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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칼럼] 고생하며 자식 기른 죄
불쌍한 늙은이다. 욕하지 마라.
등록날짜 [ 2014년11월27일 15시37분 ]
이기명 논설위원장
 
【팩트TV】불쌍한 늙은이다. 욕하지 마라.

쪽방, 번개탄 피워놓고...
 
한낮에 지하철은 한산하다. 한산한 지하철에는 늙은 승객이 많다. 어디를 가는 것일까. 직장에 출근하는 것일까. 요즘 많아졌다는 ‘실버택배’들일까. 저 노인은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탑골공원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일까. 아니면 순환지하철 타고 그냥 빙빙 시간 죽이는 것일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사람도 있었다. 일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옛날에는 나이 먹어 집에서 손주나 보고 있으면 팔자 좋은 늙은이라고 부러워했다. 지금은 젖 떨어지자 영아원이다 유치원이다 해서 할애비가 봐 줄 손주도 없고 늙은이에게 자식 맡기는 며느리도 없다. 세상은 여전히 넓지만 할 일은 없다.


(자료사진 - 팩트TV 신혁 기자)

 
늙고 죽는 것이야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옛날에는 환·진갑 지나도 장수한다 했는데 이제는 환갑나이는 청년이다. 70에 죽으면 장수했다고 했지만, 지금은 팔구십 늙은이가 부지기수다. 병원도 많고 약도 좋아 오래 산다. 축복받는 장수시대인가. 집도 돈도 없다. 노인복지 어디 갔나. 늙어도 사람이다.
 
■시민운동에 감동이 없다
 
젊어서부터 사회활동에 적극적인 친구가 있었다. 민주화 운동에도 늘 앞 장 섰고 언론 민주화를 위해서도 열심이었다. 모임에 가면 그의 얼굴이 늘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를 오래간만에 만났다. 얼굴에 기운이 없다. 뜨거운 열정과 불타는 분노가 사라진 그의 모습은 바싹 늙었다.
 
‘점 점 내가 필요 없는 존재로 느껴지네. 귀찮은 모양이야. 말 한마디 하기도 망설여지네. 희망이 없어.’
 
꼭 누가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이는 먹었어도 눈치는 빤하다. 자신이 귀찮은 존재로 느껴지면 정은 이미 떨어진 것이다. 대화는 단절됐다.
 
정이란 오고 가는 것.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구가 있었다. 생각도 앞선 친구라서 이른바 진보적 운동권 젊은이들이 주위에 많았다. 도움을 청했고 도움을 주었다. 언제부터인가. 그가 달라졌다.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았다.
 
늙은이가 ’이쑤시개‘인가.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리면 그만인가. 친구가 하는 끔찍한 소리를 들어보자. 시민운동을 하는 젊은 후배가 있었다.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언제인가 또 도움을 청했다. 들어주지 못했다. 형편도 전 같지 않고 마음속에 거리감을 느꼈다. 도무지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시민운동을 하니까 자신들은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안 도와준다고 비난을 한다는 것이다. 정이 똑 떨어졌다고 한다.
 
요즘 ‘싸가지’가 유행어다. 대상은 젊은이들이다. 왜 늙은이들이 새누리를 찍는가. 야당과 싸가지를 동일 시 하는 것이다. 조·중·동·맹이 쏟아 붓는 편파폭격과 할 일 없어 무방비 노출된 할배들에게 진정으로 접근하는 야당 지도자들이 없다. 종북과 좌빨로 낙인찍힌 야당과 싸가지의 대명사가 된 시민운동가가 혼재되어 가망 없는 야당은 버림받는 신세가 됐다. 야당에게 당부한다. 늙은이도 사람이다. 푸대접하면 벌 받는다.
 
■너희들도 늙어봐라
 
어르신들은 무조건 꼴통보수로 분류된다. 선거결과를 보면 많은 어르신이 새누리당을 찍었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새누리당이 어르신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인가. 천만에다. 잔뜩 기대했던 박근혜표 노인복지정책은 꽝이 됐다. 어르신들이 사기당했다고 화를 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도 보수 꼴통의 불명예를 달고 산다. 이유가 무엇인가. 제 밥그릇도 못 찾아 먹은 야당이 싫다.
 
사무실 맞은편에 새누리당사와 새정치민주연합당사가 있다. 7층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면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무척 시끄럽다. 야당 당사를 바라보며 성토하는 소리가 시끄러워 일하기가 힘들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힘없는 주먹을 휘두르며 구호를 외친다. ‘종북좌빨 세력은 물러가라’
 
그런가 하면 해고노동자와 노조원들이 새누리당사를 보며 구호를 외친다. ‘대통령은 대선공약을 지켜라’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 일일이 다 옮길 수도 없다. 이것이 한국의 정치다.
 
언제인가 시청광장에서 만났던 어느 노인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야당과 젊은이들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부정적이다. 제 놈들만 잘난 줄 알고 늙은이들 무시한다는 것이다. 싸가지가 없다고 했다.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했다. 건방지다는 것이다. 제 놈들 공부시키며 고생한 사람들이 누구냐고 했다. 바로 자신들이라 했다.
 
사실이 그렇다. 많은 노인이 경제적 궁핍 속에서 처자식들 먹여 살리느라고 고생했다. 자식들 공부 시키느라 별의별 험한 일 다 했다. 자식 대학 졸업시키고 취직했다. 장가도 보냈다. 어느덧 정년이 됐지만 다른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이 환갑에 실업자다. 집안에서 자신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 간다. 대부분의 어른이 겪은 서글픈 역사다.
 
드라마에도 단골메뉴지만 잊힌다는 것은 연인들만의 고통이 아니다. 자식들도 저 먹고살기 바쁘다. 늙은 부모 잘 모시기가 힘들다. 자연히 소홀하게 되고 그것이 부모는 야속하다. 제 놈을 어떻게 길렀는데 은혜를 모르는 놈이라고 욕이 나온다. 배신감처럼 지독한 분노는 없다.
 
정치도 같다. 야당은 뭘 하는가. 기대는커녕 환멸만 쌓인다. 새정치를 한다고 손을 잡더니 아주 망쳤다. 지려야 질 수 없다던 선거는 무참하게 깨졌다. 멀쩡한 우리 새끼들 바다에 빠져 죽고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는데 어떻게 했기에 선거에서 진단 말인가. 저걸 야당이라고 믿으란 말인가.
 
이제 새로운 비대위가 구성되어 뭔가 좀 하려고 하니까 이놈 저놈 다 나서서 쥐어뜯는다. 무슨 당 대표 후보는 그렇게도 많은가. 밑져봐야 본전이란 생각인가. 언론에 이름 한번 올려 보자는 것인가. 조경태는 당원이 자신을 부른다고 큰소리다. 이런 정당을 지지하면 정상적인 국민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느긋하다. 이 꼴을 보면서 소경 제 닭 잡아먹는다는 말이 딱 맞는다.
 
꼴통이라고 늙은이들을 비웃는가. 늙은이라고 속이 없는 줄 아는가. 1956년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에 맞서 대통령 후보에 나선 해공 신익희의 한강 백사장 연설에 모인 서울시민들 절반은 어르신들이었다. 그때 민주당과 해공은 국민의 희망이었다. 지금의 야당은 어떤가. 국민에게 지지를 해 달라고 손을 벌리기에는 너무나 염치가 없다.
 
■꼴통 탓 말고 마음으로 함께
 
한국의 정치는 더 이상 타락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좋은 여당이 있으면 좋은 야당이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같다. 그렇게 정치는 발전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당이 없다는 사실이 한국정치의 비극이다.
 
정당에 계파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라고 아무리 부정해도 국민들이 안 믿는다. 아무리 없애라고 아우성을 쳐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이것은 억지다. 당 대표 선출에 문재인 출마하지 말라는 정치인은 어떻게 된 사람들인가. 자신이 없으면 자신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
 
자기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 니가 나오면 내가 1등 못하니까 시험 보지 말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웃음거리밖에 안 되고 이것이 당의 꼴을 비참하게 만든다. 나올 사람은 나와서 정당하게 경쟁하고 패하면 승복해라, 그렇게도 정당 만들고 싶으면 만들어라. 호남정당 만들어서 당수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그 대신 정치 한다는 소리는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양아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이 아무리 시원찮아도 오늘의 야당으로는 집권이 어렵다. 차돌처럼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 한데 저렇게 콩가루처럼 흩어져 있는 야당을 어디가 예뻐서 찍어주겠는가. 차라리 기권하겠다는 늙은 유권자가 주위에는 많이 있다.
 
늙은이들 불쌍한 줄 알아야 한다. 온종일 탑골공원 양지쪽에 앉아 누가 소주 한 잔 안 사주나 기다리며 졸고 있는 늙은이, 지하철 타고 빙빙 도는 늙은이, 아들 며느리 눈치 보며 밖으로만 나도는 늙은이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개탄 피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도 모진 것이 목숨이라 하루하루 이어가는 늙은이들은 꼴통이라고 욕만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돈 몇 푼 주는 거 바라고 마음에도 없는 시위현장에 가서 안 나오는 소리 지르는 늙은이 심정을 아는가.
 
늙은이 욕하지 마라. 돈과 정에 굶주린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는 야당 지도자들이 있느냐.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야당을 찍어주지 않은 늙은이들이라면 그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늙은이들은 마음 줄 곳이 없다. 사랑하면 사랑한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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