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 공모 당선작가가 되다.
세월은 참으로 빨리도 흐른다. 막말로 더럽게 빨리 간다. 특히 방송국에서의 세월은 유난히 빠르다. 전두환의 더러운 세상에서 나는 작가의 위치를 굳혀갔다. 그런데도 뭔가 내놓을만한 이름이 필요했다. ‘진고개신사’라는 유명한 드라마를 쓴 심영식 씨도 성우 출신이다. 그 후 연출가로 전향해서 작품을 쓰고 싶어 했지만, 그에게는 연출가 딱지가 장애였다. 방송작가란 공식 명함이 필요한 것이다. 그는 열심히 글을 썼고 급기야 KBS에서 공모한 연속극에 ‘길’이란 작품으로 당선되었다. 이제 명실상부한 방송작가가 된 것이다. 성우, 연출가, 작가. 제대로 코스를 밟은 것이다. 이제 고인이 됐지만 나를 알아주는 선배였다.
나는 드라마 등 여러 글을 썼지만 역시 공식적인 명함이 필요했다. 몇 번인가 연속극 현상응모를 했지만 낙선이다. 그것도 가작이나 장려상 낙선이다. 선배가 충고했다.
“너의 본명으로 응모하면 당선은 불가능하다. 심사위원 사이에 네 성격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그밖에 몇 가지 이유로 당선 안 된다.”
방법을 물었다. 이름을 바꾸어 응모하라는 것이다. 필체도 다른 사람의 것으로 하라는 것이다. 맞는 말인 듯했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를 싫어하는 대선배들이 있었다. 그들이 심사위원이다. 절대로 날 당선작가로 뽑아주지 않을 것이다. 특히 KBS 공모전은 더욱 불가능하다. 마침 문화공보부(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무슨 기념인가를 내 걸고 연속극을 공모했다. 상금도 대단했다. 좋다. 도전한다. 나는 아내와 의논을 했다. 결론을 냈다.
응모작가 이름은 가명. 내 필체를 아는 작가가 많아 아내가 대필했다. 아내는 글씨를 아주 잘 쓴다. 한데 연속극 20분 30회 분량이다. 1회분이 200자 원고지 40매. 30회면 무려 원고지 1,200장이다. 밤을 새워 나는 글을 쓰고 아내는 옆에서 내 원고를 자기 글씨로 바꾼다. 그렇게 원고를 써 응모했다. 아아. 그때 정말 나는 간절한 기도를 했다. 제발. 제발. 제발.
지성이면 감천인가. 아내의 기도가 하늘에 통했는가.
문화공보부 모집 당선작. ‘평화스러운 날의 작별’ 바로 내 작품의 이름이다. 그때의 감격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가 있으랴. 하늘을 날것 같았다. 아내는 나를 안고 울었다.
내가 방송국에 나타났다. 도대체 작가가 누구냐는 것이다. 방송국 간부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내가 입을 열었다. ‘평화스러운 날의 작별’은 제 작품입니다. 모두들 입을 딱 벌렸다. 그렇게 나는 오매불망하던 ‘당선 작가’가 된 것이다. 시상식에 나는 당당하게 참석했다. 장관이 시상했다. 상금도 대단했다.
당시 결혼 후 셋방살이를 하던 내가 방 둘에 부엌까지 있는 방을 얻었으니 굉장한 거금이다. 세상이 온통 내 것인 듯 느긋했다. 후일담 하나 전한다. 그 후 얼마나 지났을까. 응모작품 심사를 맡았던 어느 선생에게 물었다. 만약에 내가 쓴 줄 알았다면 당선작으로 뽑았겠느냐고 말이다. 그도 솔직하게 말했다.
절대로 뽑지 않았을 거란 것이다. 이렇게 나는 미움도 많이 받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이제 나는 KBS에 목매고 살아야 하는 작가가 아니다. 나는 자유인이다. 자유란 얼마나 좋은 것인가. 그래서 자유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이다. 나는 임명이 아닌 수십 명의 작가가 추대하는 작가실의 명실상부한 작가실장이 됐다. 내 글의 성격도 달라졌다. 마음 놓고 정부를 비판했고 언론을 비판했다. 왜들 그러느냐고 했다.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는 자유를 사랑한다.
내 글의 독자도 부쩍 늘어났다. 격려도 많아졌다. 야당 의원들도 나와 가까이 하기를 원했다. 지금도 가까운 정치인들이 있다. 그러나 못된 놈은 어디를 가나 못된 놈이다. 그 때 내 눈 밖에 났던 정치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쓰레기다. 그런 자들은 우리 정치에서 하루라도 빨리 사라져야 한다. 하늘(국민)이 우리를 도와야 한다. 우리가 하늘이 아닌가. 우리가 벌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검찰공화국의 오명은 우리가 벗어버려야 한다. 어느 젊은이를 소개 받았는데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안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검찰이다. 그는 나를 잘 아는 것이다. 그 정도면 희망이 있다. 자기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의 검사 중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검사를 많이 봤다. 그러나 떠나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내가 KBS 밥을 먹으면서 도리 없이 그들의 말을 추종했듯이 지금 그들 일부 검사들도 똑같을 것이다. 털어 내야 한다.
임은정 대구지검 검사의 글을 참 좋아한다. 거짓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내가 어찌 아무 인연도 없는 임은정 검사를 이처럼 존경하고 좋아하게 됐을까. 사연이 없는 사건이란 하나도 없다. 나는 임은정 검사에게 어떤 청탁이나 부탁도 한 적 없다. 고향도 다르고 나이는 내 막내와 비슷할 것이다. 그는 선배검사가 유죄를 인정한 사건에 무죄를 구형했고 그것은 검찰 사상 초유의 일로 파문을 일으켰다. 대단한 검사. 그게 내가 아는 임은정 검사다.
그의 글과 말은 앞뒤가 분명하고 논리정연하다. 더구나 무섭도록 더러운 조직인 윤석열 검찰 내에서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외경(畏敬)스러웠다. 지금도 그의 글은 빠짐없이 읽고 있다. 저런 검사가 검찰총장이 된다면 나는 춤을 출 것이다. 임은정 검사가 검찰 총수가 된다면 검찰은 며칠 지나지 않아 지금과는 완벽하게 다른 검찰이 될 것이라고 맹서한다. 윤석열과 내기를 해도 좋다.
■어느 날의 방문객
나는 찾는 방문객도 제법 있다. 작가지망생도 있고 내 정치비판 글을 읽고 감동했다는 독자도 있다. 그런 어느 날, 전혀 모르는 젊은이 몇 명이 찾아왔다. 이유를 물었다. 놀랐다. 느닷없이 노무현 의원의 후원회장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방송작가에게 정치인 후원회장이라니.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이유는 있었다.
노무현 의원의 비서들이었다. 이광재는 분명히 기억하고 천호선·이호철은 가물가물하다. 나는 못된 정치인과 좋은 정치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모두가 충고와 격려 편지다. 나는 노무현 의원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이유는 이랬다. 더러운 국회 생활에 환멸을 느낀 노무현 의원이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보낸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내가 노무현 의원에게 등기로 편지를 보냈다.
그나마 당신 같은 의원이 있어 바른말을 하는데 당신이 더럽다고 국회를 떠난다면 그것이 옳은 일이냐. 똥이 더러우면 치워버려야지 피해 버리면 어쩌느냐. 그게 당신이 살아온 정치신념이냐. 그게 어디 정치한다는 사람이 할 소리냐. 아마 이보다 더욱 참혹하게 야단을 쳤을 것이다. 꾸중인 것이다. 이 편지를 노무현 의원이 심각하게 읽은 모양이고 비서들에게도 읽혔다. 편지를 읽은 비서들이 모여서 의논했다. 그들은 그동안 내가 쓴 정치칼럼을 읽어서 나를 알고 있었다. 내가 KBS 작가실장이며 당선작가라는 사실까지도 알았다. 그들은 나를 후원회장으로 모시자고 자기들 맘대로 의기투합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난감했다. 정치인의 후원회장이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도의 정치인이 나를 후원회장으로 원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문제는 노무현 의원이 나에게 후원회장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비서들이 자기들 맘대로 정한 것이다. 우선 만나보시라고 했다. 그걸 못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이 아닌가. 만나보기로 약속을 했고 마포에 어느 조그만 음식점에서 첫대면 했다.
특별히 반가워하지도 않고 그냥 덤덤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한데 나는 놀랐다. 후원회장을 거절당한 것이다.
‘선생님. 무척 고마운 말씀이지만 선생님은 서울 명문가문의 출신이고 작가로도 이름이 있으십니다. 전 경상도 촌놈에 겨우 상업학교 졸업자입니다. 제 후원회장을 하셔도 고생밖에 하실 것밖에 없습니다. 선생님 뜻만 고맙게 받겠습니다.’
나는 멍했다. 내가 노무현 덕이나 보자고 후원회장 하겠다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거절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고맙게 받아 드릴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자 오기가 솟았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꼭 후원회장을 하고 말겠다. 헤어져 생각하니 화가 더 치밀었다. 내가 딱지를 맞다니. 내가 언제 후원회장 하겠다고 자청을 했던가. 비서 녀석들 사람만 바보를 만들었다. 두고 보자.
다시 노무현 의원을 만났다. 그리고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최선을 다 해서 당신을 돕겠다.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보자. 진심은 거래가 아니다. 진심은 말이 없어도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손을 잡았다. 뜨거웠다. 이제 나는 노무현후원회장이다.
그날 저녁 집에서 아내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아내는 펄쩍 뛰었다. 당신이 무슨 정치인 후원회장이냐 글만 써도 잘 지낼 수 있는데 왜 힘든 야당의원 후원회장을 하느냐. 아내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나는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은 오랜 고민과 생각 끝에 한 것이다. 내가 제안을 했다.
“그럼 우리 가족투표를 합시다.”
우리는 5인 가족이다. 우리 부부와 애들 셋이다. 시인인 딸과 철학을 하는 대학생 아들과 고교생 막내다. 투표 결과가 나왔다. 4대1로 내가 승리했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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