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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인터뷰]안희정-1편. 나는 충효이데올로기의 결정체
등록날짜 [ 2013년06월13일 18시16분 ]
팩트TV 보도제작국
[술술인터뷰]안희정-1편. 나는 충효이데올로기의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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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인터뷰 5회는 본인을 충청도 촌놈으로 소개해달라고 부탁하신 안희정 충남도지사님과 함께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에서 진행합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안 지사님의 프로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올해로 정치인생 24년차가 된 안 지사님은 1964년 음력 10월 28일 논산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나셨습니다. 산과 들을 벗 삼아 밭일을 하시면서 성장한 전형적인 논산 촌놈이십니다. 그리고 대전으로 유학을 보내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러시아 혁명사라는 책을 읽고 혁명을 꿈꾸다가 고등학교를 중퇴하셨습니다. 그 후 검정고시를 거쳐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하지만 반정부 반독재를 향한 정의감은 사라질 줄 모르고 198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십니다. 다음해 결혼을 하고 건설현장, 출판사 영업부장, 보험회사, 홍보회사 등을 거쳐 12년 만에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1994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이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적인 정치 파트너가 되셨습니다. 이후 구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거쳐 마침내 2010년 6월 2일 충남도지사로 당선이 되셨습니다.
 

인터뷰 이름이 술술인터뷰인데, 주량은 얼마나 되세요?
 
집의 내력이 술을 잘 못해요. 제가 처음으로 술을 먹고 쓰러졌던 것이 6살인가? 우리 집이 정미소와 술도가가 있는 집이었어요. 정미소 마당에 놀러 갔는데 동내아저씨들이 “희정아” 부르시더니 막걸리를 마시다가 너도 한 번 먹어보라고 준 모양이에요. 어머니는 애가 놀러갔는데 안 보이 길래 찾아봤더니 아저씨들 새참 먹는 틈바구니에서 막걸리를 먹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 애가 마당을 걸어 나오는데 똑바로 못 걸어오더래요. 그래서 애한테 뭐하는 짓이냐고 하고 애를 업고 왔는데, 더 가관인건 아버님도 동네에서 막걸리를 한 잔 드시고 오신 모양이에요. 그러니 부자가 대낮에 완전히 드러누워서 안방에 약간 먹은 음식 다시보기를 한 모양이에요. 그래서 가끔 어머님이 그 이야기를 하세요.
 
 
혹시 어머님이 안 지사님 태어나시기 전에 어떤 태몽을 꾸셨나요?
 
그러고 보니 태몽 이야기를 아무데서도 한 적이 없어요.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팩트TV에서 처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어머님이 장에 가서 놋으로 된 대야를 사 오셨데요. 그래서 그 놋으로 된 세수대야를 들고 안방에 들어왔는데, 너무 환하게 빛을 발하더래요. 그래서 아버님에게 “여보, 이거보세요. 놋 대야가 빛나요” 하면서 꿈을 깨셨대요.
 
 
앞서 안 지사님을 논산 촌놈이라고 소개해드렸는데,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초등학교 때 까지 육군사관학교를 가서 군인의 길을 간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육군사관학교를 가시겠다고 했으면, 소년시절 아무래도 리더십도 있고 정의감도 강하고 애국심도 있고 그러셨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우리는 박정희세대에요. 박 전 대통령이 61년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63년에는 대통령이 되시고, 그 다음해인 64년에 제가 태어난 거니까요. 제 이름도 박정희를 뒤집은 거예요. 아버님한테 제 이름을 어떻게 지으셨느냐고 여쭤봤더니 저희가 희자 돌림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그 때 돼서, 그걸 뒤집어서 이름을 지셨대요.
 
박정희 시대는 국가주의 시대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국가주의의 핵심은 충과 효라는 이데올로기거든요. 그래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자 이것이 청소년기 때, 유년기 때 모든 내 신념의 다입니다. 초등학생 때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가도 국기하강식을 하면 태극기를 향해서 딱 섭니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부터 국기 내려오는 것을 보며 “저 태극기와 국가를 위해서 나는 내 목숨을 바칠 수 있어” 이러면서 컸어요. 아마 내 후에 세대는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되겠다는 지향을 가지게 됐는데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 안 좋은 독서를 하게 됐어요. 안 좋은 독서라는 건 농담이고, 한국사 이야기를 읽다가 고려 말 최씨 무신정권 70년사를 읽게 됐어요. 고려 말에 얼마나 많은 노비들이 반란을 합니까. 너도나도 개나 소나  다 나라를 위해서 나라를 국태민안 해보겠다고 정권을 잡고, 또 쿠데타를 해요. 그런데 최씨 무신정권이 70년을 가는데 그 때 딱 들었던 생각이 이렇게 해서 권력을 잡으면 그 시절에도 양반과 상놈, 노예가 있을 텐데,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언제 깨지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무조건 내가 군대를 가는 것이 답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박 전 대통령처럼 총을 들고 와서 나라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고려 말 최씨 무신정권을 보면 그게 답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박 전 대통령이 자기 심복에게 총 맞는 것을 보면서, 자기 부하한테 총 맞는 사람은 안 좋은 것 같더라고요.
 
 
이야기 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책을 상당히 많이 읽으셨던 것 같아요?
 
어머님이 책을 많이 사주셨어요. 어렸을 때 시골에서 계몽사이 소년소녀 동화집이라고 50권짜리 시리즈를 사주셨는데, 그걸 하나씩 빼서 읽는 재미가..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떻게 할까 싶어 너무 너무 아까운거에요. 제가 지금도 다독을 못하는데, 한 줄을 읽고 나면 그 한 줄의 내용과 관련해서 너무 많은 생각이 드는 거에요. 메모를 하거나 노트를 하다보면 책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어요. 예를 들어 클린턴의 자서전에서 클린턴이 자기 딸 첼시의 졸업식에서 할 연설문 작성과정을 본다고 하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어렸을 때부터 연설문을 만들었을까? 클린턴이 연설문을 작성하는 방법과 태도는 어디서 왔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다보면 책 한 권을 끝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제가 다독은 못하는 편이고, 제 위로 형님과 누님이 계시는데 저 보다 책을 더 많이 읽으셨어요.
 

고등학교 당시 그럼 어떻게 대학교 형들이랑 어울리게 돼셨나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 때 제 형님이 고3이었고 제가 고1 이었어요. 그 때 광주항쟁이 일어나고, 제가 고등학교 들어가자마자 봤던 책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 김학준 교수의 ‘러시아 혁명사’, 그리고 신일철 교수가 번역한 ‘리슨 양키’같은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 80년에 첫 번째 고등학교에서 계엄사에 잡혀가 제적당하고, 가을걷이를 하러 집에 내려갔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너 죽고 나 죽자고 그러시는 거에요. 고등학교를 다시 가래요. 그래서 싫다고 했더니 안그러면 아버님이 죽을 거래요. 어떻게 해요 내 이념이 충효인데. 예 알겠습니다 하고 서울 대방역에 있는 성남고등학교를 갔어요. 거기서 딱 3개월 만에 부모님을 집요하게 설득해서 교무실로 모시고 가 자퇴도장을 찍었어요.
 
나오고 나서 퇴계로 5가에 박형규 목사님이 있는 제일 교회에서 저희 누님이 형제야학이라는 곳의 선생님이었는데, 거기서 청계피복 노동자들이랑 서로 교류를 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갖다가 가만히 보니까 혁명을 해야겠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거라. 나는 노동자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냐. 17살 먹은 그냥 완전 백수인거에요. 몇 개월 놀다보니 내 인생이 너무 황당한 거예요.  트로츠키가 14살, 레닌이 16살에 혁명서클에 가입했다고 러시아 혁명사에 쓰여 있는데, 그래서 나도 혁명서클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혁명서클이 없는 거야.
 
그래가지고 제일교회 야학에 서울대 79학번 형들이 있었는데, 그 형들 중 한 명이 지금 한겨레신문에서 대기자 하고 있는 박창식 기자에요. 창식이형한테 혁명서클이 하나도 나를 가입 안 시켜줘 어떻게 해? 물어봤더니 대학을 가래요. 그래서 학생운동 하러 대학교를 갔어요. 검정고시는 어떻게 요행이 붙어서, 학력고사를 보고 철학과에 원서를 냈는데, 합격 발표 나기 전에 고려대 지하서클에 가입을 했어요.
 
왜냐하면 제일교회 야학에 고대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한테 그랬어요. 내가 대학교 졸업장 딸 것도 아닌데 뭐 하러 거길 입학 하냐고. 입학원서를 내라고 하니까 내보지만, 이번에 떨어지면 거기서 그냥 서클에 가입합시다. 뭣 하러 시험을 또 봅니까. 그래가지고 합격자 발표 전에 이미 서클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정말 언더생활만 했죠.
 

고려대 철학과에 들어가셨는데, 철학과를 선택하게 되신 배경이 있다면?
 
가장 취업의 문이 열려있는 과에요. 왜냐하면 철학과 12학년 때 설날 제사를 지내러 왔는데 집안 아저씨들이 철학과 나오면 어디로 취업하냐면서 미아리 그 쪽으로...(웃음) 그런데 철학과 들어가 보니까 철학과 출신이 안가는 데가 없어요. 그래서 취업의 문이 가장 넓은 곳이 철학과에요.
 

감옥을 두 번이나 가셨어요, 감옥에 가시게 된 원인과 생각나시는 일화가 있다면?
 
언더서클 간에 분열과 대립이 많았어요. 학생운동을 하다 두 번 감옥을 갔는데. 두 번째 감옥에 갔을 때 남산 안기부에서 한 달 동안 지하실에 있었어요. 우리 자취방에 있다가 민노당 사무국장 이었던, 1년 후배인 장원섭이란 친구와 잡혀갔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남산에 있는 안기부. 남산 한옥마을 있는 그 뒤에요.  지하터널 해서 방에 딱 들어갔는데 거긴 사면이 다 스티로폼이에요. 쩌(부딪쳐)죽지 말라고. 책상이 하나 있는데 사면이 다 고무로 둘러싸여 있어요. 쩌(부딪쳐)죽지 말라고. 참 배려가 많으세요. 갔더니 “옷벗어” 그러는 거예요. 옷을 벗었더니 빨가벗겨놓고 한참을 두들겨 패더라고요.
 
그리고 벽을 타래요. “너 임마 빨갱이 놈이잖아. 이북에 올라가. 너 같은 놈은 휴전선에 걸쳐놓고 죽여도 넌 월북하다 죽은 걸로 만들면 돼” 정신없이 맞고 났더니 고무신짝 하나랑 군복을 주고 입으라고 하더라고요.

참 근데 남산 안기부에서 내가 안 좋은걸 받았어요. 그 고무신에 무좀이 있어가지고 아직도 내가 발가락 양말을, 그 때 걸린 무좀이...
 
 
그 때 한 달 만에 철저히 패배했어요. 폭력에 의해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팩트TV에서 이것도 처음 이야기 하는데. 그 때 친구들 세 명의 이름을 실명으로 불었어요. 불었는데...그 친구들은 나를 용서해 줄 것 같아서 불었어요....그 때 뭣 때문에 졌냐면 친구 이름을 불어서 진 게 아니라...맞고 이런 죽음의 공포보다 더 나를 괴롭혔던 건 4명이 2교대로 와서 저한테 질문을 해요.
 
니가 혁명을 해서 권력을 잡았다 치자. 그럼 넌 농업정책을 어떻게 할 건데?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면 넌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할 건데? 국가 운영의 모든 영역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대는데 나는 거기에 대해 답이 없더라고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전두환, 파쇼, 반미라는 단어밖에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완전히 무너져버렸어요. 나같은 사람은 집권하면 안되는 거구나. 저 놈 하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수준을 가지고 내가 무슨 혁명을 하자고 했을까. 참 부끄러웠어요.
 
사실 이인영이나 오영식 있을 때 전대협 1, 2기 간부들은 제가 다 교육시켰거든요. 그런데 교육시켰다고 하는 놈이 거기 가서 그 질문 앞에 무너져버리는 거예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 때 결심했어요. 난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절대 앞으로 안나선다. 대신 내가 이 대열을 떠날 순 없으니 뒤에서 돕기만 하자. 그래서인지 그 전까지는 골목대장이었는데, 이후로는 철저하게 돕는 사람의 입장으로만 살았어요.
 
감옥에 있는 동안 공부를 많이 했어요. 공부라는 것이 정보의 양이 많아지는게 아니라, 어떤 문제에 대한 자기의 고민이 깊어지는 게 공부 같아요. 김치를 놓고 보면, 이 김치는 젓갈을 뭘로 썼을 까? 어떤 방식으로 간을 내 배추를 절였을 까? 김치그릇 하나를 보더라도 사실상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다 보이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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