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안도현의 절필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시인은 한 시대의 양심이라고 했다. 아니 인류의 양심이다. 안도현 시인이 절필을 했다. 절필이란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꽉 막혔다. 또 하나의 양심이 숨을 거두는구나. 시인이 시를 안 쓰면 죽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왜 절필을 하는가. 절필의 고통보다 쓰는 고통이 더욱 크기 때문인가. 박근혜 정권의 하늘 아래서 시를 쓴다는 고통은 시인만이 안다. 그러나, 그러나 절필을 함으로서 고통은 사라지는가. 사라지지 않는다. 더 큰 고통이 가슴을 채울 것이다.
태양이 스며들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신음하는 인간들의 아픔과 슬픔을 대신해 주는 한 줄의 시. 한 줄의 시로 토해내는 시인의 통곡은 고통 받는 인간들에게는 슬픔을 달래주는 한 잔의 술이다.
1960년 대 절망의 땅,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든 어둠속, 김치 한쪽을 안주로 막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취한 흐릿한 눈에 들어오는 대포 집 담벼락에 낙서로 남긴 한 줄의 시. -조국 대한민국아. 너의 뼈 조각이라도 사랑한다.- 어떤 경우에도 시인은 시를 써야 한다. 시인이 시를 포기하는 세상은 세상이 아니다.
김지하는 어두웠던 독재시절, 한 줄기 빛이었다. 그의 시 한 편은 희망이고 용기였고 그의 시는 억눌린 가슴에서 끓는 용광로였다. 그의 시는 노래가 되어 불리고 대학생들은 그 노래를 부르며 분신했고 투신했고 할복을 했다. 얼마나 많은 젊은 목숨이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쳤던가.
김지하는 우상이었다. 그를 따르면 민주주의는 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오지도 않았고 그만이 갔다. 우상은 무너지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타는 목마름으로의 우상은 청년들에게 불타는 증오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가 피로 쓴 절규는 변절과 배신의 상징으로 남았지만 또한 꽁지 잘린 공작의 연민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김 지 하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하나 타는 가슴속 목마름에 기억이
내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살아온 저푸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 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 떨리는 노여움에
서툰 백묵글씨로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어느 인간에게도 변절은 있다. 시인이라고 왜 변절이 없으랴. 3.1독립선언서를 쓴 육당 최남선, -海에서 소년에게- 로 이 나라 최초의 신 詩를 쓴 최남선도 변절했다. 춘원 이광수도 변절했다. 모윤숙도 변절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상화를 기억한다. 빼앗긴 조국을 목 매어 부르는 시인의 통곡이 가슴을 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상 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어두운 시절일수록 시인들의 시는 가슴을 친다. 시는 희망이다.
-노동이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은 한 시대가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작품이다. 바로 박정희 독재시대였다. 지식인의 관념이 아닌, 노동자의 노동 현장의 일상적 삶이 노동자의 언어로 형상화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제 박노해는 어디로 갔는가. 그토록 그가 사랑하던 새벽 소주잔을 빈속에 털어넣든노동자들은 지금 행복한가. 전태일은 노동자도 인간이라고 외치며 자기 몸을 불살랐다.
세계가 사랑하던 시인 바이런은 민주주의를 위한 ‘그리스’의 독립운동에 참전했다가 열병과 출혈로 사망했다.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의 작가 헤밍웨이도 스페인 반독재 투쟁에 참가했다.
우리의 윤동주도 이육사도 지금 이 시대에 살아 있다면 무슨 시를 썼을까. 아니 절필을 하지는 않았을까. 박정희 독재시절 우리의 시인 박인환도 명동 선술집에서 술잔을 기우리며 눈물로 시를 썼다. 전두환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보안사에 끌려간 소설가 한수산의 친구란 단 한 가지 이유로 폐인이 된 시인 박정만은 술만 마시다가 화장실에서 숨을 거두었다.
### 안도현을 탓하지 말라.
절필을 선언한 안도현의 대표작이라는 -연탄 한 장-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연탄 불 처럼 묻어나는 시다.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에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왜 시인이 절필을 하는가. 왜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가. 안도현은 이렇게 밝혔다.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발표하지 않겠다. 맹세한다. 나 같은 시인 하나 시 안 써도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만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는 안도현의 시를 5년 간 읽을 수가 없다.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이란 사람이다. 상대를 말자. 안도현 시 안 읽어서 병이 나냐는 비웃음도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가슴속으로 앓는 병은 더욱 아프다. 안도현 시인에게 부탁한다.
“안도현 시인. 다시 시를 쓰십시오”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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