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산업사회에서 직업병은 불가피한 것인지는 모릅니다. 나쁜 환경에서 반복적인 작업을 할 경우 그 양태나 정도는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대다수 노동자들이 직업병을 앓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가 이를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점입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자랑하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노동자가 속출해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삼성 측은 공장의 근무환경과 백혈병 발병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가 법원이 피해자들에 대해 산업재해 판결을 내리자 그제서야 꼬리를 내렸습니다. 무려 7년간의 투쟁 끝에 얻은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이 시각까지도 제대로 된 보상이나 재발 방지책을 내놓은 것이 없습니다. 이래놓고도 초일류 기업 운운할 수 있을 지요? 또 하나의 ‘갑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이슈인터뷰 시각에는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 정애정 간사를 모시고 그간의 투쟁 상황과 이후의 전망 등에 대해 얘기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 간사님, 어서 오십시오.
가족대책위와 삼성전자, ‘반올림’ 등 3자 회동이 오는 18일 있다고 들었는데 그간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제가 헤아려 보니까 삼성이 피해자들과 대화를 하겠다고 한 지 1년 9개월이 됐습니다. 여기서 제일 큰 문제는 대화의 주체문제였습니다. 삼성은 피해자들이 당사자니까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피해자들이 주체라 주장하고, 반올림은 반올림이 주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엔 피해자들도 반올림과 같이 투쟁해 왔기 때문에 주체문제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삼성 측은 그렇지 않았나봅니다. 그래서 그 의견차이가 가장 컸었고, (협상이) 조금 진전되다보니까 삼성과 반올림, 피해자 가족들이 요구하는 이견이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조정위원회 구성 문제를 놓고 이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조정위원회엔 어떤 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까?
조정위원장님으로는 전 대법관 출신인 김지현 변호사님, 조정위원 2분으로는 전강자 교수님하고 백도명 교수님이 위촉됐습니다.
이 분들은 삼성측하고도 협의가 되서 확정된 분들입니까?
그렇죠. 저희 측에서 추천을 하고 삼성도 동의했습니다.
가족대책위가 이분들을 조정위원으로 위촉한 데는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습니까?
네, 삼성이 워낙 무소불위한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삼성을 앞에 두고 공정하거나 객관적일 수 있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과연 있을까라는 편견 아닌 편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중심적일 수 있는 분들이 있겠다는 판단 하에 저희들이 추천했습니다.
정 간사께선 남편분이 백혈병으로 투병하시다 돌아가신 걸로 압니다. 남편분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시죠.
저희 애기아빠는 97년도에 삼성반도체의 기흥산업장에 입사를 했습니다. 여러 직업군 중에서도 설계·보수·관리를 하는 설계 엔지니어였습니다. 입사한지 7년 만에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진단 받은 지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투병기간이 짧았습니까?
네. 백혈병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병명 자체가 대개 다른 백혈병보다도 치료하기 힘든 병명이라고 하더라고요.
자녀는요?
1남 1녀 두고 있습니다.
오늘도 밤늦게 나오셨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크지 않았죠?
지금은 많이 커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이니 아직 어리죠. 애기아빠가 9년 전에 사망을 했구요. 제가 투쟁을 시작한 지는 7년 됐습니다.
그러니까 9년 전에 남편께서 돌아가실 때는 아이들이 한창 꼬마일 때 아닙니까?
네. (큰 아이는) 두 돌 지나고, (작은 아이는) 태어난 지 한 달일 땝니다.
현재 집안은 어떻게 꾸려가고 있으며, 어떻게 가족대책위에 참여하게 됐습니까?
먹고는 살아야 하고, (삼성과) 싸워야 하고, 게다가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친정 식구들한테 의존하다시피 맡겼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싸우는 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지나갔던 것 같아요. 올해는 정말 이 싸움을 언제까지 해야 할 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싸우는데 조금 집중을 해 보자 싶어 올 한 해는 직장도 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가족대책위도 피해자들이 주체가 돼서 싸워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9월에 저를 포함한 다른 피해자들이 가족대책위를 만들었죠.
삼성 백혈병 논란은 2007년 3월 기흥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당시 23세) 씨가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문제로 불거졌습니다. 황유미 씨처럼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숫자가 정확하진 않지만, 저희가 스스로 제보한 인원을 집계한 숫자만 해도 반도체 LCD 사업장에서만 164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투병자도 포함인거죠?
그렇습니다.
사망자만 따로 집계된 수는 없고요?
반도체 LCD에서만 70여명 집계했고, 현재 더 늘고 있습니다.
사망자 수가 많고 적고가 문제인건 아니겠죠. 한 명이 죽어도 큰 문제죠. 그런데 70명이라 한다면 큰 자연재해가 났을 때나 있을 만한 사망자 숫자입니다. 투병중인 사람까지 포함하면 160명이라고 하셨죠? 그 분들하고도 가족대책위에서 교류가 이어지고 있습니까?
거의 교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신고하는 창구는 마련되어 있습니까?
저희가 반올림으로 처음 싸움을 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반올림으로 제보하고 있습니다.
삼성반도체 공장 이외에 다른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환자가 발생한 경우는 없습니까?
그 다음으로 큰 대표적인 반도체 회사가 SK하이닉스입니다. 여기서도 저희 싸움이 중반으로 넘어갈 때부터 백혈병 혹은 직업병이 걸렸다는 제보가 들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집계된 것으로는 10여 명을 훨씬 넘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것인 만큼, 저희가 파악을 한 것이 아닙니다만 삼성만큼 사회의제화 되진 않은 것 같죠? 혹시 그쪽 분들하고 대화나 협력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아니요. 아직까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 쪽에는 가족대책위 등이 꾸려지지 않았죠?
네. SK하이닉스에선 회사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얼마 전에도 대책안을 내놨습니다. 그래서 하이닉스도 외부의 전문가들을 데려와서 현장진단을 한다는 것과 각종 복지제도를 펼치는 등, 사측에서 자체적인 대책을 내놓았다고 기사를 통해 봤습니다.
황유미 씨가 사망하자 그의 부친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유족급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 측은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고 급여지급도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한 마디로 얘기하면 인과관계가 불충분했고, 중요한 요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 산업안전공단 연구소에서 역학조사한 자료를 기반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판단을 내렸습니다만, 이 역학조사에서도 증거불충분, 즉 근거가 없는 자료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한 두명이 그랬다 하면 우연히 그랬을 수도 있고 막말로 하필 그 공장에 다니는 분이 재수 없게 걸렸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전체 투병중인 사람까지 170명, 사망자가 70명이라 하면 그건 일련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연구하는 공단이나 기관에서 근거 없는 자료로 판단하고,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당시만 해도 몇 년 전이라서, 집계가 지금처럼 이리 높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또 교섭을 한다고 해서 피해제보가 더 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때 상황은 그랬다 말씀이시죠?
네, 그렇다 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있었고 저도 같이 있었어요. 하지만 역학조사에 기본적으로 쓰여지는 통계가 있더라구요. 통계가 낮게 나오게끔 노동자들을 ‘어느 사업장에서 일했냐, 직업군이 어느 직업군이냐’ 이런 식으로 자꾸 분할을 시켜 확률을 확 낮추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반발도 많이 하고 했지만, 데이터에는 확률도 굉장히 저조하고 증거 자료도 없어서 ‘증거 불충분’, 즉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여지는 것입니다
남편 분께서는 산업재해로 인정 받으셨나요?
저희 애기아빠는 못 받았습니다.
이건 제가 미처 자세히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한 질문입니다만, 삼성 반도체에서 어떤 분야에 근무하는 사람에게만 백혈병이 나타납니까?
저희도 딱 단정 짓기가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백혈병 환자들만 있는줄 알았지만, 싸우다보니 백혈병뿐만 아니라 희귀질환 피해자들도 너무 많았고, 지금은 일반암 피해자들까지도 제보가 들어오는 상황입니다. 저희가 삼성 직업병 가족대책위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이게 백혈병에 국한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병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병에 걸렸다는 것이 중요한 만큼, 저희 가족대책위 이름도 그렇게 지은 거거든요.
이를 계기로 2007년 11월 백혈병 피해자 인권모임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 발족됐습니다. 현재 ‘반올림’은 어떤 분들이 주도해서 꾸려가고 있습니까?
주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은 노동자의 산업안전 등에 대해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시는 시민사회단체 분들입니다.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공장의 근무환경과 백혈병 발병에 인과관계가 있다며 삼성 측의 사과와 대책마련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반올림’은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펼쳤나요?
처음에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무래도 노동 안전이나 환경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을 의식하신 것 같아요. 반도체 사업장에 대해선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화학물질들인데, 여기서 무언가 인과관계가 있어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라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싸움인 것 같습니다
2010년 삼성은 미국의 산업환경 관련회사인 ‘인바이런’에 용역을 맡겼는데, 인바이런은 1년 뒤에 나온 보고서에서 ‘백혈병 발병과 직접적 상관관계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럼에도 2011년 법원이 황유미 씨 2명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한 것은 어찌된 일일까요?
저희는 삼성이 컨택한 용역회사니까 기대는 안했습니다. 또한 인바이런이라는 회사는 미국에서 친기업적인 입장으로 역학 보고서를 발표한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뢰하지 않았는데, 예상대로 1년 뒤에 발표한 역학조사를 보고서에서 ‘인과관계가 똑같이 불충분하다, 없었다, 깨끗하다’고 결과적인 발표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 1년 동안 역학조사 한 과정들에 대한 자료를 보여달라고 (인바이런 측에)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엔 영업비밀이 너무 많아 보여줄 수 없다고 해서 결과만 통보받는 걸로 끝났습니다.
인바이런이라는 회사가 피해자들의 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라던지 생존한 분들은, 사망한 분들은 가족들을 만나서 실제로 그런 면담조사나 현지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삼성이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해서 자기 기술력으로 현장 진단을 했구요. 1년 뒤에 보고할 때도 저희들이 보고하는 자리에 참여하려 했지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어디서 발표했습니까?
삼성 사업장 내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한국까지 왔습니까?
네
그럼에도 2011년 법원이 황유미 씨 2명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했습니다. 의외였습니다만, 이는 어떻게 보십니까?
저희도 좀 의외였습니다. 반도체 회사에서 암에 걸린 환자를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도 정말 놀랐습니다.
법원에선 당시 재판부가 가족들과 현장조사 같은 거라도 한 결과입니까? 일방적으로 가족들의 손을 들어주진 않았을텐데요.
인바이런이라는 회사 자체 역학조사 외에도 또다른 역학조사가 있습니다. 저희 조정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신 백도명 교수님이 하고 있는 산학협력단이라고, 역학조사를 담당하는 기관이 있는데 이 기관에서도 사업장 산지에 들어가서 조사를 한 결과 벤젠이 검출됐다는 것이 중요한 사안이 됐었습니다. 또 황유미 씨와 2인 1조로 근무한 적 있는 이수경 씨가 일했던 사업장이 수동설비로 작업을 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7년간 ‘반올림’은 삼성 백혈병 문제의 실상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반올림’과 가족대책위 간에 소통은 잘 되고 있습니까? 의견대립 같은 건 없었나요?
가족대책위에서 조정위원회를 제안한 이후에는, 지금은 사실상 소통이 잘 안됩니다.
그렇다면 완전히 담을 쌓거나 남처럼 지내는 것은 아니죠? 어떤 단체이든 이견다툼이 있을 수도 있죠,
저희는 서로 감정싸움에 연연해할 것이 아니라, 어쨌든 삼성을 상대로 해서 이 교섭을 훌륭히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반올림과 가족대책위가 함께 협력을 해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반올림과 가족대책위 간에 가장 이견이 갈리는 부분이 뭡니까?
삼성에게 요구안을 요구함에 있어서 방법의 차이가 좀 있습니다.
피해자들과 삼성 간에 대화의 물꼬가 트인 것은 언제, 어떤 계기였습니까?
그게 2012년이었고, 삼성이 “피해자들하고 대화를 하고 싶다“며 먼저 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좋다고 응했고 시작하게 됐습니다.
첫만남은 어땠나요?
그냥 딱딱했습니다.
어디서 만났어요?
사외 장소를 따로 빌렸습니다.
가족대책위는 언제 구성됐으며,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가족대책위가 6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피해자가 8명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6명이 지난 9월, 따로 가족대책위를 꾸렸습니다.
왜 이리 늦었어요?
가족들이 좀 용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반올림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싸워왔고 사실상 많이 의지해왔기 때문에, 이 단체를 두고 우리가 대책위를 꾸린다는 것이 고민됐습니다. 그러다가 교섭을 하면서 (반올림과) 차이점을 확연하게 느껴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주체 문제로 옥신각신할 때도 피해자들은 주체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계속해서 주체가 반올림이든 피해자든 저희는 상관없다, 삼성은 피해자들이 주체이니까 반올림은 대리인 위임장을 받아서 참여를 해달라고 요구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가족들은 주체 문제가 중요치 않다며, 문제될 게 없겠다 싶어서, 교섭을 통해 우리의 요구안을 하나라도 더 삼성에게 관철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나, 이런 의견 차이부터 (반올림과의 갈등이)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
왜 삼성은 굳이 주체를 가족으로 하려고 했을까요? 반올림이 주체면 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죠?
그 속내는 제가 모르겠으나…
8명 중에서 6명 가족대책위 참여했다고 하셨는데 왜 2명은 빠졌어요?
(가족대책위를 꾸린) 6명이 그동안 반올림으로 싸워왔는데, 가족대책위로 빠져서 그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2명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간 삼성과의 협상에서 주로 어떤 내용이 논의됐으며, 삼성의 태도는 어땠나?
지금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논의된 것이 없습니다. 주체 문제로 계속해서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다음에는 사과보상재발방지 대책인데 어느 것 먼저 논의를 하느냐부터 의견차이가 생겼고, 한두 달을 그냥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삼성은 사과에 대해선 삼성은 권우연 대표이사가 지난 5월에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을 전제로 해서, 보상 문제를 우선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피해자들은 사과 먼저 해야 한다라는 피해자들도 있고 보상 먼저 해야 한다는 피해자도 있었습니다. 또한 반올림은 사과 다음에는 재발방지 대책부터 얘기해야 하고, 보상은 맨 마지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순서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본론은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금년 2월 고 황유미 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돼 사회적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후 삼성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저는 (또 하나의 약속) 관객숫자가 잘 생각이 안 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대극장에서 순조롭게 오르질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입소문으로 정말 많은 분들이 봐줬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삼성이 대국민 사과까지 하게 되고 이런 계기들이 점점 확대되면서,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하는데 영화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 압박을 통해 삼성이 사과까지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반올림’이 내건 3가지 의제는 진척이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조정위원을 저희 가족대책위에서 제안했던 것이고요. 협상에 진전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던 만큼, 앞으로 협상이 진전될 수는 있을 거 같습니다.
끝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한 마디 해주십시오.
저도 긴장이 되서 질문해 주시는 것에 충실히 답변하느라 바빴습니다. 마지막으로 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번 삼성과 피해자들 간의 교섭은 삼성이 지금까지 노동자들을 수없이 병들게 하고 죽게 한 이 원죄가 다 용서되는 교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병에 걸린, 가족을 잃은 가족들이 조금 위로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물꼬가 조금 트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이 교섭에서 어떤 대책을 내놓던 간에 지금까지 노동자들을 죽이거나 병들게 한 원죄는 평생 가지고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