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청천이 그리운 중병 든 사회.-
만성적 불법비리 고질병 치료엔 검찰의 작두 뿐.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황제가 ‘작두’ 3개를 하사했다. 작두를 쓸 수 있는 절대권한과 함께. 작두의 이름은 용작두, 호작두, 개작두, 3가지다. 작두의 용도를 설명해 보자. 흔히 작두라면 농촌에서 소나 가축에게 먹일 여물을 썰 때 쓴다. 퍼렇게 날이 선 작두 아래서 잘려나가지 않는 것이 없다. 작두 아래 인간의 목이 놓인다면 어찌 될까. 내리밟는 순간 목이 잘려 나갈 것이다. 프랑스 혁명당시 명성(?)을 떨친 키로친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설명이 장황했다.
황제가 하사한 3개의 작두의 용도는 어딘가. 개작두는 일반평민용, 호작두는 관리처벌용, 용작두는 황족이 해당되는 작두다. 이들 범법자들에게 가해지는 작두사형은 확실히 야만행위다. 그러나 환호하는 소리도 들린다. 엄정한 법의 집행을 보는 착한 백성들의 박수다. 오죽하면 극형을 보고 박수를 치랴.
케이불 TV에서 방영되는 ‘포청천’이란 영화가 있다. 어느 지인이 말했다. ‘요즘 포청천을 열심히 보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 포청천이 나타난다면 작두 쓰느라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 국민들은 안다. 포청천을 시청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은 분명히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정상이 아닌 국민들의 생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비정상적인 부류의 작두형 대상자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 어느 시대에도 죄와 벌을 있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범죄는 있었고 형벌 또한 존재했다. 참수가 극형이라면 곤장 몇 대는 오늘의 경범죄에 해당될 수 있을까. 범죄는 엄정하게 다루되 공정해야 한다. 공정을 상실하면 법의 권위가 상실됨은 물론 무너진 법의 처참한 모습은 국가의 뿌리마져 뽑아 버린다. 왜 국민들은 법을 우습게 아는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청천을 보면서 공감하는 것은 법의 공정성이다. 법의 공정한 집행을 저해하는 어떠한 압력도 단호하게 거부한다. 우리는 박정희 독재시절 세계 사법사상 찬연(?)히 빛나는 ‘인혁당 사건의 사법살인’을 목격했다. 검찰이나 법원 할 것 없이 아니 국민들 모두가 얼굴을 못들 치욕적인 사건이다. 전두환 이명박 정권하에서 법의 잣대가 얼마나 신축성이 있는지 잘 봤다.
국민이 목격한 ‘사법살인’의 경험은 오늘의 현실에서도 국민들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포청천이 황제의 숙부를 용작두에 올려놓는 형집행에 감동을 하는 것은 비극을 즐기려는 이상심리가 아니라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법관의 양심과 기개의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공정한 법집행이 그리운 것이다.
요즘 국민의 시선은 온통 검찰과 법원에 쏠려 있다. 전에는 아예 기대와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검찰과 법원에 대한 시선집중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혐의’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국가의 기틀을 흔든 범법행위다. 민주주의 국가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에 개입한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국정원의 행위가 명백하게 밝혀져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원전비리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국민에 대한 반역행위다. 원전사고가 발생해서 대한민국이 방사능의 낙원이 되는 경우를 상상해 봤는가. 얽히고설킨 비리의 쇠사슬은 ‘호작두’가 아무리 많아도 모자랄 지경이다. 무슨 낯을 들고 국민에게 절전을 호소하는가.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는 귀가 아플 정도로 듣는다. 그러나 국민의 웃음소리는 얼마나 들리는가.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재산을 빼돌린 재벌들의 범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검찰을 주시하는 이유는 바로 이 사건들이 국가의 기틀을 붕괴시킬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무슨 얼굴로 국민에게 세금을 내라고 한단 말인가. 채동욱 검찰총장이 포청천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국민의 탓인가.
전두환의 아들 전재국이 등장한다. 이명박의 사위가 등장한다. 이명박의 사돈이 등장한다. CJ 그룹에 이재현이 등장한다. 사랑받던 연극배우 윤석화도 등장한다. 이들을 보는 국민의 감정은 어떤 것일까. 가슴이 찢어진다. 찢어진 가슴이 분노로 채워질 때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포청천에게는 좋은 참모가 있었다. 포청천은 참모의 진언을 경청한다. 포청천은 훌륭한 참모가 있기에 위대한 판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포천천의 시대에 국민여론은 어떻게 수렴했을까. 인터넷이 있던 것도 방송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바로 포청천의 열린 귀다. 열린 귀에 바른 정보를 아려주는 것이 참모이며 또한 올바른 여론이다. 포청천에게 진언을 하는 참모들과 참모의 말을 수용하는 포청천을 보면서 다시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는 가슴은 아프다.
왜 이지경이 됐는가. 죄를 짓고도 당당하다. 어디로든지 도망칠수 있는 구멍이 있다고 믿는다. 뇌물이면 해결이 된다고 믿는다. 뇌물의 연결고리가 바로 원전비리다. 언론은 바른 보도를 하지 않는다. 죄를 저지르고도 권력과 재물이 있다고 벌을 받지 않으면 권력과 재물이 없어 없는 죄도 뒤집어 써야하는 불쌍한 국민들의 가슴은 어찌되는가. 포청천이 이 시대에 있다면 작두형의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겠는가. 우리의 언론을 할 말이 있는가.
### 포청천 같은 검찰이 그립다.
국민의 시선을 요즘 뜨겁게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검찰이다. 지금까지 의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는 과거에서 벗어나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국정원장과 경찰 수사 중단 압력을 행사한 김종판 경찰청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이 국민의 최대 관심이다. 대한민국의 법이 제대로 숨쉬고 있는 세상이 되느냐. 아니면 다시 국민의 비웃음속에 부끄러운 검찰로 머무느냐. 지금 포청천이 나타나 물어 본다면 필요한 것은 오직 호작두와 용작두 뿐이라고 국민이 대답하지 않을까 겁이 난다.
시작이 어렵다. 검찰이 서릿발 같은 법집행을 보여 준다면 다음부터는 어느 누구도 죄를 짓지 못할 것이며 어떤 정치세력도 검찰에게 압력을 가해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덮을 수가 없을 것이다. 누가 포청천이 될 것인가. 국민이 기다리고 있다.
죄를 지면 죄에 합당한 벌을 받고 돈 없고 빽 없어서 죄를 받는다는 무전유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이 국민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이 땅의 정의는 없다.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 바로 검찰 손에 달려 있다.
이기명 팩트TV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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