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 팩트9뉴스】 엄동설한 오는데 송파 세 모녀법 어디로
진행 : 정운현 보도국장 겸 앵커
정운현
저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후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이 땅의 서민이라면 누구나 닥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세 모녀’는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사회복지의 허술한 시스템은 그들을 지켜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사회적 무관심과 좌절감을 느끼며 삶에 대한 희망을 스스로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세 모녀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갖고 있던 전 재산인 현금 70만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메모를 남기고 두 딸과 세상을 등졌습니다. ‘팩트9’ 오늘 집중기획은 일명 ‘송파 세모녀법’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다시는 송파 세모녀와 같은 비극을 막자며,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 ‘1호 법안’으로 발의했지만, 8개월이 되도록 허공만 맴돌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인지 정락인 부장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정부장, 어서오세요! 오늘 세 모녀가 살았던 송파구에 다녀왔다면서요?
오늘 세 모녀가 살았던 송파구에 다녀왔다면서요?
정락인
네, 세모녀는 석촌동 단독주택 반지하에 살았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갔을 때 세 모녀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주민들은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나봉숙 송파구의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전화 인터뷰 - 나봉숙 송파구의원
정운현
네, 송파구는 나름대로 변화가 있었군요. ‘세 모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각종 대책이 나오지 않았나요?
정락인
그렇습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비난을 의식했는지 복지 사각지대 일제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세 모녀 자살이 가슴 아프다”고 했고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도 법제도를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특히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창당 후 ‘1호 법안’으로 ‘송파 세모녀법’을 발의 했습니다. 이렇게 정부, 정당, 언론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자며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언론들도 이와 관련한 기획기사를 연일 쏟아냈습니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과 새정치민주연합이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영상을 이어서 보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새정치민주연합 법안 발의/세 모녀 사건 관련 언론 보도
정운현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과 언론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요. 이 정도면 다시 ‘세 모녀’ 같은 비극이 없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정락인
맞습니다. 당시 제대로 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난 3일 인천에서 생활고를 겪던 일가족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또 발생했습니다. 인천 가족도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자 결국 죽음을 선택했는데요. 정부는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각지대를 찾아나선다고 했으나 비슷한 형태의 대책이 재탕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 모녀가 자살한 후 약 8개월 만에 똑같은 일이 반복됐던 것입니다.
정운현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송파 세모녀법’은 왜 지지부진한 것입니까?
정락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송파 세모녀법’에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수급권자의 발굴 지원법 제정안’을 묶었는데요. 이를 ‘송파 세모녀 3법’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발의하고 모든 의원이 서명할 정도로 ‘전당적 차원’에서 추진했습니다. 당시 두 공동대표가 간담회까지 열었고, 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안철수 대표는 “이 법안은 4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운현
정말 이해가 안 되는군요. 아니, 대표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발의하고, 소속 의원 전원이 찬성했는데, 진전을 보지 못했다니, 야당이 무능해서 입니까?
정락인
여론과 표를 의식한 ‘반짝 민생정치’ 때문입니다. 여야는 ‘세 모녀 자살’ 등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사건이 일어날 때만 ‘민생을 살피겠다’고 하는데, 그 뒤에는 ‘나 몰라라’하는 ‘비정한 정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세월호 사건을 핑계로 대고 있지만, 여론의 시각은 따갑기만 합니다. 김한길 의원 측 얘기를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허남동 김한길 의원 보좌관
정운현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고 말하는군요. 사실이 그런 것은 아닌가요?
정락인
물론 지난 4월 국회 상임위 논의를 끝으로 세월호 사건과 지방선거, 국회파행이 겹치면서 법안처리에 차질을 빚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뒤 새정치민주연합의 행보를 보면 꼭 그게 원인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4월 임시국회와 7월 임시국회, 그리고 9월 정기국회에서 ‘송파 세모녀법’에 대한 적극적 추진 의사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기국회에서도 세월호 특별법에 유병언법, 정부조직법까지 끼워 넣어 합의했지만 ‘송파 세모녀법’ 등 복지 법안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정운현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은 어떻습니까?
정락인
정부와 새누리당도 새정치민주연합을 무조건 비난할 처지는 못 됩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지난 8월 우선 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법안 19개 중에는 관광진흥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 외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도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이 법안이 기존 기초생활보장제도 선정기준과 거의 차이가 없거나 보장 수준을 오히려 낮춘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운현
여당은 ‘세모녀법’에 찬성하고 있는 것입니까?
정락인
아닙니다. 여당과 야당은 ‘부양의무자’에 사위와 며느리를 포함시킬지 말지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포함시키지 말자고 하는 반면, 새누리당은 포함시키자고 해 엇갈리고 있습니다.
정운현
여당이 반대하는 이유가 뭡니까?
정락인
추가 비용 때문입니다. 야당안 대로 하면 수급대상자에 21만 명이 더 늘게 되지만, 연간 1조 4천억 원의 예산도 더 들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여당은 비용부담이 커진다며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보건복지위 예산소위가 열리고 있는데, 여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운현
정부에서는 올해 생계지원 대상자를 늘리고 2000억원이 넘는 예산까지 편성했다는데, 국회 통과가 안 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정락인
네, 현재 기초생활 수급자는 140만명이며, 정부는 대상자를 이보다 40만명이 많은 180만명으로 늘리고, 관련예산도 2,300억원을 책정했습니다. 만약 올해 안으로 통과되지 않으면 불용예산, 즉 ‘쓰지 않은 예산’으로 처리돼 그대로 국고로 환수됩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시겠습니다.
▶ 보건복지부 관계자 인터뷰
정운현
참 답답하군요. 정부가 책정한 2,300억원도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을 구제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데요. 그마저도 혜택을 못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군요. 곧 엄동설한 겨울이 닥칠 텐데,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이들이 정말 국민을 위한 정부, 국민을 위한 국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오후에 서울의 대표적 쪽방촌으로 알려진 동자동을 다녀왔다면서요?
정락인네 그렇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죽음마저 서럽다는 쪽방촌 사람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이곳에서는 홀로 지내다가 죽은지도 모르는 ‘고독사’가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현장을 직접 보시죠.
▶ 동자동 쪽방촌
정운현
참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합니다. 정치권은 국민을 살리기 위한 정치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정치권을 보면 국민을 살리는 게 아니라 국민을 죽이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한 표 주십시오”라고 구걸하지 말고, 정말 국민이 원하는 게 뭔지, ‘민생 정치’를 펴야 할 것입니다. 제3의 ‘송파 세모녀’가 나오기 전에, 다시 한번 정부와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정 부장,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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