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세월호 보수단체 ‘서북청년단’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 달린 노란 리본을 철거하려 했으나, 경찰과 서울시청에 의해 무산됐다.
서북청년단 회원 5명은 이날 서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비도 맞고 많이 훼손돼 보기에 좋지 않으니 보관함에 담아 서울시에 전달하려는 계획“이라고 철거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 구국청년단이 지난 28일 노란리본을 철거하겠다며 서울 시청광장에 나섰지만 경찰과 서울시청 관계자의 제지로 무산됐다.<사진출처-일베저장소>
정함철 서북청년단 대변인은 “겨울이 오는데도 진도 앞바다에서 아무 성과도 없이 구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론분열의 중심에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여성위원은 “세월호 노란 리본 이제 지겹다”면서도 “철거하거나 태우자는 의미가 아니라 세월호 침몰 참사를 겪은 아픔을 충분히 국민들이 안고 있으니 한데 모아서 보관하자는 의미라며, ”보관함에 담아서 서울시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서북청년단은 지난 27일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 “지금 세월호 참사를 정리하지 않는다면, 세월호 유가족들은 국론분열의 중심에 영원히 세워지게 될 것”이라며 “이는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참혹한 결과를 양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들은 노란 리본 철거에 나서려 했으나 경철과 서울시청 관계자의 제지로 무산되자 “여기선 못 뗐지만 구국 청년들이 노란 리본을 뗀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며 “(서울광장에서도)꼭 회수할 것”이라고 경고한 뒤 큰 충돌 없이 서울광장을 빠져나갔다.
일베, 노란 리본 철거 두고 찬반 엇갈려
한편, 일베저장소에는 구국청년단의 노란 리본 철거 행위가 오히려 역풍을 맞으면서 국민들의 관심만 환기시켰다는 주장과, 노란리본을 철거했다는 글들이 서로 맞서고 있다.
일베저장소에 닉네임 ‘멋지고훌륭한남자’는 “노란 리본들은 저들의 슬픔과 동정심을 상징하고 유발하는 개체이기에 함부로 떼려 하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거나 유족들의 행동에 힘을 실어주는 악수가 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 일베저장소에 올라온 노란 바람개비 철거 인증사진<사진출처-일베저장소>
또 ‘ytkdjd’라는 닉네임 사용자는 “이미 노란 리본 국민들 식상해 하고 있는데, 다 죽어 가는데 되레 살려주는 결과”라며 “‘권력형 주폭 사건 논점 흐리기’를 도와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닉네임 ‘타락악마’는 다산콜센터에 기륭전자 노조가 금천구 시흥사거리 인근에 걸어놓은 세월호 추모 플래카드를 신고했다고 올렸으며, 닉네임 ‘운지는노운지’는 추모글이 쓰인 노란 바람개비 철거인증사진을 올리는 등 서북청년단에 동조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상실하여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반공단체
제주도 4.3 항쟁에서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 세력을 파견하여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으로 삼았다. 이들은 봉급 없는 경찰 보조 기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을 위하여 갈취와 약탈, 폭행을 무수히 진행하였다.
우익세력의 선봉 역할로, 1947년 3·1절 기념식을 각각 가진 좌우익의 시가행진 중 남대문에서 충돌한 남대문충돌사건을 비롯하여 부산극장사건,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사무실점령사건, 정수복검사암살사건 등 좌익에 대해 테러를 전개하고 대북공작을 하는 한편 경찰의 좌익색출업무를 도왔다.
1947년 4월 지청천(池靑天)이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을 조직하고 기존의 청년 단체들을 통합하자, 대동청년단 합류를 둘러싸고 서북청년회는 합동파와 합동반 대파로 분열되었는데, 합동파는 1948년 9월 대동청년단에 통합되었다. 합동반대 파는 문봉제(文鳳濟)를 위원장으로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고 초기의 서북청년회가 김구(金九) 노선을 지지한 데 대해 이승만(李承晩) 노선을 따랐으나, 1949년 12월 19일 대한청년단에 흡수 통합되었다.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두산백과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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