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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연재칼럼] 5회-독재왕국의 수도 서울
썩을 대로 썩었지만 편하긴 했다.
등록날짜 [ 2023년01월05일 16시38분 ]
이기명 논설위원장
 
서울로 전입을 왔다. 영등포에 있는 서울지구 제6군관구 사령부. 일명 ‘빽관구’라는 곳이다. 조상 대대로 수백 년을 살아온 서울이다. 난 부산 피난을 빼고 서울 놈이다. 6관구사령부는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었다. 박정희 사령관. 얼마 후 5·16군사정변 일으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압살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나는 육군 쫄병. 가슴에서 불길만 태우며 사는 놈이다. 나는 공병보급 하사관(지금의 부사관) 직책을 받았다. 군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쫄병을 하려면 공병을 하고 장교를 하려면 병참을 하라. 
 
이유는 간단하다. 생기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병은 시멘트·목재·철근, 병참은 피복·군량·휘발유 등 먹을 게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좀 알기 시작했다. 6관구 보급소는 육군본부 등 수도권 인근 부대의 모든 공병 물자를 보급한다. 나는 ESP(보급소 불출담담)이다. 보급되는 모든 물품 목록을 기록한다. 어느 놈이 무엇을 얼마큼 빼 먹었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당시는 녹화도 녹취도 없었으니 내 기록이 유일한 증거다. 
 
높은 놈들이 늘 날 찾아왔다. 잘 좀 기록해 달라는 것이다. 그중에서 지금도 기억되는 것은 차지철 대위. 당시 공수부대 장교였다. 그는 늘 양담배 한 보루를 들고 왔다. 부대 장교들도 날 괄시 못하던 황금만능 시대다. 시간이 지나 병장계급을 달았다. 6관구는 대단한 장교(나중에)가 많았다. 김재춘 참모장, 박원빈 작전참모, 신직수 중앙정보부장 등 5·16군사정변 후 고관대작은 모두 6관구에 있었다. 더구나 사령관실 비서실에 친구 동생이 중위로 있었기에 내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지금의 양평동에 있던 보급소 목재창고에는 민간트럭이 드나들며 목재를 싣고 나가 팔아먹었다. 시멘트도 팔아먹었다. 중위 계급의 병참장교는 유류 담당인데 휘발유를 화차 한 대 씩 팔아먹었다. 지금 영등포 롯데백화점 자리에 석탄이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민간트럭이 마음대로 드나들며 석탄을 실어갔다. 당시 민간 땔감은 석탄이 유일했고 영등포역 앞은 유흥가였다. 썩은 군대, 썩은 나라가 어떻게 유지됐는지 그게 바로 불가사의가 아닌가.
 
무슨 통신이다. 무슨 무슨 통신이란 명함 한 장 들고 보급장교들에게 공갈·협박을 하는 사이비 기레기(그때는 ’기레기‘란 말은 없었다. 당시에는 ’쥐새끼들‘이라고 했다.) 가 찾아왔다. 우리 역시 그놈들에게 엉겼다. 역시 죄 짓지 않고 떳떳해야 한다. 하긴 요즘 세상은 죄가 없어도 죽어지낸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검찰공화국’이라 불리는 이 땅에서 한동훈이나 청와대 눈 밖에 나면 끝장 아닌가. 
 
대구지검에 임은정 검사처럼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한 검사는 누구한테도 잘못 없이 엎드리지 않는다. 아마 윤석열이나 한동훈이도 임은정이 눈엣가시처럼 보이겠지만 눈 하나 꿈쩍 않는다. 임 검사가 옴쟁인가. 왜들 슬슬 피하는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임 검사가 담당했다면 가부간 벌써 끝났을 것이다. 김건희는 잠은 잘 자는가.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활개를 치고 다녔는데 동백아가씨 부르느라 몰랐는가. 행정안전부 장관이라는 자는 죄 없이 압사당한 우리 젊은이가 네 자식이라면 어떻게 했겠느냐. 이태원 참사 희생자 영정 앞에 서지도 못하고 쫓겨난 놈은 총리냐 허수아비냐. 한덕수를 만난 적이 있지만 저렇게 못났을 줄은 정말 몰랐다. ‘검찰이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검사가 아니라 깡패’라고 한 윤석열을 진짜 좋은 검사라고 껌뻑 죽었던 나란 놈이나 무엇이 다르냐. 그때 생각을 하면 4·19 시위 때 총 맞아 죽지 못한 것이 한이다. “X춘아. 네 옆에서 총 맞아 같이 죽지 못하고 지금껏 살아 있는 내가 미안하구나.”
 
■명동의 한국 문인들. 밸도 배짱도 없는 샌님들
 
독재시절 한국의 문인들은 아니 문인들이라는 것들은 머릿속에 세종대왕이 들어 있을지 몰라도 겉으로 보면 그저 샌님이다. 듣기 좋게 선비다. 물론 당당하게 바른말 하면서 살아가던 몇몇 분들을 제외하면 적어도 민주주의와 분단조국의 평화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대구의 이상화 시인을 좋아하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애송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광수·최남선은 친일파다. 한국 문단에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지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선구자로서 그들의 평가는 꽝이다. 
 
자유당 때 명동도 그랬다. 명동에는 가난한 문인들이 모여들었으나, 그들은 차 한 잔 마실 돈도 없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가난한 시절이지만 그래도 난 집이 서울이고 그들보다는 형편이 나았다. 쫄병고참인 나는 일과 후 외출을 했고 그들의 봉이었다. 늘 술을 샀다. 술이라야 막걸리나 막소주에 돼지비계 찌개가 전부지만 그들에겐 하늘의 진수성찬이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그들과 어울린다. 술을 마시면서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썩은 정권을 매도하지만, 사실은 그들 모두가 병역기피자들이다. 모두 군대에 가지 않은 범법자였다. 잡히면 현장에서 군대로 직행해야 하는 자들이다. 늘 전전긍긍이다. 당시 경찰은 심심하면 기피자 단속을 했다. 나는 외출증을 지닌 당당한 현역이지만, 그들은 다르다. 당시 명동에는 ‘까치’인지 ‘까마귀’인지 문인들이 모이는 다방이 있었다. 
 
술 한 잔 마시려면 먼저 내가 정찰을 간다. 혹시나 병역기피자 검문이 있지 않을까 염탐하기 위해서다. 기피자들과 떨어져 가던 내가 기피자 검문을 발견하면 발길을 되돌려 문인들에게 알리고 그들은 얼른 숨는다. 그중에는 나중에 장관이 된 지금은 고인인 한국의 최고 문인도 있었다. 
 
시인 박재삼은 재수 없게 걸려 군대로 끌려갔다. 그가 배치받은 부대는 고된 군대생활로 악명 높은 XXXX 공병대. 남산에 있었다. 당시 남산에 의사당을 짓는다고 법석 떨 때였으므로 작업은 중노동이다. 시만 쓰던 박재삼이 어찌 견딜 수가 있으랴. 어쩌다 외출해 나를 만나면 그는 울면서 탈영하겠다고 했고 나는 극구 말렸다. 탈영은 그야말로 신세 조지는 것이다. 그의 부대 상관에게 부탁도 하고 여러 가지로 도와주었지만 내 힘이 몇 푼어치나 되겠는가. 재삼이가 제대하고 그 후 다시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는 군대 얘기가 나오면 눈물을 글썽였다. 삼천포가 고향인 박재삼은 정말 순수한 우리 시인이다. 그의 시 ‘춘향이 마음’은 언제 읽어도 우리의 대표 시인의 정신이 읽힌다. 
 
서울 내 집에 늘 잠을 청하던 가난한 시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거의 세상에 없다. ‘끊어진 한강교’, ‘다시 끊어진 한강교에서’의 이원우 시인은 그 좋은 시들을 다 쓰지도 못하고 거의 굶다시피 죽었다. 신춘문예 출신의 시인 박봉우는 비참한 인생을 마감했다. 그가 전주에 왔을 때 시인이자 아나운서인 최세훈은 그를 보살폈다. 당시 최세훈은 전주MBC 전무였다. 5~60년 전 기억을 회상하니 정말 그 느낌이 깊다. 그렇게 고생하던 많은 한국의 문인은 박정희·전두환·이명박·박근혜 시절을 어떻게 지냈는가. 지난 얘기 꺼내 보아야 오장만 뒤집힌다. 이명박은 저 잘난 대통령 덕에 십수 년이나 형기를 남겨두고 사면복권 됐다. 
 
경남지사를 지낸 김경수는 이명박의 들러리냐. 누가 사면해 달랬느냐. 복권은 빼고 사면만 시켰다. 진짜 구역질이 나온다. 조자룡 헌칼 쓰듯이 대통령 사면권을 써먹어도 되는 것인가. 김경수만한 정치인이 어디 흔한가. 김경수는 내가 노무현후원회장 시절 자식처럼 아꼈다. 그렇게 착실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한동훈이 한번 말해 봐라. 내 눈에는 사면복권 된 인간 중 사람 같은 자는 하나도 없다. 특히,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진범은 이명박이다. 
 
“그자는 내가 살아 있는 한 우리 식구(이른바 노무현 지지자)를 모두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세상을 떠나시기 전 마지막 뵈었을 때 하신 말씀이다. 지금 나는 그런 자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윤석열은 그를 사면 복권 시켰다. 아아. 왜 이리 세상이 더러운가.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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