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죽지 않는 부정선거의 망령-
누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는가
이기명 팩트TV 논설고문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에 성공한 후 왜 쿠데타를 일으켰는지 여러 말들이 많았다. 그 중에 자유당독재의 부정선거와 언론의 부패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울 6군관구사령관 시절 당산동 6관구 사령부에 근무했던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주어들을 수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 지휘관 시절 자유당의 부정선거를 많이 겪었다. 부산 군수기지 사령관 시절에 특히 심했다고 한다. 언론도 그렇다. 부대 보급소 근처에는 기자들이 버글댔다. XX통신사 기자라는 명함을 가진 그들은 쫄병이 지급된 건빵으로 구멍가게에서 소주와 바꿔 마시는 것도 군수품 유출이라고 부대로 찾아와 공갈을 쳤다.
부대 보급장교가 사병들이 먹는 군대 쌀 한 말을 담아주면 무사했다. 썩은 정치와 썩은 언론, 비록 이름없는 통신사 기자라 해도 기자는 기자였다. 5.16 쿠데타가 성공한 후 부대인근에 사이비 기자는 얼씬도 안했다. 내가 겪은 부정선거는 아마 박정희 소장도 겪었을 것이다. 선거 때면 선임하사가 부대 안에 설치된 기표소 옆에 서 있었다. 어느 용감한 쫄병이 야당후보에 표를 줄 수 있으랴. 박정희 사령관은 선거부정을 낱낱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무신과 막걸리로 치러지는 부정선거는 유구한 역사를 가졌고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에도 망령은 죽을 줄 모른다. 3.15부정선거도 군에서 치렀고 4월18일 국회앞에서 시위를 한 고대생들이 귀교하다가 종로 5가에서 이정재 유지광등 정치깡패들에게 자전거 사슬로 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길바닥에 쓰러진 광경도 목격했다.
자유당 고관이 지방시찰을 하면 학생들이 모두 동원되어 그가 지날 동안 박수를 쳤다. 대구 경북고등학교 학생들이 동원에 불만을 품고 데모를 한 것도 그 때고 대구매일신문에 최석채가 ‘학생을 동원하지 말라’는 사설을 쓴 후 신문사가 깡패들에게 습격을 당한 때도 그 때였고 경북도경 사찰과장 ‘신 모’가 ‘백주에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것도 이 시절이다. 최석채는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의 효시인가. 대구는 민주주의가 자라난 요람이었다.
군대 쫄병으로 3.15 부정선거를 목격했고 휴가중에 4.19혁명을 목격하면서 ‘쏘라고 준 총’에 맞아 죽는 시민들을 보았다. 5.16 쿠데타도 군에서 겪었다. 내무반에서 취침 중 한밤중에 끌려 나가 남산 KBS를 점령했다. 이만하면 역사의 산증인으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아직 멀었다. 쿠데타와 부정선거의 망령은 결코 죽지 않는다. 부정선거와 언론감시의 첨병은 그 때나 이때나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맡았다. 언론사 마다 조정관이란 이름의 정보부원들이 상주하고 방송국장실 문은 발로 밀어 열었다. 그 앞에서 개처럼 비굴한 침을 흘리던 언론사 간부들과 기자들, 기자같은 기자는 동아와 경향이 유일했다. 자유당 시절 동아일보를 자존심의 상표로 들고 다니며 김동명 선생의 칼럼을 읽던 기억이 새롭고 송건호 편집국장의 동아일보는 언론의 희망이었다.
### 다시 부활한 불법부정선거의 망령 국정원.
그토록 끊어버릴 수 없는 천생연분인가. 원세훈과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을 다루는 국회법사위원회를 보면서 돌고 도는 역사의 악순환을 생각했다. 국정조사를 하자던 여야 합의는 폐지로도 쓸 수 없는 악취가 나는 휴지조각이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은 지나가는 사안’이라며 정보위원회에 빗장을 채운 서상기 정보위원장(새누리당)의 심장이 부럽다. 앞으로 여야합의는 애들 약속만도 못하다. ‘여야 합의는 휴지로 한다’는 관례를 만드는 것인가.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는 명언(?)이 되살아나는 것은 이 무슨 처참한 비극인가. 국민들은 새누리당 법사위 간사라는 권성동 의원이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 늘어놓는 횡설수설 종북타령을 들으며 사사오입을 합법이라고 우기던 자유당의 일그러진 모습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원세훈 선거법위반 사건을 수사한 주임검사가 총학생회 부회장 출신임을 트집잡는 검사출신의 김진태의 말을 들으며 오늘의 정치에서는 저런 상식부재의 강심장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 라는 비통함을 느낀다. 김진태가 춘천지검 부장 검사시절 학생회 부회장 출신 검사는 초임검사였단다.
박근혜 대통령의 침묵은 왜 이리도 길고도 긴가. 시간이 갈수록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은 국민들 사이에 뿌리깊이 박힌다. 아무리 새누리당이 아니라고 억지를 써도 안 된다. 이미 검찰이 전 국정원장 원세훈과 김종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무엇을 가져 오겠는가. 결과에 따라서는 박대통령이 정치를 하는데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어느 국민도 박근혜 정권이 실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온갖 비판을 감수하며 침묵하던 문재인도 말하지 않던가. 나라를 생각해서 자중하고 있다고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문재인과 토론할 때 한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국정원 여직원은 아무 죄가 없다. 그리고 민주통합당은 성폭행범이나 하는듯한 수법으로 그 여직원을 감금하고 인권을 침해했다. 그런데 아직도 민주당이 사과하지 않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 국정원녀는 감금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을 잠근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의 집단적 선거관련 댓글 작업은 이제 온 국민이 알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분명히 박대통령은 사실을 왜곡했고 그렇다면 솔직히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다. 국정원 선거개입사건을 확실하게 규명하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결단해야 할 것이다.
사건은 의혹을 남기지 말고 처리하는 것이 좋다. 미적거리다가 낭패를 겪는 경우를 많이 봤다. 지금 부글거리며 끓고 있는 민심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거부되면 재정신청을 낼 것이라 했다. 이정희는 이미 냈다. 얌전하던 서울대생들이 시국선언 서명운동을 벌리고 있다. 표창원의 국정조사촉구 10만 명 서명운동도 마무리 됐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을 것인가.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고 내 나라 일이고 자신의 일임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인데 니들이 어쩌랴 하는 생각은 금물이다. 이승만도 대통령이었고 박정희도 전두환도 이명박도 대통령이었다. 자식 이겨먹는 부모 없다고 하듯이 국민 이겨먹는 대통령도 없는 것이다.
### 언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자유당의 일당독재, 백주에 언론사가 깡패한테 습격을 당하는 무법천지에서도 동아일보 경향신문은 민주화 투쟁을 치열하게 했고 대구매일신문도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투쟁했다. 당시 쥐꼬리만도 못한 월급으로 생계가 어려우면서도 언론자유를 위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들 잘 알 것이다. 맞다. 한국의 언론을 말하려는 것이다. 조중동을 비롯해 종편 등의 언론을 말할 때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그들 기자들을 만나면 가슴속에서는 눈물같은 연민이 솟는다. 그들의 마음은 오죽할 것인가. 나만의 감상인가. 자식처럼 여기던 기자들이 얼굴을 정면으로 못 본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송’이다. 속으로는 웃는가.
왜곡 펀파 불공정이 상표처럼 되어 버린 활자는 오염으로 때가 묻어 만지기가 두렵다. 자신이 쓴 기사를 다시 보지 않는다는 그들 기자들의 말을 들으며 그들도 또 다른 독재의 희생자임을 인정하지만 동의는 못한다.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꿀려가 빨가벗고 두들겨 맞으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눈 가리고 귀 막고 마스크 하고 살면 편하다는 현실안주가 구역질이 나는 것이다.
수천억의 적자를 내면서 다람쥐 채바퀴 돌듯 프로그램을 반복재생하는 종편이라는 매체는 도대체 뭘 해 먹자는 언론인가. 취재현장에서 시민들에게 쫓겨나는 매체의 기자들도 왜 자신이 이 지경이 됐는지 잘 알 것이다. 사주 독재에 저항하는 한국일보 기자들이 눈물겹다. 한국일보 창업자인 장기영은 온 몸을 신문에 바쳤다. 배달사고 신고가 오면 직접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독자에게 전했다. 그렇게 성장한 한국일보가 오늘날 저 꼴이 됐다. 장기영이 불쌍하다.
신문이 아니고 쓰레기라고 평가받는 언론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신뢰도 1위인 한겨레와 사원들이 주주인 경향, 시민기자가 공정보도를 하는 오마이뉴스, 프레시안도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다.
방송은 어떤가. 수천억의 돈을 쏟아 부어도 시청률은 새벽 애국가 시청률수준인 종편은 차라리 말을 말자. 인터넷 방송이 사랑을 받는다. 고발뉴스, 팩트TV, 등이 언론의 사명을 다 하기 위해 열악한 환경속에서 땀을 흘린다. 특히 ‘탐사보도’의 정수인 ‘뉴스타파’는 어떤가. 정치 경제를 좀 먹는 벌레들이 몸을 떤다. 최승호 앵커는 저승사자라고 불린다.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폭로한 뉴스타파는 국민의 이름으로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팩트TV.의 경우, 11명의 구성원은 오직 하나, 정론을 위해 밤을 낮으로 산다.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뛰는 그들을 보며 그래도 희망을 갖는다. 현장에서 쫓겨나는 거대언론보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까만 후배 기자에게 잘 지내느냐고 물으면 ‘던져주는 뼈다귀 물고 개처럼 짖는다’는 자조 한탄이 오히려 나를 무색하게 한다. 이제 진정한 기자가 되야 한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고 하지만 천만에 말이다. 잠시 통하는 것 같아도 억지는 억지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제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지 100일이 좀 지났다. 너무 늦기 전에 정신을 찾았으면 한다.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5년은 잠간이다. 실패했다고 대통령 더 할 수는 없다.
이기명 팩트TV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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