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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백범家의 후예들, 왜?
등록날짜 [ 2014년11월05일 18시24분 ]
팩트TV 보도편집팀
 


【팩트TV】 집중기획-침묵하는 백범家의 후예들, 왜?
 
정운현  
오늘 <집중기획>에서는 최근 논란이 됐던 백범 김구 선생을 둘러싼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백범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분으로, 건국훈장 1등급을 받은 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백범을 두고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없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이 있어 논란이 됐었지요. 자세한 얘기는 팩트나인의 정락인 부장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정 부장, 어서 오세요. 오늘 얘기의 요지는 뭔가요?
 
정락인 
예, 최근 KBS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이인호 KBS 이사장이 백범 김구 선생을 두고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가 아니다”라고 해서 파문이 일었습니다. 먼저 이 이사장의 발언을 들어보시죠.
 
▶ VCR. 이인호 국감발언 영상 
▶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일반 시민과 초등학생 인터뷰
 
정락인
오늘 얘기의 핵심은 백범 가(家)의 후손들 얘깁니다. 앞서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이명박 정권 이후 박근혜 정권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 선생에 대해 부당한 비방과 폄훼 발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범가의 후예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범 후예들은 백범을 두고 ‘건국 공로자가 아니’ 라고 폄훼해도 소송은 물론 성명서 한 장 내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정운현
그러게요, 뭔가 항의 같은 게 있을 법도 한데요. 납득하기 어렵군요. 저 같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는데요.
 
정락인 
우선 이와 관련한 언론보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 백범김구 기념관 홈페이지도 뒤져 봤습니다만, 이런 내용을 담은 성명서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백범가의 침묵을 이해하려면 먼저 백범의 후손들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범은 인(仁), 신(信) 두 아들을 뒀습니다.
 
정락인
장남 인은 1918년생으로, 중국에서 부친을 도와 항일투쟁 활동을 하다가 해방되던 해인 1945년 3월 중경에서 폐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28세였습니다. 요절한 것을 두고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1990년 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는데요, 현재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정락인
장남 인의 아내는 안미생인데요, 안미생은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정근의 딸입니다. 따라서 백범과 안중근 가문은 서로 사돈인 셈이죠.
 
정운현
두 번째(혹은 오른쪽) 사진에서 백범이 안고 있는 여자아이는 장남 인의 딸 효자군요. 오른쪽에 선 사람은 차남 김신이구요. 안미생과 그의 딸 효자는 해방 후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아는데요.
 
정락인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몇 군데 알아봤습니다만,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더군요. 이번에는 차남 김신에 대해 좀 알아보겠습니다. 차남 신은 1922년 중국 상해에서 출생했습니다. 신이 2세 때인 1924년 모친 최준례 여사가 병으로 별세했는데요, 지금 화면에 나오는 사진은 최 여사 장례식 후 백범 일가가 함께 한 모습입니다.

정운현
자세히 보면 저 묘비는 전부 한글로 돼 있습니다. 심지어 연도도 한글 자음으로 표기돼 있는데요, 독립 운동가이자 국어학자인 김두봉이 썼다고 하더군요.
 
정락인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왼쪽 끝에 서 있는 차남 신은 올해 93세로 생존해 있구요, 현재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정락인
차남 신은 공군 장성 출신입니다. 중화민국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해방 후 공군장교로 임관해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였으며, 공군본부 작전국장, 공군참모총장 등을 지냈습니다. 하나 눈여겨 볼 점은 공군참모총장 시절인 1961년 박정희 등이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자 그는 이에 가담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지냈습니다.
 
정운현
이 사진은 5월 16일 쿠데타 당일 오후 육군본부에서 긴급소집된 혁명군 소속 각 군 지도부 회의장면이군요. 둥근 원안의 인물이 당시 김신 공군참모총장, 오른쪽 정면에 장도영 육군참모총장, 그리고 왼쪽으로 쿠데타 주동자 박정희 소장의 모습이 보이는군요.
 
정락인 
쿠데타 이듬해인 1962년 김신은 공군 중장으로 예편했는데요, 
이후 박정희 정권 하에서 자유중국 대사, 교통부장관, 유정회 국회의원, 국회 농수산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백범 차남 김신의 주요경력
 - 제6대 공군 참모총장(1960) 
 -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1961) 
 - 공군 중장 예편(1962) 
 - 자유중국(대만) 대사(1962) 
 - 제21대 교통부장관(1971) 
 - 제9대 국회의원(유정회, 1976)
 - 독립기념관 초대 이사장(1986)
 - 백범김구기념관 관장(2002~2014)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2000~현재)  
 
정락인
아시다시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북 문경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다가 만주로 건너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만주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중위로 8.15 해방을 맞았습니다. 이런 경력으로 인해 박 전 대통령은 친일파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다시 말해 백범의 차남이 친일파 박정희 밑에서 요직을 지낸 셈입니다.
 
정운현 
차남은 그렇고, 백범의 손자들은 어떻습니까?
 
정락인
차남 신은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습니다. (김진, 김양, 김휘, 김미(여)) 이 사진은 1996년 6월 26일 백범 47주기 추모제 때 김신 장군과 그의 자녀들이 함께 한 모습입니다.
 
정락인
김신의 아들, 즉 백범의 손자들을 살펴보면요, 장손 김진은 개인사업을 하다가 김대중 정권 시절인 1998년 대한주택공사 감사로 발탁됐는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소 백범을 흠모해 이 같은 특혜를 베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진 전 주택공사 사장
 - 1949년 서울 출생
 -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졸업 
 - 개인사업(동서통상 사장) 
 - 대한주택공사 감사(1998) 
 - 대한주택공사 사장(2003)
 - 뇌물수수 혐의 구속(2004)
 - 징역2년에 추징금 1억8천만원 선고  
 
정락인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에 김진은 주택공사 사장으로 다시 영전했습니다. 김진은 주택공사 하도급업체로부터 1억6천 여 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이듬해 검찰에 구속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 법원은 김진에 대해 징역2년에 추징금 1억8천68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정운현 
백범의 장손으로서 백범 얼굴에 먹칠을 한 셈이군요. 둘째 손자 김양은 어떻습니까?
 
정락인
그 역시 특혜를 받은 셈입니다. 
김양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8월 상하이 총영사로 임명돼 근무하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국가보훈처장으로 영전했습니다.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
  - 1953년 대구 출생
  - 공군장교 복무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1975)
  - 시티뱅크 서울지점 근무
  - 유럽 우주항공 방산회사 수석 고문
  - 주 상하이 총영사(참여정부)
  - 국가보훈처장(이명박 정부)
 
정운현 
말하자면 김양은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정권에서 고위직을 맡았군요.
 
정락인 
그렇습니다. 특히 김양은 이명박 정권 초기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고 시도할 당시 국가보훈처장을 지냈는데요, 당시 직책 때문인지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MB 정권 하에서 보훈처장을 지낸 것을 두고 당시 독립운동가 사회에서는 말들이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정운현
그 무렵 제가 개인 블로그에 ‘김양 보훈처장은 사표를 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그런 칼럼을 썼겠습니까? MB 정권에서 임정과 백범이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데 손자라는 자가 그 밑에서 국가보훈처장을 하고 있느니 그게 말이 될 소립니까? 김진, 김양 말고 다른 손자녀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정락인 
셋째 손자는 별다른 공직을 맡은 경력이 없습니다. 다만 손녀인 김미 씨의 경우 남편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김미의 남편, 즉 백범 손녀사위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동생이자 빙그레 전 회장인 김호연 씨입니다. 김씨는 현재 김구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정락인
저 휘호는 백범이 서거한 해인 1949년 1월 1일 쓴 것으로, 당시 주한 미 대사관 문정관이던 고(故) 그레고리 헨더슨에게 써준 것입니다. 지난 2002년 백범기념관 개관을 기념하여 헨더슨의 부인이 이 휘호 원본을 백범기념관에 기증했죠. 왼쪽 끝이 김호연 김구 재단 이사장이고 오른쪽 끝이 그의 아내이자 백범의 손녀 김미 씹니다. 가운데는 스티븐스 전 대사와 김신 장군이구요.

정운현
김호연 이사장은 어떤 인물이죠?
 
정락인 
김호연 이사장은 1955년 충남 천안 태생으로, 서강대 무역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빙그레 상무이사를 거쳐 1992년부터 2008년까지 빙그레 회장으로 근무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서강대 인맥’으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경선캠프 총괄부본부장과 중앙선대위 종합상황실 부실장을 지냈습니다.
 
김호연 김구재단 이사장
 - 1955년 충남 천안 출생
 - 서강대 무역학과 졸업
 - 빙그레 회장(1992~2008)
 - 서강대 총동문회장(2004) 
 -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 김구재단 이사장(2013~현)
 - 18대 대선 박근혜 후보 측 경선캠프 총괄부본부장/ 중앙선대위 종합상황실 부실장
 
정운현 
김신 장군은 5.16 쿠데타를 돕고서 박정희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냈는데, 그의 자녀 가운데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큰 공을 세운 셈이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락인 
예, 그렇습니다. 백범 가의 후예들이 대를 이어 박정희 일가에게 충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박근혜 정권에서 ‘건국절’을 다시 추진하고, 또 고위인사가 백범을 폄훼하는 모독 발언을 해도 반박이나 항의는커녕 다들 침묵하고 있는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정운현
지금 화면에 백범 가문과 박정희 가문의 관계도가 나왔군요. 제 개인 생각입니다만, 백범이 저걸 봤으면 지하에서 통곡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 대해 백범 측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정락인 
백범김구 기념관의 이남헌 사무처장과 전화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백범김구 기념관의 입장을 직접 들어보시죠.
 
▶ VCR. 백범김구 기념관 사무처장 녹취 
 
정운현 
역사학계나 독립운동 관련단체의 의견은 어떻던가요?
 
정락인 
‘효창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박기서 회장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선택 교수의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함께 보시죠.
 
▶ VCR. 박기서 회장 인터뷰
▶ VCR.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선택 교수 인터뷰
 
정운현
얘기를 들어봐도 백범 후손들의 처신이 온당치 못하군요. 엄밀히 말하자면 백범 후손들도 직업이나 정당 지지의 자유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쳐도 이 경우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군요.
 
정락인 
예, 그렇습니다. 그들도 특정 정당에 소속되거나 또 지지할 자유는 있습니다만, 대표적 독립운동가 가문인 백범가의 후예들이 친일 전력의 권력자를 추종한 것은 아무래도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이들이 조상을 욕보이고 있다는 비난도 없지 않습니다. 
    
정운현
참으로 딱한 노릇이군요. 그런데 이런 경우가 백범 가문뿐인가요?
 
정락인 
아닙니다. 더 있습니다. 우선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 씨를 들 수 있는데요, 윤 씨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으며, 지난 9월 제10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됐습니다.

정운현
윤봉길 의사는 백범이 상해임시정부에서 조직한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커우공원 의거의 주역이죠. 안중근 의사, 이봉창 의사 등과 함께 항일 의열투쟁의 상징으로 꼽히는 분입니다. 혹시 그런 사례가 또 있습니까?
 
정락인 
네, 청산리 전투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을동 씨를 들 수 있는데요,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처음 배지를 단 김 의원은 현재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운현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에서도 역사왜곡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8.15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음모입니다. 정확히 말해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건국됐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일제 강점하여서 임시정부 형태를 유지하다가 해방 후인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임시정부가 건설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근래 들어 대한민국의 뿌리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정부의 상징인 김구 선생을 폄훼, 모독하는 작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역사관에 뿌리를 둔 몰역사적인 행각으로 지하의 애국선열들에게 부끄럽고 죄송하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조상을 욕보이고 있는 백범 가(家) 후손들의 처신에 대해서도 한 마디 지적해두는 바입니다. 
정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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