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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칼럼] 6회-한국방송작가. 이름이 좋구나
독재의 개 노릇을 얼마나 했던가.
등록날짜 [ 2023년01월06일 14시09분 ]
이기명 논설위원장
 
■신념도 철학도 논리도 없는 반독재투쟁
 
진실로 ‘죄 많은 청춘’이다. 그냥 막연히 독재가 싫다는 생각이었다. 반독재의 투사가 되겠다는 신념도 없었다. 우리의 지향은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특무대에 잡혀가 몽둥이 몇 대에 죄 없는 분들의 이름을 술술 불던 그런 내 모습은 매 맞고 깨갱대며 꼬리 흔드는 개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가슴속에 있는 이중성. 하지만 그래도 내가 독재에 달라붙은 못된 놈은 아니라는 믿음은 있었다. 
 
군대 밥을 먹으면서 못된 짓은 안 했다. 장교들에게 신뢰도 얻었다. 그중에는 이른바 박정희의 혁명주체세력도 있었다. 제대특명을 받고 신고하는데 상관이 내게 권했다. 직업군인 될 생각 없느냐. 한마디로 거절했다. 없습니다. 
 
다시 명동의 낭인 생활이 시작됐다. 집안 인척과 아는 사람 중 유명한 성우가 있었다. 당시 어려운 시절인데도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고 연속극 시간이면 집안 식구들이 모두 귀를 기울였다. 돈도 잘 벌고 인기도 있고 참 멋져 보였다. 고등학교 때는 연극도 했고 목소리도 좋다고 학교에서 낭독은 도맡아 했다. 당시 놀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던 때에 KBS에서 성우모집이 있다고 했다. 그 유명한 성우에게 나도 성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픽 웃으며 성우는 아무나 되느냐는 것이다. 난 약이 올랐다. 힘들어도 못할 것이 뭐냐. 한번 해 보자. 그날로 원서를 제출했다. 한데 지원자가 무려 천여 명이 넘었다. 아이쿠 하는 비명이 절로 나왔다. 괜한 짓을 했구나.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분에게 물었더니 몇 번씩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면서 경험 삼아 한 번 보라는 것이다. 다시 오기가 생겼다. 
 
남산 KBS 마당이 응시생들로 꽉 찼다. 아는 얼굴도 엄청나게 많았다. 성우의 인기가 저렇게 높구나. 꼭 합격하겠다는 결기가 생겼다. 서류 심사를 했는데 백여 명의 응시생이다. 다음은 개별시험이다. 대본을 주며 읽으란다. 마이크 뒤에 장막이 있고 시험관이 있다. 당시 유명하던 장기범·임택근 아나운서 등. 난 이미 떨어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여유 있게 대본을 읽고 연기 흉내도 냈다. 심사위원이 유심히 날 본다. 잠시 후 구두시험이다 .난 훌훌 날랐다. 재치문답의 명 아나운서 장기범 아나운서 실장이 날 유심히 본다. 
 
다음 날 발표가 났다. 어! 내 이름이 있지 않은가. 10여 명 남짓한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KBS 성우가 됐다.   
 
■말단은 어디서나 서럽다. 
 
명동에서 날고 긴다고 자부하던 나다. 문단에 젊은 작가들은 다들 알고 있다. 그런 내가 말단 성우다. 대본을 드라마 녹음 전 챙겨서 나누어 줘야 한다. 고은정·윤미림·이창환·남성우 등 기라성 같은 성우들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다. 명동의 이기명이 신세가 이렇게 됐다. 나보다 나이 어린 선배가 반말이다. 성우의 세계는 군대와 같다. 선후배의 위계가 엄격하다. 군대 안 간 자들도 많았다. 그야말로 오장이 뒤틀렸다. 견뎌보자. 참았다. 교육이라는 것을 마치고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한다고 가슴이 설레던 내게 떨어진 배역은 이름도 안 나오는 역할이다. 대사는 ‘네!’ 한마디. 그것이 내 방송극 출연의 시작이다. 그날 밤, 집에서 잠을 못 잤다. 이 짓을 계속해야 하는가. 선배들이 위로했다. 처음에는 모두 그렇다고 했다. 지금 유명한 성우들도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그러나 난 성우가 목적이 아니잖은가. 
 
날 관심 있게 보신 분이 있었다. 방송국에서 실력파로 실세인 아나운서 실장인 장기범 씨다. 차를 가끔 사주시던 그는 내가 성우가 적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선배의 애정을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기회란 언젠가는 반드시 오는 것이다. 빨리 왔다. 연속극 녹음을 마쳤는데 무려 10분이나 시간이 남았다. 작가는 없고 그냥 음악을 틀을 수도 없고 난감한 때에 내가 나섰다. 내가 시간을 메꿨다. 10분 동안 시간을 연결해서 드라마를 쓰고 성우들이 출연하는 것이다. 내가 연출했다. 나는 드라마를 단숨에 썼고 성우들이 매끄럽게 연결해 시간을 메꾸었다. 모두들 눈이 화등잔(火燈盞) 만 해졌다. 말단 성우가 10분의 방송드라마 펑크를 막았다. 화제 중의 화제였고 드라마 원작자도 내게 감사했다. 나는 그냥 성우가 아니었고 작가 성우가 된 것이다. 
 
당시는 박정희 시대였다. 방송은 온종일 박정희의 혁명정신 선전에 열일이던 때였다. 드라마와 정권 홍보방송이 종일 송출될 때였다. 작가가 부족했다. 작가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머리를 끙끙 앓고 있었다. 문예계(작가 총괄부서)에서 호출이 왔다. 내게 글을 쓰라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나를 추천했는가.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날부터 문예계에서 드라마와 홍보문을 썼다. 위에서 방송국장에게 요즘 홍보방송이 좋다고 칭찬을 했단다. 그렇다. 나는 박정희 독재에 충실한 개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던 작가 선생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사람대접을 해 주는 것이다. 성우로서 방송출연은 끝이다.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던 여성 성우들이 날 보는 눈이 가늘어졌다. 난 결혼도 안한 잘 생긴(?) 총각이 아닌가. 기회는 한 번 오면 자꾸 오는 모양인가.
 
오호 무슨 일인가. 대통령 박정희가 궁정동 안가(청담동 술집 아니다)에서 심수봉·신재순 등과 한잔 기울이며 밤을 즐기다가 제1급 참모로 신뢰하던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가슴과 머리를 맞았고 차지철도 함께 삶을 마감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장군은 사건 직후 자유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박정희를 처단하였다고 했고 독재를 증오하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국민은 만세를 불렀다. 그간 박정희가 훔친 여인은 무려 700여 명. 신혼을 마친 여성이나 순진한 여교사도 있었다. 채홍사에게 끌려간 어느 여교사는 유성온천 안가에서 꼬마(박정희) 얼굴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했다고 한다. 내가 본 건 아니다. 
 
■민주주의는 오는가.
 
희극이든 비극이든 대통령 서거는 나라의 큰일이다. 그 보다 먼저 나는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의 사망을 방송국에서 겪었다. 당시 육영수와 아무 관계가 없던 내게 조시(弔詩)를 써 달라는 청탁이 왔다. 거절했다. 가명으로라도 써 달라고 했다. 아무도 쓰려는 사람이 없으니 써주면 최고의 사례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이름 있는 시인이 육영수 조시를 쓰겠는가. 나는 아무 이름이나 써내고 조시라고 줬다. 그저 ‘아아 오오’하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조시, 얼굴 한번 마주 보지 못한 육영수의 조시를 무려 10편 쓰고 반응이 제일 좋았다는 평가와 함께 많은 돈도 챙겼다. 
 
그리고 나는 다시 박정희의 조시를 쓰게 되는 처지에 놓였다. 단연코 거부했다. 핑계는 병이었다. 매일같이 박정희 찬양 글을 쓰며 밤이면 공짜 술에 만신창이인 몸은 항우나 장비라 해도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희대의 독재자 박정희 시대는 갔다. 남은 독재자들은 언제나 가는가.
 
박정희가 죽자 웬 민주인사는 이렇게도 많아졌단 말인가. 이 놈 저놈 할 것 없이 모두가 민주투사다. 내가 알던 진짜 민주투사들. 박정희 시대 특무대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주리가 틀리던 인사를 만나 탄식하니 정치가 다 그런 거 아니냐고 한다. 그 때 나온 욕이 개자식이다. 그렇게도 많던 민주투사는 모두 개자식이 됐다.
 
윤보선·장면·허정 등 박정희 시대의 쥐새끼들이 모두 고양이가 됐다. 박정희가 남긴 썩은 찌꺼기를 먹기 위해 혈안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이런 것이로구나. 어느 놈이 죽어야 진짜 민주주의가 올 것인가. 
 
지금도 그렇다. 어느 한 놈이 죽으면 세상은 달라질 것인가. 국호를 ‘검찰공화국’이라 바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검찰은 뭐라고 떠들어 댈 것인가. 권성동·주호영 등 윤핵관과 그 부스러기들이 어떻게 설칠 것인가. 민주당의 쓰레기들은 또 얼마나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겠는가. 그렇다. 박정희가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비명에 죽자 그야말로 당시 민주당은 꼴불견이 되었다. 만약 지금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민주당의 꼴을 어떻게 될 것인가.
 
꼭 봐야만 아는 것은 아니다. 안 봐도 뻔한 것이 있다. 한국의 정치가 바로 그렇다. 2,000여 명이 장악하고 있다는 대한민국 검찰공화국. 야당인 민주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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