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내일 죽을 수 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간의 운명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끔찍한 소리 한 마디 하자. “내가 확실히 아는데 너 내일 죽어” 이 말을 들으면 웃을 것인가. 웃을 것이다. 귀신도 눈썹 앞에 일을 모른다는데 내일 일을 어떻게 알아. 그러나 기분은 몹시 나쁠 것이고 마음 약한 사람은 정신이 아득할 것이다.
1956년 5월5일, 해공 신익희 선생이 서거했다. 5월2일 한강백사장에서 30만 명의 시민을 앞에 두고 이승만 독재를 규탄하며 사자후를 토하던 신익희 선생은 5월5일 선거 유세를 위해 전주로 향하던 중 열차에서 급서한다.
세상이 벌컥 뒤집혔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불과 이틀 전 한강 백사장 보다 더 뜨겁게 독재타도의 열변을 토하던 분이 서거하다니, 이것은 분명히 독살이다. 이런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유해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수만 군중이 모였고 사인을 밝혀내라는 분노의 함성과 함께 군중들은 유해를 모신 앰브란스와 함께 경무대(청와대)로 향했다. 급기야 경무대 앞에서 경찰과 충돌했고 경찰은 발포했다. 이것이 바로 5월5일 ‘경무대 앞 소요사건’이다.
그 생각만 하면 잊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 날, 특무대(보안사)에 체포되어 마포경찰서에 이감된 후 조사를 받던 중 취조하던 형사가 자백하지 않는다며 따귀를 갈기고 하는 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야 이 새끼야 학생 놈들이 공부는 안하고 데모를 해? 니들이 지랄한다고 이승만 정권이 무너질 줄 아냐’ 그러나 영구집권 할 줄 알았던 이승만은 대학생들의 데모로 망했다. 사람의 일 알수 없는 것이다. 전 국정원장 원세훈이 파렴치 혐의로 구속 직전임을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박정희 독재. 영원무궁할 줄 알았다. 장충체육관에 허수아비들 세워놓고 만년대통령 꿈꿨다.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끔찍하니 접자.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광주학살 주범 전두환이 죄수복에 수갑을 차고 법정에서 내란죄로 사형을 언도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엄살을 떨 줄 누가 알았겠는가.
멀리 가보자. ‘리비아의 카다피’는 하수구에서 “쏘지 마. 쏘지 마.” 애원을 하다가 최후를 마쳤다. 이라크의 독재자 훗세인도 지하 참호에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2006년 12월30일 처형됐다. 카다피나 훗세인이나 자신들이 그렇게 참혹한 최후를 맞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그런 능력을 주지 않았다. 단지 죄 값은 반드시 받도록 하셨다.
3.15부정선거의 선거책임자인 내무장관이던 최인규는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이승만의 차지철이던 경무대 경찰서장 곽영주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왜 이들이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형장에서 삶을 마감했는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죄를 지었으면 죄 값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죄 진 자들은 모르는가. 다 안다. 단지 모르는 게 있다. 자신은 죄값을 치를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염치없고 뻔뻔한 생각이다.
### 용서받지 못할 범죄 ‘부정선거’
정치는 국민의 행복을 좌우하는 척도다. 그래서 중요하고 국민은 공명정대한 선거를 바란다. 부정선거를 엄중히 다스리는 법도 그래서 만들었을 것이다. 만약에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다면 국민들은 당연히 저항을 해야 하고 이를 시정해야 한다.
3.15부정 선거를 규탄하고 이승만을 몰아냈던 4,19 혁명도 국민들의 민주주의 열망으로 성공했다. 박정희 독재도 부정선거를 바탕으로 장기독재 집권을 획책했기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전두환은 아예 선거고 뭐고 안중에 없었다.
이제 국민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부정선거는 없으리라고 믿었다. 정상적인 바람이고 요구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이게 일인가. 국민들이 승복을 못하는 선거가 있다. 대통령 선거다. 왜 승복을 못하는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막강국정원이 선거에 관여했다는 인식 때문인가.
근거는 있는가.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국정원장은 알 것이다. 흔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한다. 오피스텔 안가에서 국정원 심리전국 소속의 28세 여자가 문재인 야당대통령 후보의 낙선을 위한 맹랑한 댓글 작업을 했다. 뿐만 아니다. 하나하나 들어나기 시작하는 국정원의 선거개입, 오죽하면 새누리도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를 거부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했는가. 혀를 깨물며 트집을 잠고 버티겠지만 세상사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중앙정보부가 있어도 박정희 정권은 사라졌다. 전두환도 수갑을 찼다.
국정원의 개혁을 외치고 아예 없애버리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국민들의 부정선거에 대한 증오는 이토록 치열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국민들은 국정조사를 눈 크게 뜨고 지켜 볼 것이다.
전국의 지식인 교수 종교인 변호사 학생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최루액을 맞으며 고등학생도 참여했다. 미친쇠고기 반대 시위 때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생들, 초딩이라고 무시하지 말라. 4.19 때 수송초등학교 학생이 쓴 시 ‘나는 알아요’를 우리는 기억한다.
### 기자들은 말 하라
러시아의 통신사 노보스티에 ‘이고르 코스틴’이란 기자가 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 아무도 안 가는 현장에 들어가 취재를 하고 사망한 전설적인 기자다. 약혼자가 울며 매달리는데도 ‘기자는 현장에서 사실을 전해야 한다“며 달려갔던 기자 <이고르 코스틴.> 그를 생각하며 시국선언 현장에 구름처럼 모인 한국의 기자들을 생각한다.
현장에는 카메라가 돌고 마이크는 켜져 있고 젊은 펜들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윽고 취재가 끝났다. 모두가 끝났다. 마이크는 꺼지고 카메라는 눈을 닫고 펜은 녹이 쓴다. 왜 침묵하는가. 그들이 대답을 해야 한다.
말하고 싶고 쓰고 싶고 사진 찍고 싶은 기자들이 있다. 해직기자다. 죄도 없이 목이 잘린 펜과 마이크와 카메라. 그들의 분노, 그들의 눈물, 그들이 한숨이 슬프다.
기자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운명처럼 짊어지고 있는 것이 공정보도며 이를 막는 세력과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배우고 그러기 위해서 기자가 됐다.
프랑스가 나치에 부역한 언론인들이 총살당하며 ‘우린 아무 일도 안했는데 왜 죽이느냐”고 항의하며 울부짖을 때 "바로 아무것도 안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돌아 온 대답이다. 나치에 협력한 언론"에 대한 단죄는 가혹하리만큼 엄정했다. 그들은 처형당하거나 중형을 선고받았고, 538개 언론사가 기소되고 115개사가 유죄를 선고받았다.
'우리나라 친일언론사들은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참회하는 언론이 없고 그들은 여전히 악에 편이다.‘ 늙은 언론인의 탄식이다. 침묵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언론이 억울한가. 언론의 책임이 그만큼 무겁다는 것이다.
###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국정조사를 보는 국민의 시각은 어떤가. 시작을 보면 끝을 안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트집과 억지와 방해가 저 지경인데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국민의 시각이다. 그러나 방해세력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이 있다. 국민이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향신문 최우규 기자의 칼럼을 인용한다.
“(상략) 국정원 활약도 대단하다.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 스파이들이 모인 곳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남재준 국정원장) 그랬단다. 그것도 내용을 이리저리 꿰맞춰 단장취의(斷章取義)를 해놓았다. 동네 흥신소도 안 할 것 같은 ‘어설픈 플레이’다. 오죽하면 ‘국정원이 발췌하면 코란도 성경이 된다’는 유머까지 나왔겠나.
이들을 보면 희극 속에 비극이 들어 있고 비극 속에 희극이 있는, ‘희비극’ 작가나 배우들 같다. ‘웃픈(웃기면서 슬픈)’ 일이다.>
국정원이 더 이상 국민을 ‘웃픈’시켜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 역시 그들을 뽑아 준 국민을 ‘웃픈’시켜서는 안 된다.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다 들리고 모두 보인다.
늘 주변정리를 말끔히 하는 친구가 있다. 이유는 하나.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파렴치 혐의로 조사를 받고 검찰청 앞에서 기다리는 기자들의 후레쉬를 받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심정은 어떨까. 국가의 안보를 책임졌던 국정원장이 파렴치 혐의라면 너무 딱하지 않은가. 거기다가 국민의 대부분이 믿는 국정원의 선거개입의 주인공이다. 피로서 얻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한 죄는 무엇으로도 용서가 안 된다.
국정조사를 하는 국회의원들. 국정조사를 받는 국정원 관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당신들도 내일 죽을 수 있다’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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