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라디안’과 ‘문디’ -
잘못도 저지른 거 없는 죄 없는 죄인들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인터넷 공간은 자유스럽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에 올라오는 트윗을 보면 배꼽을 쥘 농담도 있고 눈물이 찔끔 나오는 짠함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스러운 공간이라 해도 지켜야 할 금도는 있어야 한다. 지나치면 바로 독이 되고 독은 남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독이 되는 것이다.
‘지역’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가 있다. 몹쓸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나 있는지 인생이 애처롭고 가엾다.
‘절라디안’은 다 죽여야 한다.’ 그냥 웃어버릴 수 있는 농담인가. 등줄기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 말 밑바닥에 깔려 있는 증오와 저주. 착하기로 소문 난 우리 민족성 어디에 저런 악착스런 증오와 저주가 숨어 있단 말인가.
직접 체험한 것이기에 진실이다. 1958년에 입대했다. 훈련병 중에도 계급이 있다. 나는 덩치 좋고 구령 잘 부친다는 덕택에 훈련병중 제일 높은 직책인 중대향도로 임명됐다. 웃기는 얘기지만 제법 행사할 권한(?)이 많은 요직이다. 식사당번이나 불침번 사역병 노릇은 면제다.
중대에는 훈련병이 300명 정도 된다. 그 때는 우연히 서울 출신이 절반, 나머지가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이었다. 서울출신은 대학출신이 많고 경상도 전라도는 고졸이 많았다. 며칠 뒤 이상한 현상이 목격됐다. 전라도 출신이 많은 소대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식사당번, 야간불침번, 사역병은 호남출신이 많이 맡는다. 형평에 어긋난다.
호남출신 훈련병을 ‘하와이’라고 불렀다. ‘철조망’이라고도 불렀다. 탈영병이 많다는 근거 없는 이유다. 호남훈병들이 집단 저항을 했다. 패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중대향도인 내가 책임을 지고 수습에 나섰다. 호남훈병을 집단폭행한 영남 훈병들에게 책임이 있었다. 중대장에게 허락을 받고 응징을 했다. 코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혼을 냈다. 호남훈련병 차별대우가 싹 사라졌다.
군대 마치고 제대를 했다. 몇 년 지난 후 길에서 우연히 훈련소 동기를 만났다. 초등학교 교사를 한다고 했다. 소주잔을 기우리던 그는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중대향도! 그 때 많이 울었소. 중대향도가 호남훈련병 불쌍하게 생각할 때 ‘절라도 놈’들 참 많이 울었소” 가슴이 멍했다.
고등학교 대학을 함께 다닌 절친이 있다. 그는 하숙을 했다. 대학 때 그가 군에 입대했다. 입대 전날 조용히 내게 말했다. ‘기명아 고백할 게 있다. 실은 내 집이 대전이 아니라 절라도야’ 가슴이 꽉 먹혔다. 이 정도로 얘기해 두자.
대구 5관구에서 6개월여 쫄병 생활을 했다. 대구 출신들이 많았다. 씩씩하고 의리있고 잘 놀고, 지금 늙었어도 연락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지역감정이라는 호남적대 감정은 지금 같지는 않았지만 그 때도 있었다. 구질구질하게 긴 얘기 늘어 놨다. 꼭 밝혀 둘 것이 있다. 나는 서울에서만 수백 년을 산 토박이다. 밝히는 이유는 지역적 공정성 때문이다.
### ‘절라디안’은 다 죽여야
5.18 광주민주화 투쟁 희생자들의 시신을 ‘홍어택배’라고 한 행위는 이미 스스로 ‘인간포기 선언’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절라디안은 다 죽여야 한다’는 데 이르러서는 아예 입을 열 수가 없다. 조상 대대로 원수를 졌다해도 그런 끔찍한 말은 못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가. 이유가 무엇인가.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쿠데타가 성공한 후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획책했다. 영남이 출생지인 박정희는 호남출신의 김대중을 이기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총대를 멘 것이 나중에 국회의장을 한 대구출신의 이효상이었다. 지역감정의 선동은 수도 없이 많지만 대표적인 것 한 가지만 예로 들자.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효시다. 지역감정이 선거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안 정치인들이 앞장섰다. 물 불 가리지 않았다. 무슨 말이든지 서슴치 않았다. 상대방이 집권하면 모조리 죽는다고 헐뜯었다.
불은 붙이기가 힘들지 한 번 붙으면 잘 탄다. 지역감정이란 불은 더욱 그렇다. 박정희 독재정원이 붙인 지역감정이란 불은 지금까지 얼마나 잘 타고 있으며 국민들을 갈갈이 찢어 놨는가. 그러나 역지사지란 말을 생각해 봤는가. 거의 죽도록 매를 맞은 폭력배가 남을 못 때리겠다고 고백했다. 나라를 이 꼴로 분열시킨 죄를 생각해 보라.
‘절라디안 다 죽여야’란 끔찍한 말을 한 번 바꿔보자. ‘경상도 문디 다 죽여야’ 이런 소리를 경상도 사람들이 들었다면 가슴이 어떨 것인가. 서로들 다 죽이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래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 말을 전하는 언론은 어느 나라 국민의 언론이며 기자인가.
### 국민들이 바꿔내야
‘절라디안 다 죽여야’라는 천벌 받을 소리를 들은 국민들은 어떤가. 의래 하는 소리니 귓등으로 넘기는가. 떠들어 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점잖게 침묵하는가. 그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절대로 용서하면 안 될 일이다.
‘문디’들이 들고 일어나야 했다. ‘절라디안’도 들고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뜻밖에 조용하다. 자손만대 두고두고 갈라져서 미워하는 자신들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일어서야 한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은 반드시 국민의 이름으로 응징해야 한다. 지역갈등으로 해서 남북전쟁이 아니라 동서전쟁이 발생하면 어쩔 것인가. 생기는 것도 없이 분열만 조장하는 인간들을 국민이 추려내야 한다.
양비론은 옳지 않다. 설사 빈 말이라 할지라도 ‘절라디안을 다 죽여야’ 한다는 끔찍하고 몸서리처지는 말, 인간이라면 결코 입에 올릴 수 없는 말을 하는 자는 “탈 인간, 동물선언‘을 한 자다. 짐승이라고 고백하는 자다. 옳고 그름에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민족분열방지특별법’이라도 만들어 극형으로 처단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논산훈련소에서 이유없이 차별받던 훈련병 전우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 55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때 일을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가.
5.18 광주학살이 지난 후 망월동 묘지를 찾았을 때 시뻘건 진흙으로 덮여 있는 가묘을 보면서 함께 울음을 삼키던 시인이 떠오른다. 그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부산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우리는 동족이다. 어느 누구도 누구를 미워할 권리도 없고 잘못도 없다.
문득 요즘 ‘스토우’부인이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 집. (엉클톰스 캐빈)’생각이 난다. 미국 노예해방의 단초‘가 됐다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늙은 흑인이다. 왜 톰 아저씨가 생각났을까. 초딩 때 이 소설을 보면서 한 없이 눈물을 흘리던 기억 때문일까. 역시 내 편견인가.
‘절라디안’과 ‘문디’ 서로 다 죽이고 누구와 살 것인가. 끼리끼리만 살 것인가. ‘절라디안’인 민주당 지도자와 ‘문디’인 새누리 지도자들은 서로 거주지를 바꿔 살아보라. 그거라도 한 번 해 봐라.
끝으로 호소한다. 절라디안 차별하지 말라. 잘못한 게 뭐 있느냐.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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