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거울 앞에 모습이 싫다. 깨 버린다. 산산 조각난 거울, 거울 속에 인간은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여기 그대로 존재한다. ‘이게 나라냐.’고 아무리 힐난을 해도 거기 있다. 잊으려 해도 안 되는 나라. ‘이게 나라냐’
‘이게 나라냐’ 수도 없이 듣는 소리다.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나라가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아니라면 사라지는가. 자식이 미워도 버릴 수가 없다. 운명이다. 나라 없는 백성은 그래서 슬프다.
▲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한 달째인 지난 5월 16일, 청와대를 찾은 세월호 유가족과 면담을 나눈 뒤 이들을 위로하고 있다.(사진출처 - 청와대)
지구 상에 어디를 가도 엽전(한국인)은 있다. 그러나 그 옛날 미국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도 엽전이 보기 힘들던 시절, 길을 가다가 비슷한 모습을 동양인을 보고 ‘저거 엽전 아닌가?’ 하자 달려와 덥석 손을 잡으며 ‘네 엽전입니다’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찡했던 기억, 그래서 조국과 동족은 소중한 것이다.
‘이게 나라냐’라면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의 절망은 다양하다. 곤궁한 생활로 해서 받는 생활고도 절망이다. 당연하다. 용빼는 재주를 가졌어도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6·25 때 너무나 배가 고파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먹는 것으로 보이던 때가 있었다. 그때도 끓어오르던 ‘이게 나라냐’ 하는 분노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국민을 속인 정권, 국민을 버린 지도자였다.
■거짓말 하는 지도자
이승만이 국민 몰래 도주를 하면서 서울에 ‘남아 있으라’는 소리만 안 했어도 피난 가서 목숨을 유지할 사람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이란 자가 거짓말 방송으로 시민에게 세월호 애들에게 하듯 ‘남아 있으라’ 사기 친 뒤 도망가고 한강 다리를 댕강 끊어놓는 바람에 시민들은 꼼짝 못 했다. 그때만 해도 한강 다리가 유일했다. ’이게 나라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생겼는가.
전쟁 중에 돈 가진 놈들의 자식들은 군대에 안 갔다. 미국으로 도망쳐서 좋은 대학 다녔다. 그때 총 맞아 죽을 걱정 안 하고 공부한 자들의 자식들이 지금 고관대작 하면서 호의호식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그때 국민방위군으로 끌려간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굶어 죽고 전염병(장질부사, 발진티푸스)에 걸려 죽었다. 방위군이 먹을 군량을 팔아먹은 사령관은 총살당했다. 그때 국민들 입에서 나온 말이 ‘이게 나라냐’ 그로부터 몇십 년을 뚝 떼어 잊어버리자. 그래도 ‘이게 나라냐’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물속에서 죽은 우리 새끼들
멀쩡한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죽였다. 멀리 제주 4·3사건으로 갈 필요도 없다. 거창에서 양민이 학살됐다. 거창 학살뿐이 아니다. 죄 없이 사람의 씨가 마른 마을도 있었다. 국민들이 가장 절망하는 것은 국가권력이나 정치권력에 의해서 국민의 인생이 파괴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독재자에 의해서 국민의 인권이 유린당할 때다.
독재정권에 의해서 목숨을 잃은 박종철·이한열의 죽음 앞에 국민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고 국민의 궐기는 독재정권의 항복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못난 정치, 못난 국민. 지금도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탄식이다. 옛날 타령만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렇다고 잊어야 하느냐. 과거를 잊으면 오늘도 없다. 기억할 것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10월 17일 8시, 대한극장에서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시사회가 열렸다. 가슴이 꽉 막힌 채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충혈된 관객들의 눈. 그들이 얼마나 가슴으로 울었을까. 이종인이 침과 함께 뱉어낸 비수 같은 단어. ‘악마, 개자식들’ 왜 이 말이 이토록 가슴에 남는가.
사람은 언제고 죽는다. 그러나 죽어도 제대로 죽어야 한다. 세월호와 함께 세상을 떠난 우리 새끼들이 어떻게 죽었고, 어른이란 인간들이 어떻게 했으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라는 것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야만 하는데 국민이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한 마디. ‘이게 나라냐’다.
■국민과의 약속에는 면책특권은 없다
지난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앞에 섰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4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목이 메었다. 관료들과 기업을 질타하면서 후속 대책을 끝까지 책임진다고 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눈물을 보면서 비록 아이들이 원통하게 죽었어도 한은 남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이게 나라냐’다.
거짓말은 누가 해도 나쁜 것이다.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면 더욱 나쁘다. 국민이 대통령의 말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대통령을 두려워한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다르다. 신뢰를 잃어버린 대통령의 말은 지나가 버린 바람과 같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일명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보자. 산케이가 어떤 보도를 했던, 그것이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든 모독이든 국민은 ‘7시간의 진상’을 모른다. 청와대가 발표했다고 국민이 믿는 것은 아니다. 왜 믿지 않는가. 국민의 알 권리는 아무도 막지 못한다. 304명의 국민이 죽어가는 마당에 대통령의 7시간 행방을 국민이 모른다면 이 역시 ‘이게 나라냐’고 국민이 물을 것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이 말 한마디로 인간은 얼마나 많은 자기 합리화를 하는가. 누가 신이 되라고 했던가. 사람 노릇을 하라는 것이다. 국민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인간의 발가벗은 추악한 모습을 지겹게 보았다.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양심을 헌 신처럼 버리는 행위를 보면서 조각조각 파괴되어 가는 인간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것이 교훈인가. 대통령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국민에게 한 약속에 면책특권은 없다.
■지옥의 문, 지하철 환풍구
다이빙 벨 영화를 보는 도중에 날라 온 문자. ‘환풍구 붕괴로 16명 사망’. ‘참사공화국’에 또 참사구나. 놀랍지도 않다. 사고를 달고 다니는 나라다. 서울에만도 위험한 환풍구가 5,000여 개나 된다고 하니 어쩐단 말인가. 대로변에 구멍 뚫린 철판이 환풍구다. 지옥을 옆에 끼고 사는 ‘이게 나라냐’
만성이 된 것은 아닌가. 이제 길로 다니지도 못할 판이다. 죽는 것은 국민뿐이다. 지도자들은 국민이 당하는 사고를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있을까.
국민들은 대통령을 비롯한 고관들의 행동을 늘 보고 있다. 그들의 행동 하나, 생각 하나에 국민의 운명이 달려 있다. 그들이 얼마나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지 본능적으로 느낀다. 아무리 입으로는 별의별 소리를 다 해도 국민들은 다 안다. 국민은 경험을 통해서 안다. 눈물이 진실이 아니다. 경험이 교훈이다. 추락하는 대통령의 신뢰가 느껴진다. 도리가 없다.
세월호의 처리를 보면서 국민들의 애국심은 천리만리 도망갔다. 대통령의 눈물이 저토록 거짓말이 되어버린 판국에 국민의 신뢰를 바란다면 염치가 없다. 이제 ‘애국자’는 어버이연합을 비롯해 북한으로 풍선이나 날리는 사람들만 남아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득하다.
환풍기 추락사고의 담당 공무원이 자살했다.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책임감 때문이다. 그 소식을 들으며 내복 바람으로 구조선에 오르는 세월호 선장의 모습이 악마처럼 떠오른다. 다이빙 벨에 충돌하는 해경 고속정은 어떤가. 세월호 재판과정을 통해서 참회하는 인간을 볼 수 없는가.
20조 원을 4대강 물에다 밥 말아 먹고도 히죽거리며 돌아다니는 전직 대통령의 얼굴을 보면서 지지리도 지도자 복이 없는 백성이라고 탄식한다. 너무나 황폐해서 이제는 풀조차 나지 않을 국민의 가슴이다. 왜 그런가. 국민의 자질이 고약해서 그런가. 대통령이 약속을 어겨서 그런가.
국민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희망이 없다. 국민이 '이게 나라냐‘라고 하는데 무슨 희망이 있는가. 그래도 조국은 있다. 우리가 태어나고 우리 새끼들이 살아가야 할 조국은 존재하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72만 원의 빚을 지더라도 이 땅은 조국이다.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암 유발 폐기물이 국내에 들어오고 1,590억을 들인 통영함은 천안함 때도 세월호 침몰에도 전시장 장난감이나 다름이 없었다. 79세의 코미디언이 관광공사 감사로 오고 적십자 회비 안 낸 김성주가 적십자사 총재다. 국민의 가슴에 이렇게 못을 박아도 괜찮은가. 나라가 망하면 자신들은 온전한가.
국민이 진심으로 ‘이게 나라다’라고 느낄 때 국민은 행복하다.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한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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