정
그렇습니다. 재판관 9명 가운데 대통령이 3명을 임명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임명합니다. 나머지 세 명은 국회에서 임명하여 선출하는데요, 온전한 야당 몫은 1명밖에 안됩니다. 대법원장도 결국은 대통령이 임명하니까 결국은 대통령과 여당이 사실상 8명을 임명하는 셈입니다. 이번 통진당 해산 판결에서 실상이 입증된 것이죠.
정운현
그렇군요. 앞서 김 기자가 잠깐 언급했지만 헌재 재판관들을 보면 다양성이 참 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김현정
맞습니다. 헌법 규정에 따라 헌법재판소 재판관 자격은 변호사 자격이 있는 자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100% 법조인 출신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장이 3명을 임명하다 보니까 판‧검사 출신이 유독 많습니다. 지금 사법부 인사 관행상 대법관 임명에서 밀리면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가고 있습니다.
정운현
역대 재판관들의 직군과 출신학교 분포는 어떤가요?
김현정
네. 역대 헌법재판소 소장 가운데 박한철 현 소장을 제외한 4명이 모두 판사 출신었고요, 출신학교는 모두 서울대였습니다. 역대 재판관 46명 중 약 70%에 해당하는 32명이 서울대 출신이었습니다. 또 판사 출신이 80%에 달하는 37명, 검사 출신은 20%였습니다. 재야 변호사 출신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정운현
너무 일방적이군요. 우리보다 먼저 헌법재판소를 운영해온 선진국은 어떻습니까?
김현정
네. 우리가 헌법재판소를 설립할 때 많이 참고했던 독일은 1951년에 연방헌법재판소를 설립해서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소장과 부소장 각각 1인씩을 포함해 총 16인의 재판관으로 운영됩니다.
정운현
독일은 재판관 숫자가 거의 우리 2배군요.
김현정
네 그렇습니다. 또 프랑스의 경우는 1958년 제5공화국부터 헌법위원회를 설치 운영해오고 있는데요, 9명 위원의 자격을 법률가로 한정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법률가가 임명되기는 합니다만.
정운현
위원 자격을 법률가로 한정하지 않은 것은 좀 특이하군요. 그럼 이런 나라들은 재판관들을 어떻게 임명하나요?
김현정
독일은 연방의회에서 간접선거에 의해 선출됩니다. 12인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재판관선출위원회가 있는데요, 여기서 선출되면 다시 연방 상원을 통과해야 합니다. 프랑스는 9명의 임명직 위원으로 구성되는데요, 전직 대통령이 당연직 위원으로 구성됩니다.
정운현
그래요? 전직 대통령이 당연직 위원이라구요?
김현정
네. 프랑스는 국민이 왕의 목을 친 역사가 있는 나라 아닙니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 그리고 임기를 무사히 마친 대통령이 상징하는 민주적 정당성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전직 대통령의 국정 운영경험은 헌법위원회의 위원으로서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대통령과 하원의장, 상원의장이 위원회 위원을 각각 3명씩 임명합니다.
정운현
독일은 어쨌든 민의의 전당인 의회에서 두 번의 선출 절차를 거치니까 국민의 대표성이 있다고 할 수 있군요. 그리고 프랑스도 어쨌든 상, 하원에서 임명하는 비율이 더 많고요.
김현정
맞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 헌재처럼 불필요한 논란이 원천적으로 배제된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운현
이러한 인적 구성 말고도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라도 있나요?
김현정
네. 임기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헌재 소장을 비롯해 재판관들의 임기가 6년 밖에 안 됩니다. 현 재판관들은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임명된 사람들입니다. 대통령과 1,2년 차이로 임기가 비슷하게 갑니다. 헌재 재판관은 법적으로는 연임이 가능합니다만, 임명권자가 대통령이고 집권여당이니까, 정치적 사안 따라서는 현직 대통령의 눈치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정운현
그렇군요. 그럼 독일이나 선진국은 재판관 임기가 어떤가요?
김현정
독일은 재판관들 임기가 12년이고요 연임 또는 중임이 불가합니다. 프랑스는 임기가 9년입니다. 연임은 안 되고요.
정운현
우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재판관들의 임기가 길군요.
김현정
그렇습니다. 이같은 제도적 흠결이 우리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을 저해하고 있겠습니다. 따라서 헌재가 임명권자의 의지에 휘둘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운현
첫머리에서 ‘민주주의의 비토플레이어’로서의 헌재의 기능을 잠깐 언급했는데요, 잘 운영돼 오던 헌법재판소가 도중에 변질돼 민주주의에 큰 타격을 입힌 사례 같은 건 없나요?
김현정
헝가리에서 그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1989년 공산주의 정권 붕괴 후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고 약 20년간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이행한 사례로 동유럽의 헝가리를 꼽고 있습니다.
정운현
그렇죠. 1990년부터 20년간 헝가리의 민주주의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혀왔죠. 그런데 헝가리의 최근 상황은 많이 다른가요?
김현정
네, 그렇습니다. 헝가리가 최근 우리나라 정치상황과 매우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보수정권인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2010년에 재집권하면서 헌법을 개정하면서 헌법재판소 권한을 축소시켰습니다. 그리고 재판관 숫자를 기존 11인에서 15인으로 늘리면서 추가된 4인을 모두 정부측 인사로 구성했습니다. 추가된 4인의 재판관은 매번 정치적 사안을 판결하면서 정부 측에 유리한 판결에 가담했습니다. 결국 유럽의회는 2011년 7월 헝가리가 여러 면에서 유럽의 가치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정운현
동구권 민주혁명 이후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혀온 헝가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헝가리처럼 되지 않으려면 헌재의 자성 뿐 아니라 제도적인 보완이 시급하다고 생각되는데요. 국회나 전문가들의 견해는 어떤가요?
김현정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는지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의 견해를 들어보았습니다.
▶ VCR.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뷰
정운현
임지봉 교수의 얘기 중에 국회에서 재판관을 선출하는 방안도 좋은 것 같은데요,
국회에서는 왜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나요?
김현정
통진당의 해산 선고 이 전에도 헌재의 재판관 구성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었는데요. 이에 대해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인터뷰로 준비했는데요, 화면으로 함께 보시죠.
▶ VCR. 서기호 정의당 의원 인터뷰
정운현
거참 여러모로 쉽지 않군요. 우리는 민주주의를 채택하여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다수결의 원리가 소수자 보호를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소수 의견도 항상 고려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헌재가 독립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구조적으로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헌재만을 탓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도적 보완을 위한 논의와 함께 개선방안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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