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집중기획-원세훈 재판, 보이지 않는 손 있나?
정운현
여러분! 지난 대선에서 논란이 됐던 ‘국정원 댓글사건’을 기억하고 계시는 지죠? 이 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됐었죠. 그러나 올해 9월 1심에서 원 씨는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또 당시 이 사건의 수사를 축소, 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역시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이 면죄부를 준 셈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의 판결을 동일한 재판부의 동일한 판사가 했다는 사실도 아십니까?
오늘 집중기획에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김현정 기자! 사건개요부터 먼저 설명해주세요.
김현정
네, 원세훈과 김용판은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의 주역들입니다. 지난 9월 11일 내려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1심 무죄, 마찬가지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1심 무죄선고. 모두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형사 21부 이범균 부장판사가 담당했습니다.
정운현
한 재판부의 동일한 판사가 다른 두 사건을 모두 판결하는 경우가 드문 일인가요?
김현정
꼭 그렇지 많은 않은데요, 문제는 이범균 부장판사가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사건들의 판결을 전담했다는 것입니다.
정운현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들이죠?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이범균 부장판사 배당 사건
김용판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축소?은폐 혐의 무죄
원세훈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 불법후원금 수수 벌금 700만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유우성 무죄
채동욱 전 검찰총장 내연녀 임여인 사건
朴 대통령 비선조직 ‘만만회’ 폭로, 박지원 의원 사건
정운현
모두 굵직굵직하고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있었던 판결이긴 하네요.
김현정
예. 이렇게 한 재판부에 그것도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정치적 논란 꺼리가 되는 사건들이 몰리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곽노현 전 교육감도 원세훈 판결 이후 SNS을 통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김현정
성남지원의 김동진 판사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고사성어 ‘지록위마’를 예를 들어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정운현
그런데 왜 이 사건들이 한 재판부에 몰리는 겁니까?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김현정
바로 사건전담재판부 구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범균 부장판사가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 21부는 선거부패 전담 부서입니다.
정운현
재판부의 사건배당은 무작위 전자 배당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김현정
2010년도 2월에 정해진 대법원의 ‘선거범죄사건의 신속처리에 관한 예규 제2조’에 의거해,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업무분담에 관한 사무처리 지침에 형사 21부와 27부를 선거전담 부서를 정했습니다. 그 중에서 21부는 선거부패를 담당하고 27부는 선거경죄를 담당합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전화인터뷰를 했는데요, 화면으로 보시죠.
▶ 서울중앙지방법원 김재원 공보 판사와 전화 인터뷰
정운현
선거경죄는 뭐고 선거부패는 뭔가요?
김현정
선거는 아시다시피 선거 범죄고, 부패는 부패 담당이고, 경죄는 가벼운 죄를 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거에서 문제가 되는 사건들은 금품수수 같은 부패를 달고 옵니다. 원세훈, 김용판 사건도 마찬가지고요.
정운현
선거부패 전담부서를 두고 하나의 재판부가 담당한다면, 금품수수 같은 사건과 경합된 선거 사건의 경우는 한 부서에 배당되는 게 뻔한 거 아닌가요?
김현정
그런데 선거따로 부패따로, 선거따로 경죄따로 해서 경합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선거 전담부는 21부와 27부 두 개의 부서고, 랜덤으로 배당하다보니 이범균 부장판사가 처리하는 21부에 논란이 된 판견들이 배당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전담재판부를 구성한 자체가 문제입니다. 선거부패 전담부 시스템을 통해 사실상 특정 재판부에 사건이 몰리게 하는 의도인데요. 이는 사건 배당을 공평하게, 예측불가능하게 한다는 당초 취지가 무력화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전직 판사출신인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습니다. 서기호 의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입장을 차례로 들어보시죠.
▶ 서기호 의원 인터뷰 영상
▶ 서울중앙지방법원 전화 인터뷰
정운현
사건 배당이 사법 판결에서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김현정
현직 판사들과 전직 율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현재 법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사건 배당을 꼽습니다. 대법원에서도 소부, 어느 부에 배당되고 주심 대법관이 누구냐가 중요한 문제인거죠. 하물며 대법원이 이런데, 하급심은 더 합니다. 예전에는 이 사건배당을 주사위를 던져서 했는데, 요즘은 전자 방식으로 배당을 합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전담재판부 구성은 이런 취지들을 무력화 시킨 것이죠. 악용할 경우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의 의도를 맞춰줄 사람을 그 자리에 보내면 판결도 원하는 대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정운현
그렇다면 판결하는 자리에, 누가 오느냐가 문제라는 건데요. 이범균 부장판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김현정
이범균 부장판사는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부산지법 판사로 처음 임용됐습니다. 그리고 2005년과 2006년에 지금의 대법원장인 양승태 당시 대법관의 재판연구관을 지냈고요.
정운현
양승태 대법관 재판연구관을 지냈다고요? 재판연구관은 대법관의 분신격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까?
김현정
그렇습니다. 또 양승태 대법원장은 등산 매니아로 알려져 있는데요. 언제부터인가 이범균 부장판사가 양승태 대법원장의 주말 산행을 수행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운현
대법관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법원행정처 경력은 모두 사법부 엘리트 코스로 알고 있는데요. 양승태 대법원장의 대법관 시절, 재판연구관을 지낸 판사가 현 정권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의 전담판사로 왔다구요? 의혹의 시선을 던질만 하군요.
김현정
물론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인사권과 업무분장은 법원장의 권한입니다. 그런데 이범균 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로 올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지금의 황찬현 감사원장이었습니다. 차관급이던 황 원장이 그해 10월 갑자기 국가 의전서열 7위인 감사원장으로 영전된 점도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정운현
2009년 신영철 대법관 사건으로 법원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이번 건에 대해 김동진 판사 외에 사법부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는 없나요?
김현정
판사들이 자기얼굴에 침 뱉기라고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대놓고 지적은 못하겠죠. 하지만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국가 내란음모죄 사건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처럼, 이 또한 항소심에서 바뀌지 않을까 하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라도 사법부 권위를 지키겠다는 뜻이겠죠.
정운현
모든 걸 의혹으로 보는 것도 올바른 언론의 자세는 아니지만, 이렇게 명확하지 않은 사건들을 지나치는 것도 잘 못 된 자세입니다.
김현정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사법부 힘의 근원은 독립성인데, 독립성을 스스로 흔드는 판결들이 잇따르고, 또 충분히 의혹을 가질 만한 구도를 만들어 놓은 것은 흔들리고 있는 사법정의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운현
예, 잘 알겠습니다. 김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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