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 시절, 인혁당 사건과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 사건 때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제임스 시노트(한국명 진필세) 신부가 12월 23일 새벽 서울성모병원에서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인혁당 사건이란 지난 1974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 조직으로 인민혁명당 재건위가 있다고 발표한 뒤 시작됐으며. 이후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도예종, 하재완,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김용원, 이수병, 여정남 등 8명의 사형을 확정하고, 불과 18시간 뒤에 이들의 사형을 집행했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이 사건이 일어난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대외적으로 박정희 유신정권의 '사법살인'이라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다. 이후 32년이 지난 2007년에야 무죄판결을 받았고, 그동안 사형수들의 가족들은 온갖 사회적 차별을 받으며 지냈다.
지난 10월 24일 열린 '자유언론실천선언'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시노트 신부(사진출처-언론노조)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으로 당시 인천교구에서 일하던 시노트 신부는 인혁당 사건이 고문 및 공판기록 변조 등으로 조작됐다고 고발했고 진상을 해외에 널리 알렸다. 그는 이로 인해 4월 30일 유신정권으로부터 ‘비자기간 만료’를 이유로 모국인 미국으로 추방당했다.
그는 1975년 3월 동아일보에서 쫓겨난 언론인들이 결성한 동아투위에서도, 언론인들의 양심선언 서약서를 받으며 함께 있다가 구사대에 의해 끌려나오기도 했다.
시노트 신부는 1929년생으로, 1961년 인천교구 송림동 본당 보좌로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시작했고 1968년에는 인천교구 총대리가 됐다. 1975년 미국으로 추방당한 뒤 일시 재입국했다가 2003년에 한국에 살기 위해 재입국했다. 그는 죽을 때 안구를 기증했다. 그의 장례미사는 12월 26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에 있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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