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원내대표 비교섭단체 연설 전문]
생명존중의 정치, 정의당이 앞장서겠습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존경하는 정의화 국회의장님과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여러분, 정의당 원내대표 심상정입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5일째입니다. 아직도 12명의 실종자들이 차가운 어둠 속에 갇혀 있습니다.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를 개조하겠다’, ‘관피아를 척결하겠다’고 공언을 했고, 정치권에서도 국정조사, 특검, 특별법을 비롯한 여러 정책과 의제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잊혀질까 두렵다’고 절규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동안 우리 정치는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급조된 정책을 쏟아내고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흐지부지되는 염치없는 일을 반복해 왔습니다. 요란하지만 좀체 바뀌지 않고, 성과 없는 공염불 정치로 깊은 정치 불신을 초래했습니다. 어린 목숨을 그토록 희생시키고도 교훈은커녕, 천하에 몹쓸 정치로 다시 국민의 신뢰가 내동댕이쳐질까 솔직히 저 역시 두렵습니다. 사실 ‘유병언법’, ‘김영란법’ 등으로 불리는 세월호 관련법들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관련 법안이 줄줄이 제출되었으나 우리 국회가 방치해 온 것들입니다. 국정조사, 특검 역시 그동안 수없이 많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정의의 위엄과 신뢰를 바로 세운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절규는 말의 성찬만 앞세울 뿐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우리 정치의 책임을 묻는 뼈아픈 물음입니다. 지금은 구체적인 성과로 응답하는 정치, 실질적 변화를 보여주는 정치로 국민의 기대에 답해야 합니다. 국회가 세월호 관련법들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하여 7월까지 반드시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국정조사 등의 노력도 서둘러서 집중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 정치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결단해야 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바뀌어야 합니다. 거듭된 인사참사에 국민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듯이 문창극 총리 지명자는 뼛속 깊은 친일매국사관으로 헌법적 가치와 어긋나는 사람입니다. 헌법 밖의 진보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듯 헌법 밖의 보수도 역시 우리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정의당은 이런 인사가 대한민국 국무총리 후보자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한발이라도 들여놓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거듭된 인사참사에 대해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사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위한 내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할 내각을 원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더 이상의 인사참사를 반복하지 않는 길은 야당에 협력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주장한 바 있듯이 초당적이고 거국적인 탕평인사를 해야 합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탈원전 국민투표를 제안합니다 존경하는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 저는 지난 4월 원내대표 연설을 통해 탈원전은 우리 정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절박한 과제임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 첫걸음으로 정의당 김제남 의원을 비롯하여 34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한 “노후 원전 고리1호기, 월성1호기 폐쇄 촉구 결의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습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께서도 지난 12일 국회 연설에서 고리1호기 추가 수명연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주셨습니다. 새누리당도 이 결의안 통과에 동참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원전정책의 문제는 국민의 생명과 공동체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주장만으로 그칠 수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원전정책의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는 143기 원전이 폐쇄되었고, 폐쇄된 원전의 평균 가동연수는 23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는 이미 설계수명 30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원전전문가들은 후쿠시마 다음으로 고리지역을 원전사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리1호기의 고장빈도는 전체 23기 원전 중 가장 높으며, 7.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에 위치한 월성1호기는 중수로 방식으로 다른 원전보다 안전에 매우 취약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4월 16일, 고리원전 1호기의 재가동을 승인하고, 지난 5월에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설치행사에까지 참여했던 것으로 보아 정치적 합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민의 생명과 대한민국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원전정책은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고 갈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닙니다. 정치적 합의가 최선이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국민의 뜻을 물어 결정해야 합니다. 과거 스웨덴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 스위스와 이탈리아도 국민투표를 통해서 원전폐쇄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방폐장과 신규 원전 건설 예정지에서 주민간의 갈등이 깊어가고 있고, 주민투표를 둘러싼 극심한 논란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또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부산, 울산, 경남, 그리고 삼척지역에서 원전 반대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작은 면적의 대한민국에서 원전의 위협이 어찌 해당지역 주민에게만 한정되겠습니까? 우리 헌법 제72조는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관해 국민투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원전정책이야말로 이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헌법에 부합하는 공론화 절차와 준비기간을 거쳐 원전정책의 방향을 국민투표로 결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아울러 정의당은 이에 동의하는 모든 정당과 노동·시민사회단체에 제안합니다. “원전제로 국민투표 추진기구”(가칭)를 구성하여 핵 없는 생명존중사회로 나아갑시다.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산재사망률 부동의 1위라는 불명예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약 2천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9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다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연간 노동손실일수는 무려 5천만 일을 넘습니다. 이는 해마다 13만 8천명의 노동자가 다쳐서 1년 내내 일을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도 18조 9천억 원에 달합니다. 또 지난 10년간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산업재해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이윤추구와 책임회피를 위해 하청기업에 위험을 외주화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불행한 숫자는 산업안전을 오로지 비용으로만 인식해 온 비윤리적 기업관, 생명의 가치를 뒷전으로 내몬 정치에 의해 조장되어 온 것입니다. 먼저 기업이 바뀌어야 합니다. 안전 문제를 비용으로만 생각하는 낡은 사고의 틀을 고집하는 것으로는 미래로 나갈 수 없습니다. 1906년 안전제일이라는 말을 최초로 제창하여 생산·품질보다 산업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미국 U.S. Steel은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가 되었고, 알코아(ALCOA)라는 회사도 경영목표를 ‘산재율 제로’로 삼은 뒤 연간 순이익이 5배나 향상되었습니다. 안전이 곧 생산력이자 품질이며 기업의 창의력을 발전시키는 성장동력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오히려 산업재해로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서 확인한 바로는 대기업들도 산업안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전문역량이 부족하고 방법도 모른 채, 밀어붙이기 식으로 산업안전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저희 정의당은 기업들이 의지를 갖는다면, 산업안전의 전문역량을 키우고, 시스템과 제도변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정부가 뒷받침하고, 노사가 협력해서 이뤄낼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산재왕국의 오명을 갖게 된 데는 산업안전 감독을 사실상 방치한 정부의 책임도 큽니다. 우리 정부의 산업안전 감독관 수는 390명 정도로, 산업안전감독관 1명이 담당하는 사업장 수는 5,100개나 됩니다. 산업안전감독과 일반감독이 순환되어 전문성이 축적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정부도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처럼 산업안전 감독인력을 확대하고,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별도의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을 제안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야 의원 여러분께도 요청드립니다. 저는 이미 기업의 산업안전 책임을 강화하는 이른바 ‘기업살인법’을 발의했고, 이미 환노위에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아직까지 처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산업안전 관련법들이 통과될 수 있도록 선배·동료 의원님들의 많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독립된 미래교육위원회 설치로 교육백년지대계를 세워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6월 4일 교육감선거에서 혁신학교와 교육복지를 주요 정책으로 하는 13명의 교육감이 당선되었습니다. 이번 교육감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지금 같은 극단적인 경쟁모델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한 명이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오도된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 하나하나의 개성과 잠재력을 키우는 창의와 혁신교육의 길로 나가야 한다’, 더 나아가 ‘학벌사회를 해체하여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평가되는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정당을 명시하지 않은 선거인만큼 교육감선거에서 드러난 국민들의 교육개혁의 열망을 정치권은 가감 없이 수용하고 뒷받침해야 합니다. 그것은 의무이자 도리입니다. 정파적이고 정략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힘을 합해야 합니다. 정의당은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국가미래교육위원회’ 구성을 재차 제안합니다. 세간에는 대한민국의 교육을 일컬어 ‘5년지소계’나 ‘4년지소계’라고 칭합니다. 정권이 바뀌면 180도로 정책이 바뀌고, 5년짜리 정권의 부침에 따라 단기적이고 즉자적인 처방만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육개혁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일관된 방향이 중요합니다. 수십 년 동안 교육개혁을 추진하여 세계 최고의 교육을 이룬 핀란드처럼 백년 앞을 내다보고 개혁주체를 형성해야 합니다. 학생.학부모.교직원, 시민사회와 지방자치단체, 정당 등이 중층적으로 협의구조를 마련하여 우리 교육의 장기 비전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정권으로부터 자유롭고 일관된 교육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독립기구가 필요합니다. 교육감선거를 통해 국민의 뜻이 확인된 만큼, 국회가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이 내려집니다. 이것은 전교조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를 떠나 대한민국이 기본권과 인권이 존중되는 민주주의 사회인가를 가르는 판결입니다. 전교조는 1998년 노사정대타협을 통해 합법화되었으며 이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이었습니다. 재판부가 헌법정신에 입각해 상식적인 판결을 내릴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판결과는 별개로 이 문제는 정부가 결자해지해야 할 사안입니다. 또한 국회는 저와 여러 의원들이 발의한 교원노조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노조 자격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정의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정의당은 국민의 냉엄한 평결을 깊이 새기고, 더욱 단단하게 벼려나갈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정치에 부여한 과제는 분명합니다. 지난 반세기를 지배해 온 성장만능주의의 낡은 가치를 극복하고, 유보되었던 생명, 평화, 노동, 복지라는 가치로 대한민국을 혁신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실현할 대안세력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정의당은 그 길을 향해 흔들림 없이 가겠습니다. 가치와 비전을 뚜렷이 제시하고 이에 동의하는 세력을 폭넓게 규합해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민생과 정치개혁을 위해 정당을 넘어서는 혁신정치연대 형성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년 6월 19일
정의당 원내대표 심 상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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