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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연재칼럼] 7회-사람이(사람다운)제일이다.
넌 어떤 인간이냐.
등록날짜 [ 2023년01월09일 14시05분 ]
이기명 논설위원장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모르는 어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은 한문이 어렵다고 해서 한글로 고쳐 쓴다. 내가 어려서 명심보감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깊이 새겨둔 글이 있다. 공자의 말씀이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 갚고(내리고) 악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재앙(화)을  내린다."

얼마나 공감이 가는 좋은 말인가. 어느 것 하나도 버릴 말이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내가 못된 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모두 동의는 못한다. ‘악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는 그 말이다. 내가 당한 일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 세상에는 악한 자들이 잘사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지난 6회에 나는 박정희 암살 사건을 썼다. 국민은 박정희가 무슨 일을 했는지 너무나 잘 안다. 그의 친일행위와 공산주의 이력, 독재, 반민주, 그리고 700여 명의 여성을 울린 호색행각에 국민은 고개를 젓는다. 방송국 작가인 나는 그의 사망을 애도하는 조시(弔詩) 쓰기를 거부했다. 양심으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육영수 여사의 조시를 10여 편이나 쓴 내가 박정희 조시를 안 쓴 이유는 그가 우리 민족과 국민에게 저지른 과오 때문이다. 나는 그 부분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나 후회를 느끼지 않는다. 
 
그가 짓밟은 여배우 김XX은 신혼의 단꿈이 채 깨지도 않고 아기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미인이라는 것이 유죄라면 끝인가. 박정희는 그 여배우를 외국인 늙은이에게 시집보냈다고 한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악인에게 재앙을 내린다는 명심보감의 말은 맞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으로서 누린 호강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제아무리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박정희는 민족의 죄인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믿는다. 죄인으로 기록될 인간은 지금도 많다. 대한민국 검찰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달도록 만든 자도 반드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누군지 잘 알 것이다. 악인은 모두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5·16 때 KBS를 점령한 쿠데타군이었다.
 
박정희가 성공했다는 5·16쿠데타, 쿠데타 성공에 공헌한 주인공 중에는 KBS가 있다. 그 비화를 국민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 5·16 그날을 기록해 보자.
 
1961년 5월 16일 새벽, 해도 뜨지 않은 깜깜한 밤이다. 제대 말년의 육군 병장은 편하기가 장군급이다. 그런 나를 흔드는 놈이 있었다. 
 
“기상이다. 비상, 비상. 일어나. 기상이다.”
 
주번 사관 장교의 호통이 심상치 않다. 에이 쌍 욕을 하면서 부스스 일어나는 내게 출동이다. 빨리들 집합해라. 모두 집총하고 5분 안에 집합한다.
 
이게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말인가. 그러나 심상치가 않다. 도리 없이 일어나 졸병이 건네주는 카빈총을 들었다. 헌데 실탄은 지급하지 않는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채 연병장에 집합했다. 군 트럭이 대기하고 있다. 
 
“모두 승차해라. 지금부터 명령에 따른다. 일체 질문은 금한다.”
 
트럭이 출발했다. 목적지는 어딘가. 괜히 떨린다. 제대 말년에는 돌멩이도 함부로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입을 꽉 다물었다. 질주하던 트럭은 시내를 관통해 남산으로 기어 올라갔다. 멈춘 곳은 남산 KBS 광장. 무장한 군인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계급장을 달지 않은 군복이 엄숙하게 선언한다. 장군이다.
 
“이제부터 대한민국은 우리가 관장한다.”
 
5·16쿠데타가 성공하는 순간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기관단총을 든 송찬호 준장, 김종필, 그밖에 공수부대 장교들. 그들이 KBS 점령의 일등공신들이다. 무장군인들이 방송국 곳곳을 지켰다. 숙직하던 아나운서와 엔지니어 피디들은 모두 어디를 갔는가. 시쳇말로 토꼈다. 그런데 5시가 되자 어디선가 박종세·최두헌 아나운서가 나타난다. 담 넘어 도망갔다가 방송의무 때문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5시다. 시보가 울리고 방송이 시작된다.
 
“국민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가 드디어 궐기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혁명공약은 부패무능한 정권을 타도하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다는 선언이며 지금부터 한국의 정치는 군사혁명위원회가 한다는 것이다. 군사정권의 시작이다. 
 
새벽에 비상출동한 우리는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실탄도 들지 않은 빈총을 맨 체 방송국을 지켰다. 정말로 싱거운 쿠데타 성공이다. 이런 쿠데타는 세계 역사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그날 새벽 이른바 혁명주체 세력이라는 육사8기생(김종필 주축) 몇몇과 집에 모여 극약을 나누어 소지했다는 것이다. 실패하면 목숨을 끊는다는 비장한 각오다.
 
이제 박정희 세상이 됐다. 방송을 통해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것을 안 국민은 놀라지도 않았다. 정치싸움만 일삼던 민주당 장면정권에 진절머리를 내던 국민은 오히려 잘 됐다는 여론이다. 바로 국민이 무섭다는 증거다. 쿠데타 성공의 숨은 공로자도 있다. 전두환이다. 전두환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일까. 방송이 쿠데타 성공을 떠들어 대며 장면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질타하는 와중에 육사생들의 시가행진이 있었다. 정복을 차려입은 육사생들이 5·16지지 시가행진을 한 것이다. 이를 생각해 내고 주도하고 실천에 옮긴 것이 전두환 대위다. 
 
씩씩 무쌍한 육사생들이 대오도 정연하게 시청 앞을 행진한다. 그리고 시청 단상 맨 앞에 장도영 참모총장(실제로는 박정희의 아바타)이 서 있고 그 옆에 검은 안경을 쓴 박정희 소장이 보였다. 그 옆과 뒤에 경호장교들과 차지철이 버티고 있다. 공수특전단 중대장인 차지철이 출셋길을 잡은 것이다. 
 
얼마나 씩씩하게 말 잘하는 임택근인가. 임택근이 쿠데타지지 중계방송을 하자 국민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를 기정사실로 인정했다. 박정희는 나중에 사석에서 임택근의 지지중계가 크게 기여했음을 인정했단다. KBS는 도리 없이 군부세력의 시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국 습격에 놀라 혼비백산 담을 넘어 남산으로 도망갔던 박종세·최두헌은 5시에 방송국에 돌아와 방송을 시작하고 혁명공약을 낭낭하게 낭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군대도 안 간 그들이 톡톡하게 덕을 봤다. 인생에는 이렇게 음양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부대로 귀대했지만 보이지 않는 훈장이 있었다. 방송국을 점령한 혁명주체라는 것이다. 혁명주체들은 거의 6관구 출신 장교들이 많았고 그들은 승승장구했다. 소령 출신의 정보참모 신XX가 중앙정보부장이 된 것이 그 예다. 그밖에 중령출신 참모들은 거의 최고위원이 됐다. 
 
5·16쿠데타 얘기는 여기서 끝내자. 글을 잘 쓴다는 덕으로 나는 특채형식으로 직원이 됐다. 파격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시녀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너 나 할 것이 없었다. 방송국에서 밥을 먹으려면 충성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성격을 아는 간부들은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았다. 
 
내가 전담한 방송만필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5분짜리 라디오 방송인데 성우 구민 씨가 전담이었다. 몹시 추운 날 기차를 탔는데 난방이 안 되어 동태가 될 지경이었다. 다음 날 아침 생방송에 ‘냉동열차 출발’이라는 방송이 나갔다. 철도청(당시 철도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전화가 오고 법석을 떨더니 점심에 국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방송국에 찾아왔다.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하늘을 원망해라. 나의 호통이다. 사정사정하길래 점심을 함께했는데 요정이다. 그리고 방송국 간부들의 주머니가 무척이나 풍성해졌다. 내 값은 더 올라갔다. 그들은 내 글을 무서워했다. 필검(筆劍)이라 했던가. 글은 칼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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