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귀태(貴態)와 니들의 귀태(鬼胎)-
그 소리가 그렇게도 듣기 싫던가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비가 쏟아지는 7월 12일, 여의도 새누리 당사 앞. 국정원 정치개입을 규탄하는 서울대총학생회 집회에는 20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솔직한 심정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머리 좋고 약아빠진 서울대생’들이 몇 명이나 모일 것인가. 모여 봤자 몇 명이 멋쩍게 서 있다가 가겠지 했는데 잘못된 생각을이였다. 사과한다.
비는 오고 바람이 불어 얇은 비닐 우의는 입기가 힘들었다. 팔을 꿰기 힘들어 했다. 우의를 펼쳐 팔을 꿰기 쉽게 붙들어 줬다. 우의를 입은 학생은 공손 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대열에 합류했다. 좋게 봐서 그런가. 그렇게 귀태(貴態)가 날 수 없었다. 옳은 일을 하는 애들은 저렇구나.
비가 질척거리는 길에 얇은 깔판을 깔고 앉은 200여 명의 학생들. 질서 있게 구호를 외치고 사회자의 소개로 나와서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논리정연하게 지적하고 규탄하는 학생들, 그들은 질문 서한을 새누리당 당직자에게 전달하고 1주일 안에 답을 달라고 했다. 답이 없으면 다시 방문(?)하겠다고 했다.
학생들을 앞에 두고 삼엄한 경비를 하는 전경들, 모두 20대의 청년들이다. 저들도 전경복을 벗으면 거의 학생들일 것이다. 학생들의 규탄연설을 들으며 전경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학생들과 전경들은 이 나라의 장래와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을 할까. 안타깝다.
### 미풍을 태풍으로 만든 사람들
귀태(鬼胎)는 과연 태풍의 눈이었을까, 결국 태풍의 눈이 됐다.
2004년 8월. 극단이 하나 창단됐다. 극단의 이름은 ‘여의도’ 직업극단이 아니라 아마추어 극단이다. 극단이 창단공연을 했다. 연극의 제목은 “환생경제“ 무대는 정당의 연찬회.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모두가 아마추어인데 직업이 남다르다. 정치인이다. 국회의원이다.
배우들은 심재철 나경원 이해훈 주호영, 주성영, 정병국. 연극의 내용은 저승사자가 '노가리'의 죽은 아들 '경제'를 살려내고 그 대신으로 3년 뒤에 '노가리'를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내용이다. ‘노가리’는 노무현이다. 현직 대통령의 비유다.
연극대사는 압권이다. 욕설의 향연이다. "육실헐놈", "개잡놈", "죽일놈" "사내로 태어났으면 불알값을 해야지", "거시기를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 "이혼하고 위자료로 그거나 떼 달라 그래" 연구하느라 애 많이 쓴 대사다.
무대 앞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환한 얼굴로 앉아있고 그는 연극이 끝난 후 ‘프로를 방불케 하는 연기였다고 찬사를 선물했다.
노무현은 현직대통령이었다. 그가 “육실헐놈”이 됐다. “개잡놈”이 됐다. “불알 깂도 못하는 놈이 됐다. “거시기를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이 됐다.
평생을 통해 들어보지 못할 욕을 한 번에 다 들어버린 현직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을까. “국민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평가할 것"이라고만 짧게 말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연극은 연극으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점잖게 말씀하셨다. 점잖은 연극에 점잖은 논평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최고회의 의장 때 대구사범 동창인 교수와 술을 마셨다. 입이 험구인 교수가 대통령의 학교 때 별명을 부르며 농담을 했다. 측근들이 열 받았다. 박대통령이 웃으며 말했다. ‘옛날 내 별명이었다’ 교수는 얼마 후 방송사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만약에 말이다. ‘환생경제’가 박정희 현직 대통령을 비유해 야당이 공연한 연극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상상은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 귀태(鬼胎)의 탄생
1939년 일제치하, 경북 문경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혈서를 썼다. ‘죽음으로서 일본과 천황을 받들겠다고 맹세하는 비장한 혈서다. 이 혈서는 민주군관학교에 보내졌고 내용이 유별났던지 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자에 ‘혈서로 군관 지원’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되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할 나이가 초과됐는데도. 혈서로서 일본군에 지원을 할 정도였으면 그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당시 초등학생들은 일본은 조국이며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더 없는 영광이라고 배웠고 선생님들은 그렇게 가르쳤다. 박정희 선생님도 그렇게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혈서를 써서 일본군에 지원했을 것이다.
### '귀태(鬼胎)의 힘
귀신 鬼(귀)자가 들어가서 그런가, 한국의 정치판을 걷어야 하는 줄로 국민이 알았을지도 모른다. 새누리가 열 길 스무길 뛰었다. 일각에선 ‘울고 싶은데 따귀 때려줬다’고도 했다.
귀태(鬼胎)는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가 만들어낸 조어다. 재일 한국인 강상중 교수의 <제국주의 비판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란 책에 등장한 단어라고 한다.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 용의자로, 아베 총리의 외조부다. 살았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가까웠다. 그의 외손자인 현 일본총리 ‘아베’는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치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한국인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기시 노부스케’나 아베‘를 귀태(鬼胎)라고 할 것이다.
귀태(鬼胎)란 말에 새누리당이 경끼에 가까운 발작을 일으킨 것은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이해는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효심이 도저히 참고 견딜 수 없게 했을 것이다. 귀태(鬼胎)의 후예라니. 그렇다면 나도 그렇단 말인가. 심기가 불편한 것은 이해할 수 있으되 새누리가 경끼를 일으킨 것은 확실히 ‘오버’다. ‘환생경제’를 생각해 보면 금장 알 것이다.
귀태(鬼胎)발언을 새누리는 정부에 대한 "정통성 부정"이라고 했다. 정통성 부정은 아무 때나 쓰는 것이 아니다. 새누리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4년 노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을 탄핵이유로 삼았다.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소추가 '합법'의 탈을 쓴 명백한 '정통성 부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가.
그 죄 값으로 탄핵 반대 촛불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고 국민들은 이를 '3.12 쿠데타'로 규정했다. 대통령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다음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벼락을 맞았다. 귀태(鬼胎)발언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부정당했다고 소리 높이 외치는 새누리의 목소리를 국민이 얼마나 들어 줄 것인가. 다시 한 번 ‘환생경제’ 막가파 막말 연극에 대한 노무현의 한 마디 언급, “국민이 알아서 판단하고 평가할 일”이란 말이 살아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극비문서인 NLL 대화록 '무단 공개' 등 꼬리를 무는 악재로 궁지에 몰린 새누리가 귀태(鬼胎)를 기사회생의 기회로 삼으려는 계산은 당연하다. 조중동과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들의 교묘한 보도는 어이가 없다. 그러나 새누리의 속을 물속처럼 드려다 보는 국민의 눈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 귀태(鬼胎)와 귀태(貴態))의 차이
귀태(鬼胎)와 환생경제를 수습하는 방법은 어떤가. 귀태(鬼胎)는 당사자가 대변인 직을 사퇴했다. <환생경제?는 그냥 연극일 뿐이라고 했다. 경제를 위해서라고 했다.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한 사과는 눈씻고 보려고 해도 없다. 귀태(鬼胎)대통령은 정통성 부정이고 <환생경제>는 긍정이란 말인가.
7월13일 오후 7시. 서울시청 광장을 메운 2만 시민 앞에 선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절규했다.
"7개월전 경찰이 국정원의 댓글을 은폐하고, 거짓발표를 하고, 국정원이 10분뒤 민주당을 명예훼손을 고발하겠다는 성명을 낸 그 시점에 대선은 이미 끝났다.
이것이 선거쿠데타 범죄의 재구성"이라며 "문재인 후보에게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물었던 박 대통령은 스스로 이 사태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건지 스스로 밝혀야 한다"고 했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도 질타했다.
"남은 국정조사기간은 한 달뿐인데 아무 것도 진척되지 않고 저들이 국정조사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냐" "친일 매국세력, 다카키 마사오가 반공해야 한다면서 쿠데타로 정권잡고 유신독재 철권 휘둘렀는데,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까지 국정원 동원해서 종북공세 만들어 권력 차지한 사실이 드러나면 정권의 정통성이 무너진다고 두려워하기 때문 아니냐"
시민들이 열띠게 반응했다. 부정선거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다.부정시험으로 합격된 사실이 들통나면 입학취소다. 선거는 어떤가. 선거도 같다. 어떤 경우에도 불법과 부정은 용서 안 된다.
이미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검찰기소로서 확인됐다. 당연히 부정선거가 아닌가. 국민들은 바로 그것을 항의하는 것이며 그 진상을 소상하게 밝히라는 것이며 문재인에게 책임을 지라던 박대통령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를 준엄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국가정보 최고책임자의 'NLL 대화록 불법 유출'과 국정원녀의 댓글의혹 등으로 정통성 논란이 뜨겁자 귀태(鬼胎)를 웅켜쥐고 지푸라기를 잡았다고 매달린다.
명예를 생명처럼 여긴다는 군인, 더구나 별을 네 개씩 무겁게 어깨에 달았던 사람들. 그들은 과연 명예를 생명처럼 여긴다고 국민 앞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는가. NLL 대화록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들이 침묵을 고수하는 것은 과연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인가. 그래도 한 점 양심은 남아 있어 침묵으로 면피를 하려는 것인가. 이들을 보면서 문득 귀태(鬼胎)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귀태(鬼胎)는 사라져야 한다. 정말 보기 싫다. 귀태(貴態)는 참으로 보기가 좋다.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