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팩트9뉴스】 기획취재-극한투쟁 고공농성
진행 : 정운현 보도국장 겸 앵커
정운현
어느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입사 8년차의 생산직 노동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그게 2009년 4월입니다. 전체 직원의 1/3, 생산직 중 45%가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계의 흑역사입니다. 바로 쌍용자동차 사건이죠. 햇수로 6년차를 맞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70m 높이의 굴뚝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 정책은 고용 유연성을 강화하는 쪽으로만 흘러갑니다. 문제는 분명하고 해결책도 나오는데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쌍용차 문제를 가지고 사회 전반의 노동 문제에 대해 짚어보겠습니다.
어서오세요, 임기자. 오늘은 쌍용차 문제를 다뤘지요? 요즘 노동 문제를 자주 다루는 거 같네요.
임경호
네, 아무래도 시급한 노동현안이 많아 꾸준히 노동 문제를 다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운현
다뤄야 할 문제가 많다는 건 그만큼 노동계 전반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거겠죠.
임경호
맞습니다. 지난 토요일 새벽, 두 명의 쌍용차 해직노동자가 쌍용차 평택공장 굴뚝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6년째 투쟁을 이어가는 그들의 고공농성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정운현
그렇죠, 2009년 사측이 평택·창원공장 노동자 3000여 명을 정리해고하면서 ‘옥쇄파업’이 비롯됐었죠. 그 다음이 2012~2013년 평택 송전탑 고공농성이었고요.
임경호
네, 지난달 법원이 2009년 당시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사측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면서 해고노동자들의 얼굴에 눈물이 맺힌 적이 있는데요, 그 후 쌍용차 노동자들은 평택 공장 앞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투쟁 의지를 밝혔습니다.
당시 해고노동자들은 사측이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 복직도 내려놓고 극단적인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이번 굴뚝 농성이 그 말에 대한 행동 중 한 가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운현
그것 참 큰일이네요. 평택은 많이 추울 텐데요. 오늘은 기온이 영상을 웃돌지만 내일과 모레는 영하권으로 떨어지더라고요.
임경호
네, 그렇습니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두 해직노동자들은 70m 높이의 굴뚝에 올라 있어 체감기온은 훨씬 낮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요, 굴뚝농성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오늘 <팩트TV>에 굴뚝 위 영상을 보내 왔습니다. 이와 함께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의 인터뷰 함께 보시죠.
▶영상-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 인터뷰
정운현
바람 소리가 상당하네요, 아무래도 높이가 70m인만큼 안전에도 유의해야겠군요. 근데 임기자, 이들이 갑자기 이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임경호
네,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는 그 맥락을 함께 짚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6년에 걸친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투쟁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경호
사건의 발단은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 갑니다. 2005년 1월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 인수대금을 완납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서울중앙지법은 회생절차개시를 결정합니다. 그해 4월, 쌍용차는 생산직 노동자의 45%에 달하는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노조에 통보하게 됩니다.
정운현
생산직 노동자의 절반가량을 해고한 것이네요.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임경호
불행히도 사건은 일어나게 됩니다. 이 믿기지 않는 결과에 쌍용차 노동자의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비극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운현
그렇죠, 지난 토요일 쌍용차의 26번째 사망자가 창원에서 발생했다는 비보를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2009년에 시작된 사망행렬이 마땅한 대책 없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네요.
임경호
네, 이쯤되면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입니다. 다시 표로 돌아와 살펴보면, 해고 통보를 받은 그해 5월 쌍용차 노조는 옥쇄파업을 시작합니다. 이에 정부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진압하게 되죠.
정운현
‘살인진압’이라 불리며 희대의 강경진압으로도 유명한 그 사건을 말하는 거군요. 당시 경찰 총책임자였던 김석기씨는 현재 한국공항공사의 사장으로 안녕한지 모르겠네요.
임경호
네, 사회는 이렇게 불합리하게만 돌아갑니다. 2010년 11월, 정리해고 노동자들은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같은 달, 쌍용차는 인도 마힌드라사에 매각당합니다. 그리고 또 같은 달 열한 번째 사망자가 발생합니다. 비운의 11월입니다.
정운현
제가 알기로는 2012년 12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쌍용차 국정조사를 공약으로 내건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것은 어떻게 된 거죠?
임경호
대선 이후 깜깜 무소식입니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의 약속도 이행되지 않고 있는데 이들이 달리 기댈 곳은 없었겠죠. 2013년 노사는 무급휴직자 전원 복직에 합의합니다. 이에 486명이 공장으로 복귀하고 이듬해 서울고법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아내기에 이릅니다.
정운현
하지만 노조가 내세웠던 ‘회계조작 혐의’ 등이 무혐의 처분 나면서 올해 11월 대법에서 ‘해고 적법’ 판결이 내려지네요. 그게 결정적으로 이들을 굴뚝 위로 내 몬 사건이고요.
임경호
네, 그렇습니다. 이들은 오늘로써 3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갑니다.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옆에 있는 전광판에서 33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씨앤앰 노조원 강성덕씨와 임정균씨가 있고요, 경북 구미공장에서 203일째 굴뚝농성을 진행 중인 차광호씨도 있습니다.
정운현
지난해에는 혜화동에서 202일간의 종탑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재능교육 해고자들이 있었죠. 그에 앞서 309일간의 크레인농성에 돌입했던 부산 영도의 김진숙씨도 있었고요.
임경호
네, 고공농성의 역사는 계속해서 되풀이됩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궁지에 내몰린 노동자의 필사적 선택이 왜 반복되는지 노동계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영상-민주노총 박성식 대변인 전화 인터뷰
정운현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정치권과 사법계가 힘을 못 쓰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배제되고 그러다 보니 연대하고 극한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군요.
임경호
네, 그렇습니다. 이런 불리한 노동지형을 만든 데는 세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요, 정치권의 고용유연화 정책 일변도와 언론계의 노동문제 보도 비중 약화, 법조계의 보수적 판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정운현
그렇죠, 정부의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고용 유연성 확대에 주력하고 있더군요.
임경호
네, 화면에 보이는 3대 핵심 정책을 중심으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와 같은 하향평준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 언론계의 문제도 짚어볼만 합니다.
임경호
지난달 13일 쌍용차 대법원 판결이 났을 때 방송 3사의 보도를 비교했는데요, 그나마 SBS는 비중 있게 다룬 반면 MBC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선에서 그쳤습니다. 또 KBS는 해당 사건을 메인으로 다루지도 않아 6번째 꼭지로 밀린 반면 메인 뉴스로 박 대통령의 “한중일 정상회담 희망” 뉴스를 다뤘습니다.
정운현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에서 뉴스가치를 이런 식으로 매기다니 무척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네요.
임경호
네, 단편적인 모습에 불과하지만 그날의 주요 이슈를 메인 뉴스에서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를 살펴보면 해당 언론사의 가치 비중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법조계의 판결입니다.
임경호
법조계는 지난 12년 1심 판결에서 정리해고가 유효하다고 판결했는데요, 이어 올초 정리해고 무효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 전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뒤엎고 사측의 손을 들어줘 결국 6년간 싸워왔던 노동자들을 울리고야 말았습니다. 이러한 불리한 노동환경에 대해 비정규직센터 이남신 소장이 목소리를 냈는데요, 인터뷰 한 번 듣고 가시죠.
▶영상-비정규직센터 이남신 소장 인터뷰
정운현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미제처럼 아직도 노동자를 궁지로 내몬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네요.
임경호
네, 늘 문제점은 쉽게 조명되는 반면 해결을 향한 의지를 갖추기까지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운현
그러면 이러한 문제를 잘 풀었던 선례는 어떤 게 있을까요?
임경호
해외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요,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을 맺은 네덜란드는 임금 억제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으로 고용 창출에 노사정이 합의한 바 있습니다.독일의 하르츠 개혁이나 아일랜드의 국가 재건 프로그램도 이러한 대타협의 일환인데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약속은 지속적인 추가 협약과 20%에 달하는 고용률 상승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정운현
역시 문제는 ‘의지’에 있었군요. 정부의 정책이 계속해서 노동자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아 제 마음도 좋지 않습니다. 비정규직 정책의 핵심도 고용 유연성을 위한 탄력 근무였는데요, 사실상 권리만 축소된 기형적 시스템을 양산한 것이죠. 그것을 정부는 내년에도 이어가겠다고 합니다.
임경호
사람들이 어째서 목숨을 거는지 거리로 한 번만 나와 봐도 알 텐데요,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전에 책상에서 이미 계산에 나섰으니 현실을 반영한 정책은 기대하기 힘든지도 모릅니다.
정운현
날이 갈수록 추워지는데 따뜻한 소식을 전하지 못해 시청자 여러분께도, 또 높은 곳에서 생존의 울림을 내는 노동자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더해 갑니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임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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