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현
때 아닌 ‘종북’ 논란이 한창입니다. 방북 경험이 있는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와 재미교포 신은미 씨가 공동으로 마련한 ‘평화통일 토크 콘서트’를 보수매체에서 ‘종북 콘서트’로 몰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급기야 어제 전북 익산에서 열린 콘서트장에 한 고교생이 폭발물 테러를 가해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경찰은 오늘 황 대표의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습니다. 또 미국 시민권자인 신은미 씨에 대해서는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습니다. 연초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남북통일은 일방의 무력침략이 아니라면 남북 어느 쪽이든 혼자서 할 수는 없습니다. 쌍방이 다년간 통일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가능하며 그런 노력은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가려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 러시아산 석탄이 북한 나진항을 거쳐 포항에 도착했는데요, 조만간 통일부에서는 5.24조치를 해제할 것이라는 소문도 들립니다. 남북간에 해빙무드가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오늘 이슈인터뷰에서는 ‘종북 콘서트’ 논란의 한 가운데 선 황선 대표를 초대해 그간의 논란 등에 대해 얘기 나눠볼까 합니다.
어제 전북 익산에서 신은미 씨와 함께 토크 콘서트를 가지셨는데요, 참석자 수와 분위기를 간단히 설명해 주시죠.
저희는 많아야 100여 분 정도 오시지 않을까 생각해서 좌석도 그 정도만 배치했는데, 200분 정도 오셔서 많은 분이 서 계셨습니다. 공간이 부족해서 유리문을 다 열어놓고 밖에 서 계시기도 했거든요. 분위기는 너무 화기애애했고, 웃음소리도 나고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폭발물 테러가 있었습니다.
어제 콘서트 현장에서 술 취한 고교생이 고체 인화물질인 ‘로켓 캔디’로 직접 제조한 폭발물을 터뜨려 말썽이 됐죠. 목격자로서 당시 상황은 어떠했나요?
콘서트 중반은 아니었고, 약간 못 미쳤을 때였습니다. 원래 가수 노래공연이 중간에 한 번 있고, 끝날 때 한번 있는데 중간 공연을 시작하기 전이었거든요. 폭발물 테러 직전 ‘종편들이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며 20일간 계속해서 종북몰이를 하고 있는데 지상낙원이라 한 적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은미 선생께서 ‘나는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에서도 한 번도 그곳을 지상낙원이라 느껴 본 적이 없다’면서 ‘미국을 바라볼 때도 할렘가에서 바라본 미국과 비버리힐스에서 바라본 미국이 다른 것처럼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그 학생이 손을 들고 ‘지상낙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니요. 그런 적 없는데요’ 그랬더니 갑자기 폭발물을 던진 거죠. (지상낙원이라는) 그 부분만 들었나 봐요.
“지상낙원의 ‘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라고 함으로서, ‘지상낙원’이라는 부분만 잘라서 편집하는 이런 소통구조가 너무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저희는 다행히 사람들이 몸으로 막아줘서 다치지 않았지만 부상을 입으신 분들이 나와서...
사진을 보니까 몇 분은 귀 등을 다쳤고요, 화상을 입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까 영상을 보면 불길이 제법 규모가 있네요?
저희도 많이 놀랐습니다. 폭발이 상당히 심해서 불길까지 솟았어요. 불길과 불똥 때문에 원광대 교수님을 포함해 많은 분의 옷이 타 화상을 입으셨어요. 귀와 볼에 화상을 입은 청년은 서울에 있는 화상 전문 병원에 입원한 상태입니다. 미처 연기 속에서 빠져나오시지 못한 지팡이 짚은 어른 신부님 같은 경우 호흡 곤란 때문에 응급실을 다녀오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만하길 다행이죠, 더 많은 사람이 다쳤으면 큰일 날 뻔 했군요?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방금 말씀드린 대로 너무 많은 분이 오셔서 (유리)문을 다 열어놨던 거죠. 만약 문을 닫은 상태에서 이 일이 벌어졌다면 좁은 문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면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 다행히 많은 분이 오셔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그 고교생은 ‘일베’ 준회원이며 배후에 성인남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정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저도 그 자리에 계셨던 목격자분들에게 들은 애기인데, 그 학생이 처음부터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있지 않았거든요.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줄이었는데, 사람이 빽빽이 있고 서 있던 사람도 많았어요...어떤 사람이 와서 (두 번째 줄) 자리에 앉아 있다가 그 친구를 데려와서 앉혔다는 상황을 목격하신 분이 계세요. 그래서 저희도 영상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성당 주변에 소방차가 미리 와 있거든요. 이 학생이 전날 일베와 유사한 사이트에서 폭탄제조법 등을 올려놨다는 정보가 있어 배치한 거였으면 주최측에 미리 알려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저희가 신변보호 요청을 안 했던 게 아니거든요. 또 신기한 것은 폭발사고가 나자마자 경찰 감식반이 바로 도착했어요. 한국이 세월호 참사에서도 보듯 그렇게 대응이 빠른 편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감식반이 굉장히 빨리 투입됐어요.
내일로 예정된 ‘부산 콘서트’를 취소한 것은 신변 위협 때문인가?
네. 오늘 예정이 돼 있었는데요, 부산에서 가장 많은 분이 호응을 해주셨어요. 티켓 판매량도 그렇고 가장 많은 분이 오시는 콘서트였는데, 신변보호 요청도 되지 않고 많은 의구심이 있는 상황에서 출연진뿐만 아니라 청중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오늘(11일) 정오에 취소한다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아까 신변보호 말씀하셨는데 그럼 경찰이 그 자리에 와 있었겠네요?
(콘서트를) 시작하기 전에 보수단체들 기자회견이 있어서 경찰이 와 있었습니다. 사복을 입은 서울 시경 보안수사대도 익산에 와 있었어요. 익산 경찰서에서도 일단 병력배치를 했고요.
이번 ‘토크 콘서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그간 어디서 몇 차례나 개최했나요?
이번 콘서트를 처음으로 고민하고 신은미 선생님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시점은 올여름이었습니다. 당시 남북관계를 놓고 5·24 조치가 해제될 것이며, 가을에 있을 아시안게임에서 남북 체육문화교류가 있을 거라고 다들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대중적으로 새롭게 여는 분위기를 뒷받침할까 생각하다가 신 선생님께서 들어오실 수 있으면 좋겠다. 가장 좋은 것은 아시안게임 즈음이나 직후로. 그런데 신 선생님께서 11월 말에 집안 결혼식도 해서 집안 행사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 때 들어오신다고 해서 (콘서트를) 11월 말로 잡았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신 선생님께서 방북하실 계획이 있으셨어요. 그래서 서울콘서트와 광주콘서트를 하신 뒤 중간에 평양을 다녀오셔서 따끈따끈한 소식을 가지고 대구, 익산, 부산을 다니는 이런 일정이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잡았는데 예정했던 평양도 못 가셨고, 서울·광주·대구·익산만 진행했죠. 이 외에도 단독 강연을 몇 군데 다시는 곳도 있습니다.
‘대구 콘서트’를 비롯해 그간 보수단체의 반대집회가 더러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폭발물 테러 외에도 신변 위협이 더러 있었나요?
서울과 광주에서는 없었어요. 일부 종편이 콘서트 자체를 문제 삼기 전까지는 평화롭게 진행이 됐어요. 이렇게 많은 관심 속에서 진행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종편들이 몰아가면서 오히려 청중도 더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광주보다 서울에서 더 많이 오실 것으로 생각하고 서울은 가장 큰 공연장을 빌려놨었거든요. 그런데 서울보다 광주가 더 많아지고, 대구도 모이기 힘든 인원이었는데 300명이 오셨어요. 익산에서는 200명이 모이셨고, 부산에서는 더 많이 모일 예정이었죠. 그런데 대구에서 반대집회가 있었고, 대구시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화염방사 같은 일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보수진영에서는 두 분이 진행한 콘서트를 두고 ‘종북 콘서트’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혹시 일방적인 북한 찬양 같은 것을 한 적이 있나요?
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통일 토크 콘서트가 처음도 아니었고요. 올 봄에도 같은 장소에서 제가 사회를 보며 신 선생님하고 비슷한 내용의 강의를 했었어요, 지난해의 경우에도 하버드 의대 오인동 박사님을 모시고 서울 지역에서 비슷한 규모로 토크콘서트를 진행했어요. 일본의 유미리 작가님을 모셔서 조계사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대중적이고 합법적으로 진행하려고 더 많은 공을 들였고, 관객분들도 인터파크 등을 통해 1만 5천 원 을 들여 입장권을 구매하신 분들이에요. 사실이 아닌 것을 찬양할 이유도 없지만, 그런 장소에서 대놓고 찬양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죠. 사실을 이야기 하는데 찬양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그런 이야기 자체가 더 찬양 같거든요.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고 했는데, 그게 지상낙원처럼 느껴지나?’ 이런 거에요. 그러면 맥주가 맛있는 독일은 (지구 상에서) 가장 지상낙원인가요?
앞서서 유사한 행사를 하셨다고 했는데, 그 때는 조용했다가 왜 이번엔 이렇게 종북콘서트 운운하면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을까요?
저도 그 점이 궁금해요. 한 가지 의심되는 부분은 제가 통합진보당의 평당원임에도 뭔가 일이 있을 때마다 저의 유별난 경력 때문에 종북몰이 소재로 도마 위에 등장하고,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시기가 임박해 오면서 종북몰이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최근에 정치권, 특히 청와대 발 뉴스들이 심상치 않으면서 ‘대국민삐라’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분단 이후 빨갱이 놀이가 통해왔고, 이번도 그런 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콘서트에서 두 분이 행한 발언은 주로 어떤 내용이었나요?
문제의 발언이라고 하는 것 중에 사실에 가까운 것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 ‘대동강 물이 맑더라’ 이런 부분이고, 직접 보거나 겪지 않은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은 이야기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종편이 문제 삼은 부분을 다 찾아봤더니 이미 동아일보에서 대동강 맥주와 세계 맥주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 적도 있고, 거기서 대동강맥주가 전문가 최고로 꼽혔어요. 그리고 대중가수들도 공식적으로 북측과 저작권 합의를 해서 음반이 나왔음에도 탈북자들이 종편에 나와서 했던 노래 같은 부분을 문제 삼았어요. 정치 문제는 거의 (말)하지 많았습니다. 북녘의 의식주,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2011년부터 최근까지 인터넷방송을 통해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기대된다.”고 말하는 등 북한을 미화하는 발언을 했다는 데, 이같은 지적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아니요. 이번 토크콘서트에서도 이 발언을 가지고 문제 삼았는데요, (콘서트 때도) 어떤 거였냐 하면 ‘북녘에서 만난 주민들이 새로운 젊은 지도자에 대해 기대한다고 하더라.’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사실이 아닌 것도 아닌 게 이것은 신 선생님이 방북해서 보고 들은 내용이에요.
이 발언을 특별히 황 대표께서 따로 하신 적은 없다는 것이죠?
따로 한 적은 없습니다.
두 분이 <조선일보>와 <TV조선>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매체가 어떻게 두 분의 명예를 훼손했나요?
일단은 이 통일콘서트 자체를 종북콘서트로 명명한 것 자체가 낙인입니다. 나오지 않은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들, 그리고 하다못해 과거의 내용을 문제 삼기 위해 북에서 내려올 때까지 제 딸은 태명으로 불렸는데도 북한 최고지도자가 지어줬다는 등...저희 시아버지가 지어주신 건데요. 동명왕릉에서부터 진통이 시작됐다고 해서 ‘동명’이라고 지을지, ‘겨레’라고 지을지 굉장히 고민하셨거든요. 나중에 ‘겨레’라고 이름 지으신 것을 듣고 북쪽에서 6·15공동회의를 통해 합법적으로 주고받은 팩스가 있습니다. 겨레라는 이름 참 잘 지었다는 내용의 전문을 보내왔는데 제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북에서 지은 것 아닙니다.
오늘 경찰이 6.15 남측위원회 사무실 두 곳과 황 대표의 우이동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사전에 알고 계셨나요?
몰랐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권력층은 압수수색 받을 때에는 며칠 전부터 언질을 주기도 하고, 준비도 하게 하던데. 워낙 국가보안법으로 압수수색 할 때 언질을 주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집에 들어올 때에는 본인이 있을 때 영장 확인 정도는 하고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저는 오늘(11일) 오전 익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12시에 부산에서 토크콘서트를 취소한다는 기자회견이 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이미 제 행보를 알고 있었어요. 어제 보안수사대도 익산에 내려와 저의 행보를 보고 있었고요.
(결국 경찰은)오늘 부산 일정이 있고, 집에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영장을 들고 주인 없는 집에 가서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아침부터 압수수색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먼저 쏟아졌어요. 그 때 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등교시키기 위해 며칠 집에 와 계셨는데 너무 놀라 집안에서 바들바들 떨고 계셨데요. 제가 전화로 확인한 바로는 아직 압수수색이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언론에서는 압수수색 중이라는 보도가 나가고 있었어요. 또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한다고 했는데 6·15남측 사무실은 손님으로 잠깐 들러본 경험밖엔 없는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아예 발길도 한 번 해본적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제 압수수색 하지 않는다고 (보도가) 나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없는대도 영장이나 변호사도 없이 저희 집을 압수수색 했더라고요.
문을 따고 들어갔다는 얘기입니까?
문을 따고 들어갔는지. 문을 너무 심하게 두드려서 저희 어머니께서 열어주신 건지 최종 확인을 해봐야 하겠지만, 어머니는 영장을 확인 한 바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전화로 항의하고 변호사가 갈 때까지 압수수색을 중단하라고 했는데, 제 16년, 23년 전 일기장을 가져갔다고 변호사가 찍어서 보냈더라고요. 23년 전이면 제가 고등학교 때 일기장이고요, 16년 전 일기장은 제가 방북해서 썼던 것 같아요. 더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일기장을 가져간 것으로 볼 때 제가 23년 전부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었나 봅니다.
오늘 압수수색은 활빈단 등 보수단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황 대표와 신은미 씨를 고발한 데 따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나요?
지난해 4월 저희 집을 압수수색 했습니다. 그때도 문서 한 장 가져간 것 없고요. 11월 19일 토크 콘서트를 하고 언론에서 문제시한 이후에도 보안 수사대에 전화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제 처음 보안수사대에서 저에게 전화했어요. 용건이 신 선생님을 소환해야 하는데 언제 출국하는지, 연락을 어떻게 하는지 묻는 거였고, 이것과 관련해서 공식적으로 소환통보를 받은 적도 없으며, 신 선생님도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신은미 선생님하고 연락을 취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오늘 익산에서 헤어지고 난 후에는 없습니다.
저도 몇 가지 물어보려고 연락을 취했습니다마는 닿지 않네요.
선생님이 로밍을 안 해오셔서요. 한국에 있는 지인 핸드폰을 활용합니다. 그리고 SNS로 해 보기도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낮에 부산에서 기자회견을 여셨는데요, 기자들에게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셨나요?
일단 주된 내용은 어제 익산에서 있었던 학생의 (폭탄)테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고 굉장히 마음이 아파서 관련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은 익산에서 출발하면서 익산경찰서를 들러 그 아이를 면회했습니다. 학생에게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 왜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러한 질문을 하고 이것(폭탄)을 던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해 물었어요. 어쨌든 아이가 술을 계속 마시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아마 전반적인 내용보다 사이트 활동 속에서 증오가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아 오해를 풀고 싶어서 갔어요. 제가 선처를 바랄 권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의 증오)는 우리 사회의 종북논란이나 분단병이 만들어 낸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독으로 잘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이 짐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지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분단병의 치유를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말씀을 신 선생님과 드리고 싶어서 같이 공감 속에서 만들었는데, 어제 충격과 출국 문제로 제가 혼자 했습니다.
탈북여성들과 보수단체 회원들이 끝장토론을 제안했는데, 거부하셨습니다. 이유가 있다면?
제가 공식적으로 거부한다는 말씀을 언론에 드린 적이 없는데, 사실상 거부가 됐어요. 제가 활동하는 기준은 이러한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는 것이 민족의 단결과 화해, 궁극적으로 통일에 앞서 동질감을 확인하는데 이바지할 것인지 아닌지 이거든요. 탈북자들도 시각이 다양해요. 그리고 저도 만나는 탈북자가 있고, 서울이나 대구 콘서트에서 탈북자들이 오셨습니다. 대신 사과하겠다는 말씀을 하신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내가 토론해 주겠다’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어요. 저는 탈북자들 안에서의 고민과 종편에 나와 그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는 고민도 이해할 것 같거든요. 북에서도 탈남자들이 있어요. 탈북·탈남자 모두 분단이 만든 최대의 인권 사각지대에서 자기 뜻대로 살 수 없는 분들이라 생각해요. 저한테 오신 분도, 종편에 출연하신 분도 그렇고. 이러한 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들을 상대로 제가 각을 세워 논쟁하는 게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를 앞두고 지역 보수단체들이 세력 과시 측면에서 대구, 익산에서의 이런 난동이 벌였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전에 자유총연맹 선거가 있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자유총연맹이 국가에서 예산을 들여 지원하는 단체고, 그러다 보니 선거 자체가 치열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지만, 한국의 보수단체들이 건강하고 앞으로 미래 세대와 함께 하려면, 이런 것 보다는 진정한 보수로서의 방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만간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청구’ 건과 관련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혹시 이번 사태가 여기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걸로 보십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여론몰이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판결 전 여론의 압박도 있겠지만, 판결 이후에 대한 계산도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정당해산은 정상적인 민주국가라면 생각하지 못할 것이지 않습니까? 국민의 표로 심판받으면 되는데. 그래서 헌재 재판관들의 성향과 상관없이 굉장한 심적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만약, 기각이 된다 하더라도 이후 계속 종북몰이가 필요한 상황을 대비해 지금의 몰이가 필요하지 않았나(생각합니다). 재판을 압박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그 이후 분위기를 몰아가기 위해서라도 마녀사냥이 필요했던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끝으로,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파동 때 당사자였습니다. 이후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이 분당되고 하면서 통진당의 활동이 눈에 띠게 위축됐는데요. 통진당의 존립과 미래, 혁신방안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에서 표현하신 것처럼 분당이 진보정치 전반의 위축을 가져왔지 않습니까? 많은 분께서 진보진영이 통합에 지지와 기대를 해주셨던 것이 사실입니다. 분당 자체가 위축은 낳는다는 말은 즉 힘을 합쳐야 전진할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서로 교훈을 잘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부 명망가들 안에서의 자기 다툼 식으로 진보가 단결하면 생명이 길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고 많은 분이 진단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예전의 통합을 넘어서 진짜 물 밑에서 대중적 흐름으로 단결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운현
네, 지금까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