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 정운현 칼럼] 지금 나라가 어지럽다. 몹시도 어지럽다. 그 흔한 좌우 이념대립 때문도 아니요, 해묵은 노사 분규 때문도 아니다. 북한이 무력 침공을 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대통령 말대로라면 청와대발 ‘찌라시’ 하나가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그야말로 위기다. 국가의 위기요, 국민의 위기다. 역대 정권에서도 권력자 주변 인사들의 암투는 더러 있었지만 이처럼 추잡한 짓거리는 여태 보지 못했다.
‘십상시’? 중국사 공부 때나 들어봤던 말이다. ‘문고리 권력’?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는 아직도 문고리가 있는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웬 ‘십상시’, 웬 ‘문고리 권력’인가? 유령도 아닌 실체로서 말이다. 유신시대로의 회귀가 아니라 이건 후한시대로의 회귀가 아닌가. 검찰 조사가 끝나면 그 실체가 자명하게 드러나겠지만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집권 2년 차에 빚어진 청와대발 ‘내란’은 참으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대통령 측근들끼리 서로 멱살잡이에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상전인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며 남의 나라 얘기하듯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찌라시 같은 얘기들로 나라가 흔들리는 건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찌라시가 만들어진 곳도, 유출된 곳도 청와대임을 모르고서 하는 얘긴가?
사태가 터진 것은 터졌다고 치자. 더 큰 문제는 이를 수습할 사람이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은 아닌 것 같다. 사태 발생 이후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도 못할뿐더러 수습기는커녕 오히려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또 있다. 그간 ‘사고’ 발생지인 청와대의 수장인 대통령은 어쩌면 수습의 대상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사태는 그런 식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다음은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 비서실장은 어찌 보면 이번 사안을 키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애초 문제가 터졌을 때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어쩌면 자신과도 관련된 것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실책이다. 게다가 사태 발생 후 그는 그림자처럼 떠돌며 몸을 사리고 있다. 오죽하면 중앙일보가 8일자 첫 사설로 ‘청와대 비서실장이 안 보인다’며 닦달하고 나섰겠는가.
공조직에서 다음 순번은 내각의 선임자인 국무총리다. 혹자로부터 ‘재활총리’로 불리는 정홍원 총리가 이번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까? 기대난망이다. 그는 총리 자리 하나 추스르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사퇴가 반려된 후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 총리는 개각 때 교체 1순위로 꼽히고 있다. 말하자면 물러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런 기대를 걸 수 있겠는가?
마지막은 청와대와 한 몸인 여당. 어제 청와대에서 오찬모임이 있었다. 여당 수뇌부들이 대거 참석한 이 자리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모두발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한 몸”이라고 말했다. 동석했던 이완구 원내대표는 ‘대통령 각하’를 세 차례나 연발했다고 한다. 왠지 모르지만,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꼴이다. 사태 수습은커녕 오히려 화를 키울 자들이다.
중국의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은 그의 명저 <사기(史記)>에서 이렇게 썼다.
家貧思良妻(가빈사양처)
國亂思良相(국란사양상)
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신하를 생각한다
이처럼 나라가 어지러워도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는 자 하나 없고, 나서려는 자는 더더욱 없어 보인다. 사람을 키우지 않은 탓이다. 사람을 귀하게 대접하지 않은 탓이다. ‘정(政)피아’, ‘서금회’가 날뛰는 판국에 누가 목숨 바쳐 국난을 수습하려 할 것인가. 지금 대한민국의 위기는 ‘찌라시’ 때문이 아니다. 난국을 헤쳐나갈 이순신 같은 어진 신하가 없다는 점이 바로 위기의 핵심인 것이다.
정운현 팩트TV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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