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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칼럼] 미꾸라지 용됐다.
용이 못 되도 할 일은 많다.
등록날짜 [ 2022년09월29일 17시21분 ]
이기명 논설위원장
 
【팩트TV-이기명칼럼】한 후배가 내게 하소연하듯 하는 말이다.
 
선생님 글쎄 말입니다. 왜 아무개 의원 있지 않습니까. 어제 망신당했습니다. 옛날 말 놓고 지내던 후배라서 전처럼 무흠하게 대하지 않았겠습니까. 한데 표정이 변하더니 하는 말씀이 ‘옛날에 아무개가 아닙니다. 말조심하시고요. 예의를 갖추십시오.’
 
당연히 잘못했다. 적어도 의원님이 아니신가. 과거의 후배로 생각하다니. 당연히 의원님이란 존칭으로 예우하고 최상으로 대우해야 하는데 옛날 후배로만 생각하다니. 망신당해도 싸다 싸.
 
그런 경우는 더러 있다. 나도 당했다. 학교 때 그냥 똘마니 정도의 친구로만 생각했는데 세월 지나 돈도 벌고 벼슬도 했다. 언젠가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표정부터 다르다. ‘조심해라. 옛날에 내가 아니다.’ 다시 말해 과거에 똘마니가 아니라는 것이다. 옛날의 미꾸라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미꾸라지가 용이 됐다는 말이 있다. 세상없어도 어떻게 미꾸라지가 용이 되겠느냐. 멸치가 장어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 속에는 얼마든지 멸치도 장어가 될 수 있다. 
 
사람은 열 번 된다는 말이 있다. 좋은 의미에서다. 그러나 나쁜 의미라면 슬픈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위에서 열 번 이상 백번이나 나쁘게 된 경우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국회의원에 출마해 몇 번인가 낙선한 친구가 있다. 지난번 선거에서도 낙선했지만, 그때 보니 여성유권자가 안고 가는 강아지의 코를 닦아 줄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차마 일일이 표현 못 할 정도로 애처롭게 선거운동하는 후보자들. 그래 열심히 운동해서 당선 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지금처럼만 일해라. 이렇게 속으로 빌고 빌었다. 이렇게 기원하는 유권자 아니 국민이 어디 하나둘이랴. 모두들 그렇게 소망을 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그 얘기를 하면 늙은이 주책없다고 욕을 하리라.
 
화장실 갈 때와 나왔을 때 마음은 다르다. 뒤는 급한데 허리띠가 풀리지 않는다면 이 역시 난감한 일이다. 그러나 지나간 다음에야 누가 그 생각을 기억하랴. 자신이 지지하고 투표했다는 어느 유권자가 그가 당선 후 무슨 일로 국회를 찾아간 모양이다. 부탁도 아니었는데 만난 후 표정이 영 아니더라는 것이다. ‘내가 뭐 부탁했느냐. 어디 두고 보자’ 이렇게 속으로 별렀을 유권자가 다음에 누구를 찍을까.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어떤 문제건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국회의원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의원이 되기 전 몇 군데 언론사를 거쳐 비례대표로 배지를 단 여성이 있다. 올챙이 기자 시절 아침이면 늘 술 냄새를 풍겼다. 딸 같은 기자라 충고를 했다. 술 좀 줄여요. ‘애고 선생님. 의원들이 강권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어요.’ 그라나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약주는 여전히 잘 드시고 의정활동은? 욕이 나올테니 할테니 그만두자. 
 
정말 일 잘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다. 야당의원들 속에도 있을 것이다. ‘신뢰를 잃으면 무슨 말도 안 통한다.’ 유승민 의원이 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 구설 이후 국민의힘 고위층 중에서도 정직하게 말하고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총알은 발사된 후 돌아오지 않는다. 말도 같다고 하지만 그래도 말은 사과하고 취소할 수가 있다. 취소가 바로 미꾸라지가 용 되는 길이다. 지금 미꾸라지들이 날뛰는 꼴을 보면 가관이요 꼴불견이다.
 
권모, 김모라는 국민의힘 최고 실력자들의 미꾸라지 시절 발언을 생각하면 지금 그들이 말하는 전직 대통령의 말을 되살려 트집 잡는 모습에서 서글픈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과거에 자신이 할 말과 행동을 까맣게 잊었는지 몰라도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국민을 기억상실증 환자로 보지 마라. 특히 과거 언론사에서 기자를 했다는 대변인들이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저 사람들이 기자를 했다는 것이 맞는가. 기자를 했던 한 야당의원들은 나를 피한다. 왜?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어서라면 다행이다. 
 
기자는 역사의 증인이다. 지금의 기자들이 존경하는 송건호, 그리고 현존하고 있는 김중배 같은 언론인들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그 옛날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어도 기사는 바로 썼다. ‘그때하고 지금하고 같습니까?’
다르냐. 다르면 기사도 달라야하냐.’ 
 
■미꾸라지도 용이 될 수 있다.
 
‘용 된 미꾸라지’라고 하면 비웃는 줄 안다. 새로 영부인이 된 분의 이름 뒤에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도이치모터스’ 어쩌고 하는데 난 주식이라고는 아는 것도 없고 한겨레신문 창간주주로서 주식 몇 개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제 한겨레도 절독 했으니 주주라고도 할 수 없다. MBC가 25일 ‘스트레이트’에서 김건희 관련 이런 저런 얘기가 적나라하게 화면을 누비는데 정말 저건 아니라는 생각만은 할 수가 있었다. 미꾸라지가 용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닐 테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부군인 대통령의 명예도 힘들게 용에서 미꾸라지로 추락하게 됐다. 인간은 분수껏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MBC ‘스트레이트’ 방영 후 청와대와 국민의힘은 완벽하게 오장이 뒤집힌 모양이다. 방송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국민 여론은 들끓고 지지율은 하락하고 죽지만 않는다면 그야말로 목숨이라도 끊고 싶었을 것이다. ‘겨우 저 정도밖에 못 하는가?’ 속으로야 별소리를 다 했지만, 자신들의 신분은 뛰어봤자 벼룩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재래식 방식이다. ‘허위 조작’ 보도라며 가능한 법적 조치를 모두 취하겠다는 것이다. MBC 사장이 야당과 뭔가 있고 정보도 MBC가 제공했다는 어거지다. 
 
그러나 아무리 해 봐도 좋게 돌아가는 상황이 아니다. 기자협회와 언론노조가 성명을 발표했고 보도에 왜곡은 없었다고 했다. 이러한 현장기자들의 주장을 뭐라고 반박할 것인가. 속이 탈 것이다. 함부로 버린 담배꽁초가 산을 태운다.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으면 이해심 넓은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러나 이미 기차는 떠났고 잘못 당긴 방아쇠는 무를 수 없다.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려 볼 일이다. 대통령은 더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끓는 물에 들어간 미꾸라지는 이미 끝난 목숨이다.
 
■인간욕망의 한계는 끝이 없는가.   
 
내 집의 방과 여의도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한 장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다. 누구의 사진인지 짐작하실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소 말씀하시길 ‘어렸을 때 소원은 면서기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면서기가 소원이었던 봉하마을의 산골 소년이 대통령까지 됐으니 이건 용이 아니라 용의 할아버지가 된 셈이다. 그러나 한 번도 용의 티를 낸 적은 없었다. 일일이 소개할 필요도 없지만 대통령 당선 후 내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선생님처럼 명문거족 자산가의 후예가 왜 저 같은 사람을 후원하면서 고생을 사서 하시는지 이해가 어렵습니다.’고 했다.
 
그가 대통령이 될지 나는 알 리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를 후원했고 지금도 그분을 알게 된 것을 내 생애 최고의 선택이자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과연 용의 자리인가. “대통령 못 해먹겠다” 공개고백으로 곤욕을 치른 노무현 대통령이었고 결국.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여의도에는 용꿈을 꾸는 미꾸라지들이 참 많다. 무슨 꿈들을 꾸고 있을까. 6·25 전, 어린 내 꿈은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다. 중학은 축구명문 경신중학에 입학했고 1학년 때 학급축구시합에서 날아오는 공을 세우지 않고 바로 차서 골인을 시켰다. 이를 본 축구감독이 나를 직접 불러 칭찬을 했고 소년 축구 선수가 됐다. 그때의 기분이라니.
   
그러나 6·25 전쟁은 내 꿈을 산산이 깨트렸고 휴전 후 럭비명문 한성고등학교 럭비선수가 됐다. 축구 국가대표의 꿈은 사라졌고 그 대신 방송작가로서 경신고 출신으로 축구의 신화를 이룩한 차범근 선수의 일대기 ‘황금의 다리’를 연속방송극으로 쓰는데 만족했다. 
 
꿈은 비록 이루지 못해도 의미가 있다. 지금 여의도에 수도 없이 우글거리는 정치 미꾸라지들. 그들은 모두 용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렇게 많은 용이 필요치 않다. 진짜 용이 될 미꾸라지만 필요한 것이다. 
 
어쩌다 국회에 가 보면 수많은 용꿈을 꾸는 미꾸라지들이 호기롭다. 양심을 저버리지 말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잊지 않는 미꾸라지가 되어야 한다. 국민에게 맛좋은 추어탕으로 봉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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