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북한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내부 얘기가 아니라 외부 국제사회와의 접촉을 두고 하는 얘기다. 혹자는 ‘11월 대격변설’을 얘기하기도 하는데 조목조목 따져보면 허황한 얘기만은 아닌 듯싶다. 근자에 북한은 중국을 제외한 주변 강대국들과 전방위 적으로 통 큰 외교를 펼치고 있다. 내부사정 때문인지, 아니면 춘삼월 호시절을 만난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전례 없던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북한의 일본, 미국, 러시아, 남한과 교류(접촉) 실태를 보면 그 실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어찌 보면 이같은 움직임은 각개 행동인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어찌 보면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최근 북한의 대외 역량이 강화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면 한국은 초라하리만치 국제적 위상이 쪼그라들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등 북한 실세 3인방이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가를 빌미로 돌연 방남했다. 이날 황병서와 같이 방남한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겸 노동당 비서,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 등 3인은 그야말로 북한의 실세 중의 실세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체류기간동안 대통령 빼고는 남측의 고위인사들을 두루 만났는데 마치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남한 땅을 휘젓고 갔다. 그럼에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들의 방남을 “아시안게임의 가장 큰 성과로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한다.”며 반겼다.
다음은 일본과의 관계.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22일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둘러싼 북한의 조사상황 청취를 위해 실무 당국자를 27일 평양에 파견키로 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30일까지 나흘간 북한에 체류할 예정인데 이 건과 관련하여 일본의 당국자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2004년 10월 이후 10년만이라고 한다. 앞서 북한은 지난 7월 4일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해 피랍자 조사작업에 착수하였고, 이에 일본은 미국과 상의도 없이 독자적으로 대북제재 일부를 해제한 바 있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는 그간 북일 수교의 최대, 최후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국내문제 해결의 한 방편으로 이 문제에 적극성을 보이면서 사태는 급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양국 간에는 이 문제 해결의 한 수단으로 대일청구권 문제도 이미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단의 성과 여부에 따라 아베 총리의 방북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벌써부터 긍정적인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럴 경우 북일 수교는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특기할만한 일도 하나 있다. 최근 북한 체육계의 거물로 통하는 박명철(73) 전 체육상의 등장이다. <노동신문>은 22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연풍과학자휴양소 현지지도 소식과 함께 박명철의 사진을 실었다.
약 10개월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박명철은 일본 프로레슬링의 대부 역도산(본명 김신락)의 사위인데 그는 2009년에는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참사로도 활동했다. 박명철의 등장은 북일 관계에 음으로 양으로 청신호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러시아와의 관계. 북한 리수용 외무상이 9월 말 러시아를 방문해 10일간 체류한 바 있다.
일국의 외무장관이 타국을 방문해 11일간 체류하는 경우는 좀체 드문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리 외무상은 러시아를 방문해 라브로프 러시아 외상과의 회담에서 나진-하산 철로 및 나진항 이용방안을 비롯해 추가적인 양국 간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라브로프 외상은 “김정은 위원장이(고 김정일 위원장의) 대러 정책을 계승한다고 표명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며 환영한 바 있다.
▲ 김정은 제1비서가 10월 22일 평안남도의 명승지 연풍호에 완공된 연풍과학자휴양소를 둘러보고 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최근 들어 중국의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해온 북한은 동아시아에서의 발언권을 높이려고 하는 푸틴의 동북아 진출 전략과 맞아떨어져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지로 최근 들어 북-러 간 무역거래가 급증하는 등 교류가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리수용의 러시아 장기체류를 두고 김정은 제1비서의 러시아 방문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이어 미국과의 관계. 북한은 22일 장기 억류해 온 미국인 3명 중에서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56)을 전격 석방했다. 억류한지 6개월 만의 일이다.
과거 미국 특사파견 방식으로 풀어주던 사례와는 달리 북미 간 사전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 미국은 이날 군용기를 평양에 보내 파울을 직접 데려갔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향후 북미 관계의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되고 있다.
이밖에도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지난 9월 하순 15년 만에 UN 총회에 참석했다. 이를 두고 두 가지가 점쳐졌다. 하나는 11월로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의 중간선거를 기화로 대미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북핵이나 인권문제에 대한 막후협상이 그것이다.
일각에서는 리수용의 미국 방문을 두고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석방문제와 관련성이 높아 보인다는 관측이 나왔는데, 이는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미국과의 관계개선, 즉 북미 수교를 위해 이벤트가 하나 준비돼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평양시내 대동강변에 있는 ‘푸에블로호(號) 사건’의 주역인 미국 첩보선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넘겨주기로 북한이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평양에서 푸에블로호를 직접 구경한 사람들에 따르면, 이 배 안에는 사건 당시의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푸에블로호의 간첩행위를 시인한 글귀가 붙어 있다고 한다. 미국으로서는 수치스럽고 또 뼈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들어 북한의 미국, 러시아, 일본 등과의 전방위적 외교 공세는 눈여겨 볼 대목이 한 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북일 수교가 이뤄질 경우 이는 북미 수교의 징검다리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 러시아와의 공조는 중국과의 소원함으로 인해 생겨난 외교 공백을 충분히 메워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로써 북한은 6자회담 당사국 가운데 중국을 제외한 5개국을 주도적으로 주무르게 되는 셈이다.
의미심장한 뉴스는 또 있다. 평양의 관문인 순안공항에 대한 대대적인 확장공사이다. 현재 북한이 짓고 있는 순안공항 2청사 건물은 기존 1청사(건축면적 1,729㎥)보다 7배 이상이라고 한다.
구글어스를 통해 분석한 결과 순안공항 신청사의 건평은 1만 3,050㎡로 파악됐다. 미국의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2청사 완공 뒤에 이곳을 국제선 전용터미널로 사용하고 1청사는 국내선 전용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북한의 전방위, 다각적 외교는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타개하고 내부 체제안정을 위한 고육지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같은 북한의 외교전략이 북한 자체만의 사안으로 끝나지 않고 국제무대에서의 신질서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해관계가 맞물리면 끝없이 이합집산을 하는 국제무대.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속담이 요즘처럼 실감날 때가 없다고 하겠다.
22일 김정은 제1비서는 40일간의 잠행을 끝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그를 둘러싸고 그간 제기됐던 건강이상설 등 각종 의혹은 아침 햇발에 이슬 사라지듯 사라지고 말았다. 북한이 11월에 대격변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추론은 앞서 소개한 것들에 기반한 것으로, 나름으로는 상당한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하겠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남한은 대북삐라 살포를 놓고 설전 중이다. 한심하다 못해 철딱서니 없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운현 팩트TV 보도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